대법원 민사 20260122 전원합의체 판결

손해배상(국)[5·18민주화운동 관련자 가족 고유의 위자료 청구권의 단기소멸시효 기산점이 문제된 사건]

사건번호: 2023다285162

판시사항

<br/> [1]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 행사의 객관적, 합리적 기대가능성을 부정하는 사유가 있는 경우, 민법 제766조 제1항의 단기소멸시효가 진행하지 않는지 여부(적극) 및 이때 권리행사의 객관적, 합리적 기대가능성이 있는지 판단하는 기준 / 국가배상청구권이 문제 되는 사안에서 권리행사 가능성이 있는지 판단할 때 고려하여야 할 사항<br/><br/> [2] 헌법재판소가 2021. 5. 27. 구 광주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 등에 관한 법률 제16조 제2항의 ‘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하여 입은 피해’ 중 ‘정신적 손해’에 관한 부분은 헌법에 위반된다는 결정을 선고한 후, 5·18민주화운동 관련자의 유족 등인 甲 등이 공무원들의 위법한 공무집행행위로 인하여 정신적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면서 국가배상을 구하는 소를 제기하였는데, 甲 등이 5·18민주화운동 관련자의 가족으로서 가지는 고유의 위자료 청구권이 민법 제766조 제1항에서 정한 3년의 시효로 소멸하였는지 문제 된 사안에서, 甲 등이 광주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심의위원회의 보상금 등 지급결정으로 손해 및 가해자를 알았더라도 보상금 등 지급결정일에 자기 고유의 위자료 청구권을 행사할 것을 객관적, 합리적으로 기대할 수 있었다고 평가할 수는 없고, 甲 등에게는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이 있기까지 고유의 위자료 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었던 장애사유가 존재하였다고 보아야 하므로, 위헌결정일로부터 3년이 경과하기 전에 소를 제기한 이상 甲 등의 가족 고유의 위자료 청구권에 관한 소멸시효는 완성되지 않았다고 한 사례<br/>

판결요지

<br/> [1] [다수의견] 국가배상청구권에 관하여 국가배상법 제8조에 따라 적용되는 민법 제766조 제1항은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의 단기소멸시효 기산점을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로 규정한다.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이란 피해자나 그 법정대리인이 손해 및 가해자를 현실적이고도 구체적으로 인식한 날로서, 그 인식은 손해발생의 추정이나 의문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손해의 발생사실뿐만 아니라 가해행위가 불법행위를 구성한다는 사실, 즉 불법행위의 요건사실에 대한 인식으로서 위법한 가해행위의 존재, 손해의 발생 및 가해행위와 손해 사이의 인과관계 등이 있다는 사실까지 안 날을 뜻한다.<br/> 민법 제166조 제1항은 소멸시효 기산점을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때’로 규정한다.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에 관한 3년의 단기소멸시효에는 민법 제766조 제1항 외에 소멸시효 기산점에 관한 일반 규정인 민법 제166조 제1항도 적용되므로, 단기소멸시효는 피해자가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에 더하여 그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때’가 도래하여야 비로소 진행한다. 따라서 권리행사를 가능하지 않게 하는 장애사유가 있다면 민법 제766조 제1항의 단기소멸시효는 진행하지 않는다.<br/> 여기서 권리행사를 가능하지 않게 하는 장애사유는 일반적으로 법률상 장애사유를 의미하므로, 권리자의 개인적 사정이나 권리 발생 및 권리행사 가능성에 대한 부지 등 사실상 장애가 있다는 사정만으로 소멸시효가 진행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다만 법률상 장애와 사실상 장애는 민법상 정의되거나 민법의 문언에 근거를 두고 있지 않고, 양자가 언제나 뚜렷하게 구별되지도 않는다. 법률상 장애와 사실상 장애의 구별에 따라 소멸시효 기산점을 판단하는 방식은 일반적으로 타당하나, 그것이 어떠한 예외도 허용되지 않는 판단 방식이라고 할 수는 없다.<br/> 민법 제166조 제1항에 따른 소멸시효 기산점인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때’의 궁극적 판단 기준은 ‘권리행사의 객관적, 합리적 기대가능성’이다. 그러므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 행사의 객관적, 합리적 기대가능성을 부정하는 사유가 있다면 그것이 일반적으로 이해되는 법률상 장애사유가 아니라도 민법 제766조 제1항의 단기소멸시효가 진행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한다. 이때 권리행사의 객관적, 합리적 기대가능성이 있는지는 소멸시효 제도의 취지와 더불어 권리의 목적과 성격, 채권자와 채무자의 특성과 상호 관계, 사안의 유형과 맥락 등을 두루 규범적으로 고려하여 권리행사가 문제 되는 시점의 일반인을 기준으로 판단하여야 한다.<br/> 또한 국가배상청구권이 문제 되는 사안에서는, 국가가 개인의 기본권 보장 의무를 저버린 채 오히려 국민에 대해 불법행위를 저지름으로써 발생한 손해를 사후적으로 회복·구제하기 위해 마련된 특별한 기본권이라는 국가배상청구권의 특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공무원이 통상적인 공무수행 과정에서 개별적으로 불법행위를 저지른 것이 아니라 이른바 과거사 사건과 같이 공무원들이 조직적으로 관여하여 불법행위를 저질러 중대한 인권침해가 발생하였고, 이후 진실규명의 어려움, 억압적 사회 분위기 등으로 국가배상청구권 행사가 사실상 곤란하였다면 이러한 사정도 함께 참작하여야 한다. <br/> 일반적으로 법률의 부지나 잘못된 법률 해석은 권리행사의 객관적, 합리적 기대가능성을 부정하는 사유가 아니다. 하지만 국가배상사건의 가해자인 국가가 국가배상 관련 법령을 제정·집행하는 과정에서 국가배상의 법률관계를 복잡하고 불명확하게 만들었고, 그로 인하여 피해자인 국민이 자신의 권리관계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여 그 권리를 행사하기 어렵게 된 경우에는, 사후적인 법령 해석 결과 그 권리를 행사할 수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는 이유로 법률관계가 불명확하였던 이전 상황에서도 권리행사 가능성이 있었다고 쉽사리 단정해서는 안 된다. 이 경우 권리행사 가능성은 관련 법령의 내용 및 이에 따른 국가의 조치 등에 비추어 일반적인 피해자라면 국가를 상대로 권리를 행사할 것이라 객관적, 합리적으로 기대할 수 있었는가를 중심으로 국가배상제도의 목적과 피해자 보호 필요성 등을 함께 고려하여 신중하게 판단하여야 한다. <br/> [대법관 오경미의 별개의견] 다수의견이 제시한 ‘권리행사의 객관적, 합리적 기대가능성’이라는 새로운 기준이나 별개의견이 제시하는 소멸시효 항변에서의 권리남용 법리는 모두 정의와 형평이라는 신의성실의 원칙에 기초한 것이지만, 적용의 양상에 차이가 있다. 다수의견은 소멸시효 기산점의 확정 단계에서 법률상 장애와 사실상 장애의 구분 기준에 신의성실의 원칙을 적용한 것인 데 반해, 별개의견은 선례에 따라 위 구분 기준을 유지하되 사실상 장애로 ‘권리행사의 객관적, 합리적 기대가능성’이 없는 사안이라면 이는 ‘객관적으로 채권자가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있었던 경우’로서 선례가 ‘소멸시효 완성 주장이 권리남용에 해당하여 허용할 수 없는 때’로 인정하는 전형적인 사유라고 보는 것이다. 후자의 방법이 신의성실의 원칙을 적용하는 본래적 모습이다. 이를 통해 소멸시효 기산점의 판단에서 법적 안정성을 도모하고, 나아가 보편적 법리로써 다양한 과거사 사건 피해자들을 총체적으로 구제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br/> [대법관 노태악의 반대의견] 다수의견이 들고 있는 ‘권리행사의 객관적, 합리적 기대가능성’이라는 판단 기준은, 소멸시효 제도의 취지나 현재까지 확립된 법리에 정면으로 반하는 것으로, 모호하고 불명확한 기준으로 인하여 법률상 장애와 사실상 장애의 구별에 혼란을 가져온다. 또한 민법상 소멸시효에 관한 다른 규정들, 즉 미성년자의 성적 침해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 규정이나 시효정지 제도와의 관계에 비추어 보더라도 균형이 맞지 아니한다. 특정 사건에만 적용하고자 소멸시효 기산점의 예외를 무리하게 확장하는 것은 예외 이론의 남용이다.<br/><br/> [2] 헌법재판소가 2021. 5. 27. 구 광주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 등에 관한 법률(1997. 1. 13. 법률 제5291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이하 ‘구 광주민주화보상법’이라 한다) 제16조 제2항(이하 ‘화해간주조항’이라 한다)의 ‘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하여 입은 피해’ 중 ‘정신적 손해’에 관한 부분은 헌법에 위반된다는 결정을 선고한 후, 5·18민주화운동 관련자의 유족 등인 甲 등이 공무원들의 위법한 공무집행행위로 인하여 정신적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면서 국가배상을 구하는 소를 제기하였는데, 甲 등이 5·18민주화운동 관련자의 가족으로서 가지는 고유의 위자료 청구권이 민법 제766조 제1항에서 정한 3년의 시효로 소멸하였는지 문제 된 사안에서, 5·18민주화운동 관련자의 가족이 권리행사를 하지 못한 상황은 법률의 부지 또는 잘못된 법률 해석 등 그의 주관적 사정이나 귀책사유로 인하여 발생하였다고 보기 어렵고, 오히려 이는 가해자로서 손해를 배상해야 할 국가가 불법행위일로부터 상당한 시간이 경과한 후 뒤늦게 보상 관련 법령을 제정·집행하는 과정에서 보상의 대상과 범위를 협소하게 규정하고 법률관계를 명확하게 하지 못한 채 국가편의주의적인 입장에서 위헌성의 여지가 있는 ‘동의 및 청구서’ 서식에 따라 보상 절차를 신속히 마무리하려고 하면서 초래한 측면이 있으며, 국가배상제도의 목적과 과거사 사건의 특수성 및 피해자 보호 필요성을 아울러 고려한다면, 관련자의 가족에게 관련자 또는 그 유족에 대한 광주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심의위원회의 보상금 등 지급결정일에 자기 고유의 위자료 청구권을 행사할 것을 객관적, 합리적으로 기대할 수 있었다고 평가할 수는 없어서 보상금 등 지급결정일을 소멸시효 기산점으로 삼을 수 없고,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을 통해서 관련자의 가족이 구 광주민주화보상법에 따른 보상금 등 지급과는 무관하게 그와 별도로 고유의 정신적 손해에 대한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는 점이 법적으로 선언됨으로써 관련자 가족 고유의 위자료 청구권 행사에 대한 장애사유가 비로소 제거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으므로, 甲 등이 보상금 등 지급결정으로 손해 및 가해자를 알았더라도 甲 등에게는 위헌결정이 있기까지 고유의 위자료 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었던 장애사유가 존재하였다고 보아야 하며, 따라서 甲 등은 화해간주조항의 존재로 인하여 위헌결정일인 2021. 5. 27.까지 관련자의 가족으로서 가지는 고유의 위자료 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었고, 그로부터 3년이 경과하기 전에 소를 제기한 이상 甲 등의 고유의 위자료 청구권에 관한 소멸시효는 완성되지 않았는데도, 이와 달리 본 원심판단에 법리오해의 잘못이 있다고 한 사례.<br/>

판례 내용

전문 펼치기
【원고, 상고인】 원고 1 외 14인 (소송대리인 변호사 김동관)<br/>【피고, 피상고인】 대한민국<br/>【원심판결】 광주고법 2023. 9. 13. 선고 2023나22117 판결 <br/>【주 문】<br/> 원심판결의 원고들 패소 부분 중 가족 고유의 위자료 청구 부분을 파기하고, 이 부분 사건을 광주고등법원에 환송한다.<br/><br/>【이 유】 상고이유를 판단한다.<br/> 1. 사안의 개요와 쟁점<br/> 가. 사안의 개요<br/> 원심판결 이유와 기록에 따르면 다음 사실을 알 수 있다.<br/> 1) 보상 법률의 제정 <br/> 구 「광주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 등에 관한 법률」(1997. 1. 13. 법률 제5291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이하 ‘구 광주민주화보상법’이라 한다)은 1980년 5월 18일을 전후한 광주민주화운동(이하 ‘5·18민주화운동’이라 한다)과 관련하여 사망하거나 행방불명된 자 또는 상이를 입은 자(이하 ‘관련자’라 한다)와 그 유족에 대한 명예회복과 실질적인 보상 등을 목적으로(제1조) 1990. 8. 6. 제정되었다. 구 광주민주화보상법은 유족을 "민법의 규정에 의한 관련자의 재산상속인"으로 정의한 후(제2조 제1항. 이하 ‘유족’은 구 광주민주화보상법상의 유족으로서 관련자의 재산상속인을 의미한다), 관련자 또는 그 유족에게 보상금(제5조), 의료지원금(제6조), 생활지원금(제7조. 이하 통틀어 ‘보상금 등’이라 한다) 및 기타 지원금(제22조)을 지급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였다. 이에 따라 관련자 또는 그 유족이 보상금 등 지급을 신청하면 광주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심의위원회(이하 ‘보상심의위원회’라 한다)가 보상금 등 지급 여부와 금액을 결정하고, 보상결정서정본을 송달받은 신청인은 보상심의위원회에 그 지급을 청구하여 보상금 등을 수령할 수 있게 되었다(제8조, 제9조, 제10조, 제12조). <br/> 2) 관련자와 유족에 대한 보상금 등 지급 <br/> 가) 소외 1은 1980. 5. 20. 광주시(현 광주광역시, 이하 같다)에서 계엄군에게 연행되어 구금되고 구타와 고문을 당하여 부상을 입었고 1983. 11. 25. 사망하였다. 당시 소외 1의 유족으로는 배우자인 원고 1, 자녀들인 원고 2, 원고 3, 원고 4, 원고 5, 원고 6이 있었다. 원고 1은 유족대표자로서 구 광주민주화보상법에 따라 보상금 등 지급을 신청하였는데, 보상심의위원회는 1990. 12. 6. 소외 1을 5·18민주화운동 관련 상이자로 인정하여 보상금 등으로 143,022,450원의 지급을 결정하였다. 원고 1은 유족대표자로서 보상결정에 따른 보상금 등 지급을 청구하면서 보상심의위원회에 "그 보상금 등을 받을 때에는 그 사건에 대하여 화해계약하는 것이며 그 사건에 관하여 어떠한 방법으로라도 다시 청구하지 아니하겠음을 서약함"이라고 기재된 ‘동의 및 청구서’를 제출하였다. 피고는 유족인 원고 1, 원고 2, 원고 3, 원고 4, 원고 5, 원고 6에게 위 돈을 지급하였다.<br/> 나) 소외 2는 1980. 5. 18.부터 같은 달 27일까지 광주시 소재 전남도청 앞에서 사망한 시민들의 시체수습, 부상자 후송 등의 일을 하다가 1980. 6. 12. 헌병대에 체포되어 계엄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382일간 구금되었다. 소외 2는 1982. 4. 6. 다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금되어 고문 및 구타를 당하다가 1982. 5. 15. 구속집행정지로 석방되었다. 이후 소외 2는 위와 같은 과정에서 입은 부상 증세가 악화되어 1982. 5. 31. 사망하였다. 당시 소외 2의 유족으로는 자녀들인 원고 8, 원고 9, 원고 10, 원고 11, 원고 12, 원고 13이 있었고, 원고 7은 사실혼 배우자 관계에 있었다. 원고 7은 유족대표자 자격으로 구 광주민주화보상법에 따라 보상금 등 지급을 신청하였는데, 보상심의위원회는 1990. 12. 6. 소외 2를 5·18민주화운동 관련 사망자로 인정하고 보상금 등으로 122,243,260원의 지급을 결정하였다. 원고 7은 유족대표자 자격으로 보상결정에 따른 보상금 등 지급을 청구하면서 보상심의위원회에 "그 보상금 등을 받을 때에는 그 사건에 대하여 화해계약하는 것이며 그 사건에 관하여 어떠한 방법으로라도 다시 청구하지 아니하겠음을 서약함"이라고 기재된 ‘동의 및 청구서’를 제출하였다. 피고는 보상금 등 지급을 신청하지 않은 원고 9를 제외하고 원고 7, 원고 8, 원고 10, 원고 11, 원고 12, 원고 13에게 위 돈을 지급하였다. <br/> 한편 원고 7도 1980. 6. 20. 보안대에 연행되어 고문 및 구타를 당하여 부상을 입었다. 당시 원고 7은 사실혼 관계에 있는 소외 2와 사이에 자녀로 원고 10, 원고 11, 원고 12, 원고 13을 두고 있었다. 원고 7은 구 광주민주화보상법에 따라 보상금 등 지급을 신청하였는데, 보상심의위원회는 1990. 12. 6. 원고 7을 5·18민주화운동 관련 상이자로 인정하고 보상금 등으로 42,624,010원의 지급을 결정하였다. 원고 7은 보상결정에 따른 보상금 등 지급을 청구하면서 보상심의위원회에 "그 보상금 등을 받을 때에는 그 사건에 대하여 화해계약하는 것이며 그 사건에 관하여 어떠한 방법으로라도 다시 청구하지 아니하겠음을 서약함"이라고 기재된 ‘동의 및 청구서’를 제출하였다. 피고는 원고 7에게 위 돈을 지급하였다. <br/> 다) 소외 3은 1980. 5. 18. 광주시에서 계엄군에게 폭행을 당하여 머리 등에 부상을 입었고, 그 증세가 악화되어 1985. 9. 13. 사망하였다. 사망 당시 소외 3의 유족으로 배우자인 소외 4와 자녀인 소외 5가 있었고, 소외 6(2012. 7. 22. 사망)과 소외 7(2011. 11. 7. 사망)은 소외 3의 부모, 원고 14, 원고 15는 소외 3의 누나이다. 원고 15의 보상금 등 지급 신청에 대하여 보상심의위원회는 재심의를 거쳐 1994. 5. 2. 소외 3을 5·18민주화운동 관련 사망자로 인정하고 소외 4, 소외 5에게 기타 지원금으로 합계 168,865,800원의 지급을 결정하였다. 소외 4는 보상결정에 따른 지급을 청구하면서 보상심의위원회에 "그 보상금 등을 받을 때에는 그 사건에 대하여 화해계약하는 것이며 그 사건에 관하여 어떠한 방법으로라도 다시 청구하지 아니하겠음을 서약함"이라고 기재된 ‘동의 및 청구서’를 제출하였다. 피고는 소외 4, 소외 5에게 위 돈을 지급하였다. <br/> 3)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br/> 구 광주민주화보상법 제16조 제2항(이하 ‘이 사건 화해간주조항’이라 한다)은 "이 법에 의한 보상금 등의 지급결정은 신청인이 동의한 때에는 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하여 입은 피해에 대하여 민사소송법의 규정에 의한 재판상 화해가 성립된 것으로 본다."라고 규정하였다. 이 사건 화해간주조항은 구 광주민주화보상법이 1990. 8. 6. 제정된 후 2006. 3. 24. 법률 제7911호로 개정되기 전까지 그대로 유지되었다.<br/> 헌법재판소는 2021. 5. 27. 이 사건 화해간주조항은 정신적 손해에 대한 적절한 배상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정신적 손해에 대해서까지 재판상 화해가 성립한 것으로 간주함으로써 국가배상청구권을 과도하게 제한하여 관련자와 그 유족의 국가배상청구권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이 사건 화해간주조항의 ‘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하여 입은 피해’ 중 ‘정신적 손해’에 관한 부분은 헌법에 위반된다는 결정을 선고하였다(헌법재판소 2021. 5. 27. 선고 2019헌가17 전원재판부 결정. 이하 ‘이 사건 위헌결정’이라 한다). <br/> 4) 원고들의 이 사건 소 제기 <br/> 이 사건 위헌결정 후 원고들은 피고 소속 공무원들의 위법한 공무집행행위로 인하여 5·18민주화운동 관련자와 그 유족 또는 ‘유족 아닌 가족’(관련자가 사망하였으나 관련자의 재산상속인이 아니거나, 사망하지 않은 관련자의 가족 및 사실혼 배우자를 포함한다. 이하 유족과 유족 아닌 가족을 통틀어 ‘가족’이라 한다)인 원고들이 정신적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면서 2021. 11. 25. 국가배상을 구하는 이 사건 소를 제기하였다. <br/> 나. 원심의 판단<br/> 원심은 판시와 같은 이유로 피고는 5·18민주화운동과 관련하여 소속 공무원들이 공권력을 남용하여 저지른 직무상 불법행위로 인하여 관련자와 그 가족인 원고들이 입은 정신적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단하였다. 다만 원고들이 관련자의 가족 지위에서 가지는 고유의 위자료 청구권은 보상심의위원회의 보상금 등 지급결정일부터 민법 제766조 제1항에 규정된 3년의 소멸시효가 기산된다고 보아, 피고의 소멸시효 항변을 받아들여 가족 고유의 위자료 청구 부분을 기각하고, 이 사건 위헌결정이 있기 전까지 그 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는 법률상 장애가 존재하였다는 원고들의 주장은 배척하였다. <br/> 다. 이 사건의 쟁점<br/> 이 사건의 쟁점은 원고들이 5·18민주화운동 관련자의 가족으로서 가지는 고유의 위자료 청구권이 국가배상청구권에 관하여 국가배상법 제8조에 따라 적용되는 민법 제766조 제1항에서 정한 3년의 시효로 소멸하였는지 여부이다. 구체적으로 이 사건 화해간주조항이 관련자의 위자료 청구권과 마찬가지로 관련자의 가족인 원고들 고유의 위자료 청구권 행사에서도 권리행사 장애사유로 존재하였고, 이에 따라 원고들 고유의 위자료 청구권의 소멸시효 기산점을 민법 제166조 제1항에 따라 이 사건 화해간주조항이 위헌으로 선언된 이 사건 위헌결정일로 볼 수 있는지가 문제 된다. <br/> 2. 쟁점에 관한 판단<br/> 가. 관련 법리<br/> 1) 국가배상청구권에 관하여 국가배상법 제8조에 따라 적용되는 민법 제766조 제1항은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의 단기소멸시효 기산점을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로 규정한다.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이란 피해자나 그 법정대리인이 손해 및 가해자를 현실적이고도 구체적으로 인식한 날로서, 그 인식은 손해발생의 추정이나 의문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손해의 발생사실뿐만 아니라 가해행위가 불법행위를 구성한다는 사실, 즉 불법행위의 요건사실에 대한 인식으로서 위법한 가해행위의 존재, 손해의 발생 및 가해행위와 손해 사이의 인과관계 등이 있다는 사실까지 안 날을 뜻한다(대법원 2011. 3. 10. 선고 2010다13282 판결, 대법원 2020. 4. 9. 선고 2019다246573 판결 등 참조). <br/> 2) 민법 제166조 제1항은 소멸시효 기산점을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때’로 규정한다.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에 관한 3년의 단기소멸시효에는 민법 제766조 제1항 외에 소멸시효 기산점에 관한 일반 규정인 민법 제166조 제1항도 적용되므로, 단기소멸시효는 피해자가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에 더하여 그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때’가 도래하여야 비로소 진행한다(대법원 2012. 4. 13. 선고 2009다33754 판결, 대법원 2023. 1. 12. 선고 2021다201184 판결 등 참조). 따라서 권리행사를 가능하지 않게 하는 장애사유가 있다면 민법 제766조 제1항의 단기소멸시효는 진행하지 않는다.<br/> 3) 여기서 권리행사를 가능하지 않게 하는 장애사유는 일반적으로 법률상 장애사유를 의미하므로, 권리자의 개인적 사정이나 권리 발생 및 권리행사 가능성에 대한 부지 등 사실상 장애가 있다는 사정만으로 소멸시효가 진행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대법원 2010. 9. 9. 선고 2008다15865 판결 등 참조). 다만 법률상 장애와 사실상 장애는 민법상 정의되거나 민법의 문언에 근거를 두고 있지 않고, 양자가 언제나 뚜렷하게 구별되지도 않는다. 법률상 장애와 사실상 장애의 구별에 따라 소멸시효 기산점을 판단하는 방식은 일반적으로 타당하나, 그것이 어떠한 예외도 허용되지 않는 판단 방식이라고 할 수는 없다(대법원 2003. 2. 11. 선고 99다66427, 73371 판결, 대법원 2016. 10. 27. 선고 2014다211978 판결 등 참조). <br/> 4) 민법 제166조 제1항에 따른 소멸시효 기산점인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때’의 궁극적 판단 기준은 ‘권리행사의 객관적, 합리적 기대가능성’이다. 그러므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 행사의 객관적, 합리적 기대가능성을 부정하는 사유가 있다면 그것이 일반적으로 이해되는 법률상 장애사유가 아니라도 민법 제766조 제1항의 단기소멸시효가 진행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한다. 이때 권리행사의 객관적, 합리적 기대가능성이 있는지는 소멸시효 제도의 취지와 더불어 권리의 목적과 성격, 채권자와 채무자의 특성과 상호 관계, 사안의 유형과 맥락 등을 두루 규범적으로 고려하여 권리행사가 문제 되는 시점의 일반인을 기준으로 판단하여야 한다. <br/> 5) 또한 국가배상청구권이 문제 되는 사안에서는, 국가가 개인의 기본권 보장 의무를 저버린 채 오히려 국민에 대해 불법행위를 저지름으로써 발생한 손해를 사후적으로 회복·구제하기 위해 마련된 특별한 기본권이라는 국가배상청구권의 특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공무원이 통상적인 공무수행 과정에서 개별적으로 불법행위를 저지른 것이 아니라 이른바 과거사 사건과 같이 공무원들이 조직적으로 관여하여 불법행위를 저질러 중대한 인권침해가 발생하였고, 이후 진실규명의 어려움, 억압적 사회 분위기 등으로 국가배상청구권 행사가 사실상 곤란하였다면 이러한 사정도 함께 참작하여야 한다. <br/> 6) 일반적으로 법률의 부지나 잘못된 법률 해석은 권리행사의 객관적, 합리적 기대가능성을 부정하는 사유가 아니다. 하지만 국가배상사건의 가해자인 국가가 국가배상 관련 법령을 제정·집행하는 과정에서 국가배상의 법률관계를 복잡하고 불명확하게 만들었고, 그로 인하여 피해자인 국민이 자신의 권리관계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여 그 권리를 행사하기 어렵게 된 경우에는, 사후적인 법령 해석 결과 그 권리를 행사할 수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는 이유로 법률관계가 불명확하였던 이전 상황에서도 권리행사 가능성이 있었다고 쉽사리 단정해서는 안 된다. 이 경우 권리행사 가능성은 관련 법령의 내용 및 이에 따른 국가의 조치 등에 비추어 일반적인 피해자라면 국가를 상대로 권리를 행사할 것이라 객관적, 합리적으로 기대할 수 있었는가를 중심으로 국가배상제도의 목적과 피해자 보호 필요성 등을 함께 고려하여 신중하게 판단하여야 한다. <br/> 나. 이 사건에 관한 판단<br/> 1) 관련자의 가족인 원고들은 보상심의위원회가 5·18민주화운동과 관련하여 사망하거나 상이를 입은 자를 5·18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하고 관련자 또는 그 유족에 대하여 보상금 등 지급결정을 한 무렵에는 피고의 불법행위와 그로 인한 손해를 현실적이고도 구체적으로 인식할 수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원고들이 보상심의위원회의 보상금 등 지급결정으로 손해 및 가해자를 알았더라도, 원고들에게는 이 사건 위헌결정이 있기까지 원고들 고유의 위자료 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었던 장애사유가 존재하였다고 보아야 한다. 그 상세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br/> 가) 구 광주민주화보상법이 1990. 8. 6. 제정됨으로써 5·18민주화운동 관련자와 그 유족에게 보상금 등을 지급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되었다. 또한 1995. 12. 21. 제정된 구 「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2010. 3. 24. 법률 제10182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이하 ‘구 5·18민주화운동법’이라 한다)이 제6조에서 "광주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 등에 관한 법률의 규정에 의한 보상은 배상으로 본다."라는 배상의제 규정을 둠으로써 구 광주민주화보상법의 규정에 의한 보상이 손해 전보를 의미하는 ‘배상’의 성질을 가진다는 점이 명확해졌다. 한편 이 사건 화해간주조항에 따르면, 보상금 등 지급결정에 동의한 신청인의 5·18민주화운동 관련 피해에 대하여 재판상 화해가 성립된 것으로 보므로 신청인은 이와 별도로 국가배상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게 된다. <br/> 나) 이 사건 화해간주조항은 관련자 본인의 피해와 관련자 가족 고유의 피해를 준별하지 않고 있고, 구 광주민주화보상법이 보상금 등 산정에 있어 적극적 손해(제6조 의료지원금)와 소극적 손해(제5조 보상금, 제7조 생활지원금)만을 고려하고 있음에도 정신적 손해를 그 효력 범위에서 배제하고 있지 않다. 이에 대법원은 이 사건 위헌결정 전까지는 위와 같은 구 광주민주화보상법의 입법 취지, 관련 규정의 내용, 이 사건 화해간주조항의 입법 목적 등을 고려하여 신청인이 보상심의위원회의 보상금 등 지급결정에 동의한 때에는 이 사건 화해간주조항에 따라 위자료를 포함하여 그가 보상금 등을 지급받은 5·18민주화운동과 관련하여 입은 피해 일체에 대하여 재판상 화해와 동일한 효력이 발생한다고 해석하였다(대법원 2015. 2. 26. 선고 2012다203089 판결 참조). <br/> 다) 구 광주민주화보상법 시행령(2006. 6. 30. 대통령령 제19585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20조는 "보상결정통지를 받은 신청인이 보상금 등의 지급을 받고자 할 때에는 다음 사항을 기재한 [별지 제10호 서식]의 동의 및 청구서에 보상결정서정본과 신청인의 인감증명서 각 1부를 첨부하여 보상심의위원회에 제출하여야 한다."라고 하면서 제3호에 "보상결정에 동의하고 보상금 등의 지급을 청구한다는 취지"를 규정하고 있다. 위 시행령 [별지 제10호 서식]으로 마련된 ‘동의 및 청구서’에는 "1. 신청인은 아래 광주민주화운동 관련 피해에 대한 광주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 등에 관한 법률 제9조의 규정에 의한 보상결정에 이의 없음 2. 신청인은 그 보상결정액을 지급받고자 함 3. 그 보상금 등을 받을 때에는 그 사건에 대하여 화해계약하는 것이며 그 사건에 관하여 어떠한 방법으로라도 다시 청구하지 아니하겠음을 서약함"이라고 기재되어 있다.<br/> 라) 관련 법령 규정과 이에 기초한 ‘동의 및 청구서’ 서식, 특히 보상금 등 수령으로 신청인과 국가 사이에 해당 사건에 대한 화해가 성립하고 신청인은 어떠한 방법으로라도 다시 국가에 배상을 청구하지 않겠다는 서약 부분을 고려하면, 보상금 등 지급을 신청한 뒤 그 지급결정에 동의하여 보상금 등을 수령한 유족(이하 ‘보상금 동의수령 유족’이라 한다)은 이 사건 화해간주조항 및 위 서약에 따라 자신의 고유한 손해를 포함한 일체의 손해배상 문제가 포괄적·종국적으로 정리되었다고 이해하였을 가능성이 높다. 이와 달리 일반인이 이 사건 화해간주조항 및 위 서약 부분의 내용에도 불구하고 관련자 본인의 피해와 보상금 동의수령 유족 자신의 고유한 피해를 구분하면서 위 화해간주조항 및 서약의 효력이 전자에만 미치고 후자에는 미치지 않는다는 법적 평가를 한 뒤 후자에 관해 별도로 국가배상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객관적, 합리적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br/> 마) 나아가 다음 사정에 비추어 보면, 보상금 동의수령 유족뿐만 아니라 그 외의 가족(이하 ‘보상금 미수령 가족’이라 한다)에게도 자신의 고유한 위자료 청구권을 별도로 행사할 객관적, 합리적 기대가능성이 있었다고 평가하기 어렵다. <br/> (1) 구 광주민주화보상법은 1990. 8. 6.에 제정되었고 이에 따른 보상금 등 지급결정은 그 이후에 이루어졌는데, 이는 1980. 5. 18.을 전후한 5·18민주화운동이 있었던 때로부터 10년 이상이 지난 시점이다. 그런데 당시 국가배상청구권의 장기소멸시효 기간은 구 예산회계법(1989. 3. 31. 법률 제4102호로 전부 개정되었다가 2006. 10. 4. 법률 제8050호 국가재정법 부칙 제2조에 의하여 폐지된 것으로서, 2006. 12. 31.까지 시행된 것) 제96조 제2항, 제1항에 따라 5년이다. 그러므로 5·18민주화운동 당시 국가배상청구권이 발생하였더라도 구 광주민주화보상법 제정 시점에는 이미 국가배상청구권의 장기소멸시효가 완성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br/> (2) 대법원은 1994년에 이르러 소멸시효 항변의 권리남용 일반론을 처음 판시하였고(대법원 1994. 12. 9. 선고 93다27604 판결 참조), 1997년에 이르러 이러한 일반론에 기초하여 실제로 소멸시효 항변을 배척하는 판결을 처음 선고하였다(대법원 1997. 12. 12. 선고 95다29895 판결 참조). 한편 헌법재판소는 2018년에 이르러 민법 제166조 제1항, 제766조 제2항 중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이하 ‘과거사정리법’이라 한다) 제2조 제1항 제3호의 ‘민간인 집단 희생사건’, 같은 항 제4호의 ‘중대한 인권침해사건·조작의혹사건’에 적용되는 부분이 위헌이라고 판단하여 객관적 기산점에 따른 5년의 장기소멸시효가 위 사건에는 적용되지 않도록 하였다(헌법재판소 2018. 8. 30. 선고 2014헌바148 등 전원재판부 결정). 그런데 보상금 등 지급결정 당시에는 위와 같이 장기소멸시효 기간이 지난 후에도 국가배상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법리나 입법이 존재하지 않았다. <br/> (3) 구 광주민주화보상법이 제정되어 보상금 동의수령 유족이 보상금 등의 지급대상자로서 보상금 등을 수령한 반면, 보상금 미수령 가족은 유족이 아니어서 애초에 보상금 등 지급 대상자에서 제외되거나, 유족임에도 보상금 등 지급을 신청하지 않아 이 사건 화해간주조항의 적용 대상이 아니게 되었을 뿐인데, 이러한 사정만으로 보상금 미수령 가족에게 별도로 국가배상청구권을 행사할 기대가능성이 인정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국가배상청구권의 장기소멸시효 기간이 이미 지났다는 사정 외에도 위 법률의 제정 경위, 이 사건 화해간주조항 등의 내용, ‘동의 및 청구서’ 서식 중 관련 피해에 관하여 향후 어떠한 방법으로도 다시 청구하지 않겠다는 서약 부분 등에 비추어 보면, 관련자와 그 가족은 구 광주민주화보상법에 따른 보상을 ‘관련자와 그 가족에게 발생한 모든 관련 피해에 대한 금전적 전보 문제를 포괄적·종국적으로 해결하는 특수한 입법 조치’로 받아들였을 가능성이 크다. <br/> (4) 더욱이 보상금 등 지급결정 당시에는 관련 피해의 직접 당사자인 관련자 본인이나 그로부터 재산을 상속받는 관계에 있는 유족조차 보상금 등을 지급받는 외에는 국가배상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다고 이해되고 있었다. 관련자의 가족은 관련 피해로 인한 고통을 함께 겪으면서 대개 권리행사도 함께 하게 되므로 이에 대응한 보상금 등의 지급도 관련자와 그 가족 전체에 대한 금전적 전보의 의미로 이루어진다고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았다고도 할 수 있다. 이러한 사정들과 당시 사회적 분위기까지 고려하면, 관련자 본인도 아니고 재산상속인도 아닌, 유족 아닌 가족이 관련자 본인이나 그 유족과는 별도로 국가배상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인식하고 이를 실제로 행사하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실제로 보상금 등 지급이 이루어진 이후 오랜 기간에 걸쳐 이러한 관련자의 가족이 별도로 국가배상청구권을 행사한 사례가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는 점도 이를 방증한다. <br/> 바) 이상과 같이 보상금 동의수령 유족이든 보상금 미수령 가족이든 관련자의 가족이 권리행사를 하지 못한 상황은 법률의 부지 또는 잘못된 법률 해석 등 그의 주관적 사정이나 귀책사유로 인하여 발생하였다고 보기 어렵다. 오히려 이는 가해자로서 손해를 배상해야 할 국가가 불법행위일로부터 상당한 시간이 경과한 후 뒤늦게 보상 관련 법령을 제정·집행하는 과정에서 보상의 대상과 범위를 협소하게 규정하고 법률관계를 명확하게 하지 못한 채 국가편의주의적인 입장에서 위헌성의 여지가 있는 ‘동의 및 청구서’ 서식에 따라 보상 절차를 신속히 마무리하려고 하면서 초래한 측면이 있다. 이러한 사정에다가 국가배상제도의 목적과 과거사 사건의 특수성 및 그 피해자 보호 필요성을 아울러 고려한다면, 관련자의 가족에게 관련자 또는 그 유족에 대한 보상금 등 지급결정일에 자기 고유의 위자료 청구권을 행사할 것을 객관적, 합리적으로 기대할 수 있었다고 평가할 수는 없으므로, 보상금 등 지급결정일을 소멸시효 기산점으로 삼을 수 없다. <br/> 사) 한편 헌법재판소는 2021. 5. 27. 이 사건 위헌결정으로 이 사건 화해간주조항이 ‘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하여 입은 피해’ 중 ‘정신적 손해’에 대한 국가배상청구권의 행사까지 금지하는 것은 국가배상청구권을 과도하게 제한하는 것으로서 헌법에 위반된다고 결정하였다. 이와 같은 위헌결정을 통해서 관련자의 가족이 구 광주민주화보상법에 따른 보상금 등 지급과는 무관하게 그와 별도로 고유의 정신적 손해에 대한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는 점이 법적으로 선언됨으로써 관련자 가족 고유의 위자료 청구권 행사에 대한 장애사유가 비로소 제거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br/> 2) 이상과 같은 이유로 원고들은 이 사건 화해간주조항의 존재로 인하여 이 사건 위헌결정일인 2021. 5. 27.까지 관련자의 가족으로서 가지는 고유의 위자료 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었고, 그로부터 3년이 경과하기 전에 이 사건 소를 제기한 이상 원고들 고유의 위자료 청구권에 관한 소멸시효는 완성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원심은 원고들의 가족 고유의 위자료 청구권은 이미 소멸시효가 완성되었다는 피고의 항변을 받아들였다. 이러한 원심판단에는 소멸시효의 진행을 막는 권리행사 장애사유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 <br/> 3. 결론 <br/> 원심판결의 원고들 패소 부분 중 가족 고유의 위자료 청구 부분을 파기하고, 이 부분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하도록 원심법원에 환송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이 판결에는 대법관 오경미의 별개의견, 대법관 노태악의 반대의견이 있는 외에는 관여 법관의 의견이 일치하였고, 다수의견에 대한 대법관 권영준의 보충의견, 별개의견에 대한 대법관 오경미의 보충의견, 반대의견에 대한 대법관 노태악의 보충의견이 있다. <br/> 4. 대법관 오경미의 별개의견 <br/> 가. 별개의견의 요지<br/> 원심판결 중 피고의 소멸시효 항변을 받아들여 원고들의 가족 고유의 위자료 청구를 기각한 부분을 파기하여야 한다는 다수의견의 결론에는 동의한다. 그런데 다수의견은 가족 고유의 위자료 청구권의 소멸시효가 완성되지 않았다고 보지만, 별개의견은 가족 고유의 위자료 청구권의 소멸시효가 완성되었으나, 이에 대하여 국가인 피고가 소멸시효 항변을 하는 것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 권리남용으로서 허용될 수 없다고 본다. 다수의견이 제시한 ‘권리행사의 객관적, 합리적 기대가능성’이라는 새로운 기준이나 별개의견이 제시한 소멸시효 항변에서의 권리남용 법리는 모두 정의와 형평이라는 신의성실의 원칙에 기초한 것이지만, 적용의 양상에 차이가 있다. 다수의견은 소멸시효 기산점의 확정 단계에서 법률상 장애와 사실상 장애의 구분 기준에 신의성실의 원칙을 적용한 것인 데 반해, 별개의견은 선례에 따라 위 구분 기준을 유지하되 사실상 장애로 ‘권리행사의 객관적, 합리적 기대가능성’이 없는 사안이라면 이는 ‘객관적으로 채권자가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있었던 경우’로서 선례가 ‘소멸시효 완성 주장이 권리남용에 해당하여 허용할 수 없는 때’로 인정하는 전형적인 사유라고 보는 것이다. 후자의 방법이 신의성실의 원칙을 적용하는 본래적 모습이다. 이를 통해 소멸시효 기산점의 판단에서 법적 안정성을 도모하고, 나아가 보편적 법리로써 5·18민주화운동 이외의 다양한 과거사 사건 피해자들을 총체적으로 구제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다만 후자의 방법으로 피해자들을 실질적으로 구제하기 위해서는 대법원 2013. 5. 16. 선고 2012다202819 전원합의체 판결(이하 ‘2013년 전원합의체 판결’이라 한다)에서 채무자의 소멸시효 항변이 권리남용에 해당하는 경우라도 채권자의 권리행사의 상당한 기간을 민법상 시효정지에 준하여 단기간으로 제한한 법리의 재검토가 추가적으로 필요하다. <br/> 나. 별개의견을 밝히는 이유<br/> 1) 다수의견의 한계<br/> 다수의견은, 5·18민주화운동 관련자의 가족들에게 이 사건 화해간주조항이 이 사건 위헌결정 전까지 그들 고유의 위자료 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었던 장애사유로 존재하였다고 한다. 다수의견이 이와 같이 5·18민주화운동과 이를 둘러싼 법률관계의 특수성을 고려하여 관련자 가족 고유의 위자료 청구권의 소멸시효 기산점을 늦춤으로써 5·18민주화운동 관련자 가족들을 구제하는 결론에 이르렀다는 점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다수의견이 이를 위해 제시한 ‘권리행사의 객관적, 합리적 기대가능성’이라는 새로운 기준은 향후 하급심이 유사 사건에서 소멸시효 진행 여부를 가릴 수 있는 명확한 지침이 되기 어렵다. 또한 과거사 사건에서 국가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 완성 여부는 5·18민주화운동의 경우에 그치지 않고 앞으로도 계속 쟁점이 될 것인데, 다수의견이 제시하는 법리는 이 사건 위헌결정의 존재를 전제로 하는 이 사건에 특수한 것으로 이해되어 협소한 범위에서만 적용될 여지가 있고, 이에 따라 단기소멸시효 기산점을 개별 사안별로 준별하는 까다로운 문제를 남김으로써 과거사 사건 피해자를 총체적으로 구제하는 데 한계를 지닌다. 이하에서 구체적으로 본다. <br/> 2) 소멸시효 기산점 확정에서 발생하는 법적 안정성 문제<br/> 가) 민법 제166조 제1항은 "소멸시효는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때로부터 진행한다."라고 하여 소멸시효의 기산점에 관하여 규정한다. 판례는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때라 함은 그 권리의 행사에 법률상의 장애, 예를 들면 기한 미도래나 조건 불성취 등이 있는 경우를 말하는 것이고, 사실상 권리의 존재나 권리의 행사가 가능함을 알지 못하였고 알지 못함에 과실이 없다는 것과 같이 그 행사에 사실상의 장애가 있음에 불과한 경우에는 이에 해당하지 아니한다는 태도를 일관되게 취하여 왔다(대법원 1984. 12. 26. 선고 84누572 전원합의체 판결, 대법원 1992. 3. 31. 선고 91다32053 전원합의체 판결, 대법원 2004. 4. 27. 선고 2003두10763 판결 등 참조. 법률상 장애와 사실상 장애를 구별하는 판례의 입장을 이하 ‘법률상 장애론’이라 한다). 법률상 장애론이 지시하는 바는 명확하다. 법률상 장애는 소멸시효의 진행을 막지만, 사실상 장애는 소멸시효의 진행을 막지 못한다. 다수의견은 이와 같이 그간의 판례가 "소멸시효의 기산점에 관하여 변함없이 적용하여 왔던 법률상 장애와 사실상 장애의 기초적인 구분 기준"(대법원 2010. 5. 27. 선고 2009다44327 판결 참조)을 그대로 둔 채 ‘권리행사의 객관적, 합리적 기대가능성’이라는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였다. 사실상 장애라고 하더라도 그러한 장애가 권리자에 대하여 권리를 행사할 것을 기대할 수 없게 한다면 소멸시효가 진행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소멸시효 진행 여부를 가리는 ‘법률상 장애’와 ‘사실상 장애’는 본래 그 경계가 분명하지 않아 양자의 구별이 쉽지 않은 경우가 많은데, 여기에 다시 ‘권리행사의 객관적, 합리적 기대가능성’ 기준을 추가하는 것은 소멸시효 기산점의 판단을 더욱 불명확하게 한다. 이는 구체적인 지침 없이 사실심 법관에게 추가적 심리의 부담을 지우는 것이 되어 적절하지 않다. 구체적 타당성 있는 결론을 위해 ‘법률상 장애’와 ‘사실상 장애’의 구별에 일종의 탄력성 있는 해석을 할 필요가 있다고 하더라도 법적 안정성을 위해서 그 접점이 이동하는 기준은 명확하게 해 둘 필요가 있다. <br/> 나) 사실 소멸시효의 적용에서 법률상 장애와 사실상 장애의 구별이 모호한 ‘혼재 영역’의 법률적 재구성은 오랜 과제였다. 해결책은 다양할 수 있겠지만, 그동안 선례는 원칙적으로 법적 안정성을 선택하였다. 즉 민법 제166조 제1항의 해석에서는 ‘법률상 장애’의 영역을 엄격하게 인정하는 태도로써 법적 안정성을 도모하였고, 그 대신 여기서 배제된 ‘혼재 영역’에서 구체적 타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별도로 권리남용 법리를 발전시켰다. ‘법률상 장애’의 영역에서 배제됨으로써 소멸시효의 진행을 막지 못하는 사유 중 ‘객관적으로 채권자가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장애사유(이른바 제2유형)’의 영역을 설정하여 여기에 일반조항인 신의성실의 원칙을 적용한 것이다. <br/> 다수의견이 제시한 ‘권리행사의 객관적, 합리적 기대가능성’ 기준을 민법 제166조 제1항의 해석 기준으로 추가하는 것이 법적 안정성 측면에서 위험을 야기하는 근본 이유는, 위와 같은 선례의 태도와 반대로 일반조항의 불확정적 요소를 민법 제166조 제1항의 해석에 끌어왔기 때문이다. 선례가 민법 제166조 제1항의 해석으로 ‘법률상 장애’의 영역에서 일단 배제한 다음 위 제2유형의 영역에 포함시켰던 권리남용의 전형적 사유들을, 다수의견은 ‘권리행사의 객관적, 합리적 기대가능성’이라는 이름으로 바꾸어 다시 민법 제166조 제1항의 해석 도구로 가져왔다. 이것도 ‘혼재 영역’의 법률적 재구성을 위한 하나의 해결책은 될 수 있지만, 법적 안정성과 구체적 타당성이라는 목적 달성에서 선례보다 더 나은 법리 구성이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br/> 다) 이 사건의 경우만 보더라도, 국가의 불법행위 발생 이후 거의 반세기에 이르는 동안 5·18민주화운동 관련자의 가족으로 하여금 고유의 위자료 청구권 행사를 거듭 좌절시킨 사적·공적인 사실들의 성격이 법률상 장애인지 사실상 장애인지는 법률가들조차도 명백히 가려 말하기 어렵다. 여기에 다시 ‘권리행사의 객관적, 합리적 기대가능성’ 기준을 가져와 불명확성을 가중시킴으로써 사실심 심리에 부담을 줄 것이 아니라, 실무에서 이미 안정적으로 자리잡은 법률상 장애론을 전제로 하여 신의성실의 원칙 등으로 권리행사 가능성을 추가 탐색하는 것이 올바르고 합리적인 태도이다. 구제의 필요성이 큰 과거사 사건의 특성상 권리행사를 가능하지 않게 한 사유가 ‘법률상 장애’로 인정되지 않는다면 그 사유는 ‘사실상 장애’이면서도 권리남용 법리에 따른 위 제2유형 등의 사유로 인정될 여지가 많기 때문이다. <br/> 3) 일반조항의 적용에서 소멸시효 항변과 권리남용 재항변 판단에 관한 선례와의 정합성 문제 <br/> 가) 다수의견이 법률 해석에서 일반조항을 적용하는 방식에는 문제가 있다. 다수의견은 소멸시효의 문제에서 일반조항인 민법 제2조의 적용에 앞서 개별조항인 민법 제166조 제1항의 적용 가능성을 확장하여 피해자 구제를 도모하겠다는 취지로 이해되기는 한다. 다수의견의 논리는 형식적으로는 일반조항으로 도피하는 태도를 경계하는 것이지만, 실질적으로는 개별조항인 민법 제166조 제1항의 판단 기준 영역에 일반조항의 개념 요소를 끌어와 섞어버린 것이라는 역설이 있다. 이는 개별조항의 해석에 불확정개념을 과도하게 투입하여 결과적으로 개별조항 해석의 한계와 일반조항의 적용을 준별하지 못하는 결과를 야기할 수도 있다. <br/> 다수의견이 내세우는 ‘권리행사의 객관적, 합리적 기대가능성’이라는 기준은 사실 새로운 개념은 아니다. 이는 사법 영역 전반에 자리한 책임주의와 신의성실, 정의와 형평의 이념에 뿌리를 두고 있고, 그동안 대법원이 민법 제166조 제1항의 해석이나 민법 제2조의 권리남용 법리의 적용에 관하여 세운 기준은 모두 정도에 차이가 있을 뿐 이미 ‘권리행사의 기대가능성’ 개념과 깊은 관련성을 가지고 발전해 왔다. 그 발전의 경과를 짚어 보자면 이 ‘권리행사의 객관적, 합리적 기대가능성’ 개념은 민법 제166조 제1항 등 개별조항보다는 민법 제2조 등 일반조항의 적용 영역에 더 가까이 존재한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기대가능성’ 개념 자체가 공평의 원칙이나 신의성실 원칙의 구체적 하위 요소로 기능하여 왔기 때문이다. 이 사건에서 다수의견이 ‘권리행사의 객관적, 합리적 기대가능성’ 기준으로 제시하는 사유들 대부분이 선례가 과거사 사건에서 피고의 소멸시효 항변을 권리남용으로 보아 허용하지 않은 사유들과 거의 일치하고 있다는 점은 이를 강력히 방증한다. 뒤에서 상술하는 대법원 2011. 9. 8. 선고 2009다66969 판결(‘문경학살 사건’)을 비롯하여 그 무렵 과거사 사건 피해자를 구제한 대법원판결 대부분은 ‘객관적으로 채권자가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장애사유의 존재(제2유형)’를 인정하여 권리남용을 인정하였는데, 거기서 제시된 구체적 사유들은 다수의견이 말하는 ‘권리행사의 객관적, 합리적 기대가능성’ 기준에서 제시하는 사유와 다르지 않다.<br/> 나) 이러한 현상이 생긴 이유는, 2013년 전원합의체 판결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 별개의견의 생각이다. 2013년 전원합의체 판결은 선례가 그동안 과거사 사건에서 제시한 ‘혼재 영역’의 법률적 재구성 방식의 선순환을 깨뜨렸다. 다수의견은 이를 그대로 둔 채 구체적 타당성 확보를 위해 이 장애를 우회하였다. 상술하자면 이렇다. 오랜 기간 민법 제166조 제1항에서의 엄격한 ‘법률상 장애론’을 통한 법적 안정성과 민법 제2조의 ‘권리남용 법리’를 통한 구체적 타당성 도모 사이에 적정한 역할 분담이 이루어져 오다가, 2013년 전원합의체 판결이 후자의 영역에서도 엄격한 기준을 요구하면서 이러한 상호보완적 관계가 끊어졌고, ‘법률상 장애론’의 엄격함에 따른 부작용이 커졌다. ‘혼재 영역’에 있는 과거사 사건들은 소멸시효 항변이 권리남용에 해당하더라도 ‘단기간의 상당한 기간’을 지나 소를 제기한 경우에는, 2013년 전원합의체 판결에 따라 권리남용 법리로 구제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에 다수의견은 일반조항의 예외적 적용을 사실상 막아버린 2013년 전원합의체 판결 법리를 그대로 둔 채 이를 우회하여, 문경학살 사건에 관한 위 대법원 2009다66969 판결 등에서 일반조항의 적용으로서 인정한 권리남용의 구체적 사유들을 민법 제166조 제1항의 판단 기준으로 끌어와 ‘권리행사의 객관적, 합리적 기대가능성’ 개념으로 재구성하여 ‘법률상 장애론’의 엄격한 해석을 완화한 것으로 보인다. <br/> 다) 물론 다수의견의 논리도 과거사 사건 피해자를 구제하기 위한 훌륭한 방안의 하나가 될 수 있다. 다만 과거사 사건의 특수성을 고려하더라도 일반조항과 개별조항의 준별 문제나 민사소송의 전형적인 흐름에서 볼 때 소멸시효 항변에 대하여 제기되는 권리남용 재항변으로서 판단되던 사유들을 소멸시효 항변 단계로 가져와 결합시키는 것은 선례와의 정합성 면에서 여러 혼선을 야기할 수 있다. 따라서 다수의견은 민법 제166조 제1항에 따른 단기소멸시효 기산점의 판단 기준인 ‘권리행사의 객관적, 합리적 기대가능성’의 적용 범위와 민법 제2조에 따른 권리남용 재항변의 사유인 ‘객관적으로 채권자가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장애사유의 존재(제2유형)’의 적용 범위가 서로 겹치게 됨으로써 발생하는 문제에 대한 대안도 제시할 필요가 있다. 더구나 다수의견은 ‘권리행사의 객관적, 합리적 기대가능성’ 기준을 과거사 사건에만 적용되는 특수한 법리가 아니라 민법 제766조 제1항이 적용되는 일반 불법행위 사건에도 적용되는 것으로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그러하다. 결국 별개의견으로서는 과거사 사건 해결을 위하여 다수의견과 같이 복잡한 우회 방법으로 혼선을 야기하는 것보다 뒤에서 보는 제2 시기의 선례가 제시한 권리남용 법리의 근본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 법리의 전체적 정합성 면에서도 낫다는 입장이다. <br/> 4) 과거사 사건 피해자에 대한 총체적이고도 차별 없는 구제 필요성<br/> 가) 다수의견은, 이 사건이 공무원들이 조직적으로 관여한 불법행위로 인하여 중대한 인권침해가 발생한, 이른바 과거사에 대한 국가배상청구 사건이라는 사정 외에도, 가해자인 국가가 불명확하고 위헌적 요소가 있는 구 광주민주화보상법을 제정하여 이 사건 위헌결정이 나올 때까지 5·18민주화운동 관련자 가족들의 권리행사를 어렵게 하였다는 점을 관련자 가족들에 대하여 권리행사의 객관적, 합리적 기대가능성을 부정하는 주요 이유로 들고 있다. 결국 다수의견이 이 사건에서 관련자 가족 고유의 위자료 청구권에 대한 소멸시효 기산점을 늦출 수 있었던 것은 위와 같이 소멸시효 기산점의 새로운 단초로 삼을 수 있는 이 사건 위헌결정의 존재라는 특수성에 기인한 것이므로, 향후 이 사건 법리가 다른 과거사 사건에까지 일반적으로 적용될 수 있을지는 다소 불투명하다. <br/> 나) 민법 제166조 제1항에서 권리행사의 객관적, 합리적 기대가능성을 기준으로 소멸시효 기산점을 늦추는 다수의견의 방식은 헌법재판소 2018. 8. 30. 선고 2014헌바148 등 전원재판부 결정(이하 ‘헌법재판소 2014헌바148 결정’이라 한다)과의 관계에서도 그 타당성과 권리구제의 효율성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헌법재판소 2014헌바148 결정은 과거사정리법 제2조 제1항 제3호(민간인 집단 희생사건), 제4호(중대한 인권침해사건·조작의혹사건)의 사건에 민법 제166조 제1항, 제766조 제2항의 장기소멸시효를 적용하는 것은 위헌이라고 선언하였다. 헌법재판소 2014헌바148 결정이 법원에 남긴 과제는 두 가지이다. 일차적으로 구체적 사건별로 단기소멸시효 기산점의 ‘새로운 단초’를 탐색하는 것이다. 즉 ‘불법행위로 손해가 발생한 날’ 이외에 국가배상청구권의 단기소멸시효 기산점으로 삼을 수 있는 날로서 민법 제166조 제1항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때’인 ‘법률상 장애의 해소일’ 또는 제766조 제1항의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을 피해 구제의 관점에서 새롭게 확정하여야 하는 과제이다. 그다음 과제는 탐색의 결과로도 여전히 발생하는 ‘시효 기산점의 새로운 단초가 없는 피해자’를 어떻게 구제할 것인가이다. <br/> 첫 번째 과제와 관련하여, 법원은 사건의 유형별 구체적 특성에 따라 위 제3호 또는 제4호 사건 피해자의 경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과거사위원회’라 한다)의 진실규명결정통지서 송달일(대법원 2020. 5. 28. 선고 2018다265768 판결 등)이나 재심무죄판결 확정일(대법원 2019. 12. 24. 선고 2019다231625 판결 등)을 민법 제766조 제1항의 단기소멸시효 기산점으로 삼아 이때부터 비로소 불법행위의 요건사실을 현실적이고 구체적으로 인식할 수 있었다고 봄으로써 다수의 사건에서 피해자를 구제하였다. 그러나 이와 같은 유형별 탐색을 하더라도 불법행위일이나 이 사건의 보상금 등 지급결정일처럼 아주 오래전의 사건 외에는 민법 제166조 제1항 또는 제766조 제1항의 단기소멸시효 기산점으로 삼을 수 있는 ‘새로운 단초’가 없는 피해자들이 여전히 있다. 이로 인한 두 번째 과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br/> 다) ‘시효 기산점의 새로운 단초가 없는 피해자’의 문제는, 헌법재판소 2014헌바148 결정 이후 과거사 사건의 유형별 탐색에서 법원이 인정한 단기소멸시효 기산점의 전형적 특성에서 연유한다. 법원이 인정한 새로운 기산점은 과거사위원회의 진실규명결정, 법원의 재심무죄판결, 형사보상결정, 전원합의체 판결,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 등이다. 이는 국가기관이 개별 법령에서 제도적으로 부여한 권한행사의 형식을 취하여 그 신청인들에게 공법적으로 내놓는 구체적 구제방법이라는 특징이 있다. 따라서 개별 법령의 내용상 공법적 권한행사가 발동될 수 없는 영역에서는 이러한 기산점이 새로 생성될 수 없다. 과거사위원회의 한시적 활동이 끝난 뒤에는 진실규명결정을 받을 수 없고, 유죄확정판결이 없는 피해자는 재심무죄판결을 받을 수 없다. 국가기관이 시행하는 제도적 구제방법의 한계로 말미암아 구조적으로 이러한 제도의 바깥에 있는 과거사 사건 피해자들로서는 시효 기산점으로 삼을 수 있는 ‘새로운 단초’의 부존재를 이유로 단기소멸시효의 적용에서 불이익을 받고 있다. 여기에 소멸시효 제도의 특성상 문제점이 더하여졌다. 진실규명결정통지서 송달일이나 재심무죄판결 확정일 같은 단기소멸시효의 주관적 기산점(민법 제766조 제1항)은 과거사 사건의 직접적 피해자인 관련자와 그 가족을 모두 적용 범위에 포함시킬 수 있는 반면, 이 사건 위헌결정 등 단기소멸시효의 객관적 기산점(민법 제166조 제1항)은 ‘법률상 장애론’에 따라 관련자만 그 적용 범위에 포함시킬 수밖에 없는 근본적 한계를 갖게 된다. 물론 이러한 제도적 한계에 더하여 유죄확정판결이 있는 피해자가 제때 재심을 신청하지 않은 경우처럼 개인적 사정이 장애사유로 겹치기도 한다. 이러한 ‘새로운 단초 없는 피해자’의 구제 문제를 외면하는 것은 헌법재판소 2014헌바148 결정의 취지에 어긋나고 기본권 보장기관인 법원이 취할 태도라고 할 수도 없다. <br/> 라) 대통령 긴급조치 제9호의 발령 및 적용·집행 행위로 인한 국가배상책임이 문제 된 대법원 2022. 8. 30. 선고 2018다212610 전원합의체 판결(이하 ‘대법원 2018다212610 전원합의체 판결’이라 한다)도 근본적으로 그러한 ‘새로운 단초 없는 피해자들’의 구제에 대한 문제의식이 있었다. 긴급조치 위반으로 체포·구금되어 수사를 받은 피해자들 중 재심무죄판결을 받은 사람들은 헌법재판소 2014헌바148 결정으로 소멸시효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으나, 기소 전 석방이나 기소 후 공소기각 판결 등으로 유죄확정판결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시효 기산점의 ‘새로운 단초’가 없었기 때문이다. 위 전원합의체 판결은 긴급조치 관련 공무원의 직무행위가 불법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았던 기존의 판례를 변경함으로써 ‘새로운 단초 없는’ 당해 사건 당사자들을 구제하였는데, 결과적으로 대법원은 전원합의체 판결의 선고라는 공권적 권한행사로써 긴급조치 사건 피해자에게 시효 기산점의 전형적 ‘단초’를 추가로 제공하게 되었다. 그러나 긴급조치 사건 외의 영역에서 시효 기산점의 새로운 단초가 없는 피해자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피해자들 중 사망자가 많아 유죄확정판결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가 빈번한 5·18민주화운동 관련자들도 그러한 처지에 있었는데, 이 사건 위헌결정으로 ‘법률상 장애의 해소일’이 생기면서 비로소 구제가 가능해졌다. 그러나 이 사건 위헌결정의 효력이 직접적으로 미치지 않는 5·18민주화운동 관련자의 가족들은 선례에 따를 때 이 사건 위헌결정을 새로운 단초로 삼을 수 없었다.<br/> 마) 다수의견은 구체적 사안별 단기소멸시효 기산점의 탐색이라는 일차적 과제 해결의 방식으로 이 사건을 해결하고자 한다. 원심이 기존의 ‘법률상 장애론’에 따라 결과적으로 관련자 가족 고유의 위자료 부분을 ‘시효 기산점의 새로운 단초가 없는 피해자’ 유형으로 분류한 것을 문제 삼아, 다수의견은 기대가능성 개념으로 ‘법률상 장애론’의 기준을 사실상 완화하여 이들을 ‘새로운 단초가 있는 피해자’ 유형으로 재분류한 것이 그것이다. ‘법률상 장애론’의 기준을 완화하기 위하여 일반조항 요소를 도입한 것의 문제를 별론으로 하면, 다수의견은 과거사 사건의 또 하나의 과제인 ‘시효 기산점의 새로운 단초가 없는 피해자’의 구제 문제에 해결책을 제시한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착시현상에 불과하다. 다수의견은 여전히 전형적 단초인 이 사건 위헌결정의 존재를 전제로 하여 이를 ‘새로운 단초’로 주장할 수 있는 주관적 영역을 조금 확장하는 방식일 뿐이기 때문이다. ‘이 사건 위헌결정’과 같은 전형적 단초가 없는 피해자들의 영역에서 다수의견의 법리로도 소멸시효의 완성을 막을 수 없다.<br/> 다수의견으로 구제가 불가능한 사안의 예를 몇 가지 들어 보자. 구 광주민주화보상법뿐만 아니라 구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2000. 1. 12. 법률 제6123호로 제정되고, 2015. 5. 18. 법률 제13289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이하 ‘구 민주화보상법’이라 한다) 제18조 제2항도 이 사건 화해간주조항과 동일한 규정을 두고 있었고, 각 법률에 따라 보상금 등 지급결정을 받은 사람의 국가배상청구 소송에서 선례는 권리보호의 이익을 부정하여 왔다(대법원 2014. 3. 13. 선고 2012다45603 판결, 대법원 2015. 1. 22. 선고 2012다204365 전원합의체 판결 등 참조, 이하 위 두 조항으로 발생한 권리보호이익 문제를 ‘화해간주조항 문제’라고 한다). 그런데 구 민주화보상법에 대하여는 2018년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헌법재판소 2018. 8. 30. 선고 2014헌바180 등 전원재판부 결정)이 이루어졌고 이 사건 화해간주조항에 대하여는 2021년 이 사건 위헌결정이 나온바, 그 사이에 놓인 2020년경 구 민주화보상법상 관련자와 5·18민주화운동 관련자가 각각 국가배상청구의 소를 제기한 경우를 가정한다. 이들이 모두 관련법에 따라 보상금 등 지급결정을 이미 받았다면 전자는 선례에 따라 2018년에 나온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을 ‘새로운 단초’로 인정받아 국가배상을 받고, 후자는 이러한 단초가 없어서 소멸시효가 완성되었다는 판단을 받을 수밖에 없다. 다수의견은 이 후자의 사안을 여전히 구제할 수 없다. 그런데 후자가 이 사건 위헌결정이 나온 이후 3년 내에 소송을 제기하였다면 선례에 따라 권리구제를 받게 된다. 반대로 구 민주화보상법상 관련자나 5·18민주화운동 관련자가 보상금 등 지급결정을 받지 않은 경우라면 어떠한가. 이들은 모두 화해간주조항 문제와 무관하기 때문에 구 민주화보상법에 대한 2018년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이나 이 사건 위헌결정으로 권리행사의 장애가 해소된 경우라 할 수 없다. 이러한 사안에서 다수의견의 ‘권리행사의 객관적, 합리적 기대가능성’ 기준을 동원하더라도 구체적 불법행위일 외에 단기소멸시효의 기산점으로 삼을 수 있는 것이 없다. 다수의견이 선례에 따른 ‘법률상 장애론’의 기준을 무리하게 희석시키는 법리를 취하고서도 추가적으로 얻을 수 있는 권리구제의 영역은 사실상 매우 협소하다. 이러한 다수의견의 입장은, 유죄확정판결을 받고도 아직 재심무죄판결을 받지 않은 피해자에게는 이를 거쳐 오라고 요구하는 것이거나, 이미 과거사위원회의 한시적 활동기간이 지났음에도 진실규명결정을 받아 오라고 하는 것과 실질적으로 마찬가지이다. 다수의견이 이 사건에서 과거사 사건 피해자의 일부를 구제할 수 있는 안을 나름 제시하였음에도, 별개의견이 이에 동참할 수 없는 이유이다. <br/> 바) 사실 이 사건은 헌법재판소 2014헌바148 결정이 법원에 남긴 두 가지 과제 모두에 대하여 응답할 것이 요구되는 법률적 쟁점을 내포하고 있다. 다수의견은 이 사건 위헌결정을 도구로 시효 기산점의 ‘새로운 단초가 없는 피해자’ 문제를 우회하고 있어서, 이 사건 당사자들이 제기한 문제에 대한 제대로 된 응답은 아니다. 시효 기산점의 ‘새로운 단초가 없는 피해자’의 구제 문제는 이 사건이 가지고 있는 가장 핵심적인 법률적 쟁점이므로, 이를 회피하지 말고 제대로 탐색하자는 것이 별개의견의 입장이다. 이를 통하여 과거사 사건 피해자를 총체적으로 구제하기 위한 보편성 있는 법리의 전개가 가능해진다. 별개의견이 제시하는 것은 바로 2013년 전원합의체 판결 전에 선례가 과거사 사건에서 일반적으로 제시하던 보편타당한 법리일 뿐 새로운 것이 전혀 아니다. <br/> 5) 신의성실의 원칙 적용의 원칙적 모습으로서 소멸시효 항변의 권리남용 법리<br/> 과거사 사건의 소멸시효 문제에서 피해자 구제를 위한 ‘본령’ 역할을 해 온 것은 선례가 세운 권리남용 법리이다. 이는 2013년 전원합의체 판결이 나오기까지 권리구제에 큰 역할을 한 것으로서 과거사 사건에 그치지 않고 일반적으로도 소멸시효 법리에 신의성실의 원칙을 적용하는 원칙적 모습이라 할 수 있다. <br/> 5·18민주화운동과 같은 과거사 사건에서 민법 제166조 제1항에 따른 법률상 장애론 및 헌법재판소 2014헌바148 결정의 취지에 따라 사건의 유형과 구체적 특성에 부합하는 단기소멸시효의 기산점을 탐색하되, 그러한 과정을 거친 결과로도 소멸시효 완성을 인정할 수밖에 없고 그로 인한 중대한 불합리를 시정할 필요가 있는 경우, 권리남용 법리로 국가의 소멸시효 항변을 배척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소멸시효에 관한 기존 법리의 테두리 안에서 5·18민주화운동 관련자와 그 가족 전부, 나아가 과거사 사건 피해자들 모두를 동등하게 대우하고 피해를 충실히 구제하는 합헌적 해석 방안이다. 더욱이 권리남용금지 원칙의 적용은 강행규정에 관한 것으로서 당사자의 주장이 없더라도 법원이 그 위반 여부를 직권으로 판단할 수 있는 것이고(대법원 2023. 5. 11. 선고 2017다35588, 35595 전원합의체 판결 등 참조), 이 사건에서 원고들은 원심에서는 피고의 소멸시효 항변이 권리남용에 해당한다는 주장을 하지 않다가 상고심에 이르러 이를 주장하고 있으므로, 대법원은 이에 대하여 충실히 답변할 의무가 있다. <br/> 다. 과거사 사건에서 국가의 소멸시효 항변이 권리남용인지에 대한 대법원의 법리 전개 경과<br/> 채무자의 소멸시효에 기한 항변권의 행사도 우리 민법의 대원칙인 신의성실의 원칙과 권리남용 금지의 원칙의 지배를 받는 것이어서, 채무자가 시효완성 전에 채권자의 권리행사나 시효중단을 불가능 또는 현저히 곤란하게 하였거나, 그러한 조치가 불필요하다고 믿게 하는 행동을 하였거나, 객관적으로 채권자가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있었거나, 또는 일단 시효완성 후에 채무자가 시효를 원용하지 아니할 것 같은 태도를 보여 권리자로 하여금 그와 같이 신뢰하게 하였거나, 채권자 보호의 필요성이 크고, 같은 조건의 다른 채권자가 채무의 변제를 수령하는 등의 사정이 있어 채무이행의 거절을 인정함이 현저히 부당하거나 불공평하게 되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채무자가 소멸시효의 완성을 주장하는 것이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여 권리남용으로서 허용될 수 없다(대법원 1994. 12. 9. 선고 93다27604 판결, 대법원 1999. 12. 7. 선고 98다42929 판결, 대법원 2002. 10. 25. 선고 2002다32332 판결, 대법원 2008. 5. 29. 선고 2004다33469 판결 등 참조). 이는 대법원이 오랜 기간 일관되게 선언하여 온 소멸시효 항변이 권리남용에 해당하는 경우에 관한 법리이다. 대법원은 과거사정리법의 시행 이후 과거사 사건에서 국가의 소멸시효 항변을 판단하면서 위 권리남용 법리를 활용하여 피해자의 구제 범위를 대폭 확대하여 오다가, 2013년 전원합의체 판결로 이러한 태도를 변경하여 권리남용 법리의 적용 범위를 대폭 축소하였다. 그 결과 과거사 사건에서 권리남용 법리를 통한 권리구제의 길은 사실상 차단되었다. 별개의견은 그러한 차단을 해소하고 보편타당한 구제의 길을 다시 회복하고자 하는 취지이다. 먼저 그 흐름을 살펴보기로 한다. <br/> 1) 제1 시기: 과거사정리법 시행 전<br/> 과거사 사건의 특성상 피해자가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의 소를 제기하는 시점은 대부분 불법행위일로부터 장기소멸시효 기간이 도과한 때여서 국가의 소멸시효 항변이 권리남용에 해당하지 않는 한 피해자의 청구가 인정되기 어렵다. 과거사정리법이 2005. 12. 1. 시행되기 전에는 대법원이 과거사 사건에서 국가의 소멸시효 항변이 권리남용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적이 없다. 대법원 1996. 12. 19. 선고 94다22927 전원합의체 판결은 삼청교육과 관련하여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 대한 손해배상 사건에서 소멸시효의 완성을 인정하였고(국가의 소멸시효 항변은 권리남용에 해당하여 허용될 수 없다고 본 반대의견이 있었다), 이어진 대법원 1997. 2. 11. 선고 94다23692 판결에서 원고의 삼청교육 관련 국가배상청구를 배척하며 국가의 소멸시효 주장이 권리남용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명시적으로 판단하였다.<br/> 2) 제2 시기: 과거사정리법 시행 이후 2013년 전원합의체 판결 시까지<br/> 이러한 태도는 2005년 과거사정리법이 시행되면서 달라지기 시작하였다. 과거사정리법에 따라 과거사위원회가 활동을 개시하여 진실규명조사 및 결정이 이루어지고, 이를 바탕으로 제기된 다수의 국가배상청구 소송에서 법원은 권리남용 법리로 소멸시효의 한계를 극복하고 권리구제로 나아갔다. 제1심 및 제2심에서 대부분 과거사위원회의 진실규명결정에서 인정된 사실관계를 바탕으로 국가의 조직적 폭력에 의한 불법행위를 인정하고 국가의 소멸시효 항변을 권리남용으로 보아 받아들이지 않는 판단이 이루어졌다. 이에 따라 장기소멸시효 기간이 도과된 경우라도 피해자들의 권리구제가 가능해지게 되었다. 대법원도 2011. 1. 13. 선고 2010다28833 판결(‘아람회 사건’), 대법원 2011. 1. 27. 선고 2010다1234 판결(‘인혁당 재건위 사건’), 대법원 2011. 6. 30. 선고 2009다72599 판결(‘울산 국민보도연맹 사건’), 대법원 2011. 9. 8. 선고 2009다66969 판결(‘문경학살 사건’), 대법원 2012. 4. 26. 선고 2012다4091 판결(‘청주·청원 국민보도연맹 사건’), 대법원 2012. 8. 17. 선고 2012다42642 판결(‘오창창고 국민보도연맹 사건’) 등에서, 채권자에게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객관적 장애가 있었으므로 국가의 소멸시효 항변은 권리남용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였다. ‘문경학살 사건’을 다룬 위 2009다66969 판결에서 이루어진 이 부분 판단은 다음과 같다. "공비소탕작전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군인이 저지른 민간인 학살행위는 객관적으로 외부에서 거의 알기 어려워 원고들과 같은 희생자들의 유족이라고 하더라도 국가에 의하여 진상이 규명되기 전에는 국가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한다는 것은 좀처럼 기대하기 어렵다고 할 것인 점, 문경학살 사건에 대하여 과거사위원회에 의한 진실규명결정이 이루어지기 전까지 가해자가 소속된 국가가 그 진상을 규명한 적이 없었고, 오히려 사건 초기 국군을 가장한 공비에 의한 학살 사건으로 진상을 은폐·조작하였던 점, 원고들을 비롯한 유족들이 1993. 5. 3. 유족회 결성 이후 관계 당국에 여러 차례 탄원서 제출, 국회청원, 헌법소원심판 청구를 제기한 것은 결국 규명되지 못한 진실을 밝히고자 노력한 것으로 볼 수 있을 뿐인데, 진상규명을 위한 노력만으로 진실이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유족들이 손해배상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해소되었다고 볼 수 없는 점, 전쟁이나 내란 등에 의하여 조성된 위난의 시기에 개인에 대하여 국가기관이 조직을 통하여 집단적으로 자행하거나 또는 국가권력의 비호나 묵인하에 조직적으로 자행된 기본권 침해에 대한 구제는 통상의 법절차에 의해서는 사실상 달성하기 어려운 점 등에 비추어 과거사위원회의 이 사건에 대한 진실규명결정이 있었던 2007. 6. 26.까지는 객관적으로 원고들이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있었다고 봄이 상당하다. 여기에 어떠한 경우에도 적법한 절차 없이 국가가 보호의무를 지는 국민의 생명을 박탈할 수는 없다는 점을 더하여 앞서 본 법리에 비추어 살펴보면, 진실을 은폐하고 진상규명을 위한 노력조차 게을리한 피고가 이제 와서 뒤늦게 문경학살 사건의 유족인 원고들이 과거사위원회의 진실규명결정에 따라 진실을 알게 된 다음 제기한 이 사건 소에 대하여 미리 소를 제기하지 못한 것을 탓하는 취지로 소멸시효 완성의 항변을 하여 그 채무이행을 거절하는 것은 현저히 부당하여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 것으로서 허용될 수 없다고 할 것이다."<br/> 3) 제3 시기: 2013년 전원합의체 판결 시로부터 2018년 헌법재판소 2014헌바148 결정 시까지<br/> 과거사 사건과 관련하여 제1, 2심법원에서부터 시작되어 대법원에서도 넓게 수용된 이러한 법리적 태도, 즉 국가의 소멸시효 항변을 권리남용으로 보아 허용하지 않는 것에 갑자기 제동이 걸린 것은 2013년 전원합의체 판결에 의해서였다. 이 사건은 과거사위원회가 한국전쟁 전후의 시기에 진도에서 발생한 민간인 희생사건에 대하여 진실규명결정을 한 사건이었다. 대법원은 "채무자가 소멸시효의 이익을 원용하지 않을 것 같은 신뢰를 부여한 경우에도 채권자는 그러한 사정이 있은 때로부터 상당한 기간 내에 권리를 행사하여야만 채무자의 소멸시효의 항변을 저지할 수 있는데, 여기에서 ‘상당한 기간’ 내에 권리행사가 있었는지는 채권자와 채무자 사이의 관계, 신뢰를 부여하게 된 채무자의 행위 등의 내용과 동기 및 경위, 채무자가 그 행위 등에 의하여 달성하려고 한 목적과 진정한 의도, 채권자의 권리행사가 지연될 수밖에 없었던 특별한 사정이 있었는지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할 것이다. 다만 신의성실의 원칙을 들어 시효완성의 효력을 부정하는 것은 법적 안정성의 달성, 입증곤란의 구제, 권리행사의 태만에 대한 제재를 이념으로 삼고 있는 소멸시효 제도에 대한 대단히 예외적인 제한에 그쳐야 할 것이므로, 위 권리행사의 ‘상당한 기간’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민법상 시효정지의 경우에 준하여 단기간으로 제한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개별 사건에서 매우 특수한 사정이 있어 그 기간을 연장하여 인정하는 것이 부득이한 경우에도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의 경우 그 기간은 아무리 길어도 민법 제766조 제1항이 규정한 단기소멸시효 기간인 3년을 넘을 수는 없다고 보아야 한다."라고 하였다. <br/> 이 판결은 권리남용에 해당하는 사유를 "시효완성 후에 채무자가 시효를 원용하지 아니할 것 같은 태도를 보여 권리자로 하여금 그와 같이 신뢰하게 하였다는 점"에서 찾았다는 특징이 있다. 이러한 태도는 과거사정리법의 취지에 대한 다음과 같은 이해를 전제로 한다. "국가가 과거사정리법의 제정을 통하여 수십 년 전의 역사적 사실관계를 다시 규명하고 피해자 및 유족에 대한 피해회복을 위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선언하면서도 그 실행방법에 대해서는 아무런 제한을 두지 아니한 이상, 이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 피해자 등이 국가배상청구의 방법으로 손해배상을 구하는 사법적 구제방법을 취하는 것도 궁극적으로는 수용하겠다는 취지를 담아 선언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고, 거기에서 파생된 법적 의미에는 구체적인 소송사건에서 새삼 소멸시효를 주장함으로써 배상을 거부하지는 않겠다는 의사를 표명한 취지가 내포되어 있다고 할 것이다." <br/> 즉, 2013년 전원합의체 판결은 전체적으로 볼 때 국가가 과거사정리법을 통하여 새삼 소멸시효 주장으로 배상을 거부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표명한 것을 신뢰 부여로 보아 과거사 사건에서 피해자가 가지는 국가배상청구권을 신의성실의 원칙으로 두텁게 보호하는 법리를 취하면서도, 거기에 그러한 장애가 해소된 때로부터 민법상 시효정지의 경우에 준하는 단기간 내에 권리를 행사하여야 한다는 법리를 추가함으로써 결과적으로 피해자의 구제 가능성을 대폭 축소하는 모순된 태도를 보인 것으로 볼 수 있다.<br/> 이어진 대법원 2013. 12. 12. 선고 2013다201844 판결은 과거사 사건 중 ‘국가기관이 수사과정에서 한 위법행위 등으로 수집한 증거 등에 기초하여 공소가 제기되고 유죄확정판결까지 받았다가 재심무죄판결을 받은 사안’의 경우 ‘상당한 기간’을 원칙적으로 재심무죄판결 확정일로부터 6개월로 좁혔다. 이로써 단기간으로 제한된 ‘상당한 기간’을 지나 소를 제기한 과거사 사건 피해자는 구제를 받을 수 없게 되었다. 2018년 헌법재판소 2014헌바148 결정이 나올 때까지 법원의 과거사 사건 피해자 구제의 역사에서 암흑기가 시작된 것이다. <br/> 4) 제4 시기: 2018년 헌법재판소 2014헌바148 결정을 통한 단기소멸시효 기산점의 개별적 탐색 시기 <br/> 이러한 상황을 타개한 것은 과거사 사건에서 장기소멸시효의 적용을 배제한 2018년 헌법재판소 2014헌바148 결정이었다. 헌법재판소가 위와 같은 전향적 결정을 하게 된 것은, 2013년 전원합의체 판결과 위 대법원 2013다201844 판결 등 후속 판결의 영향으로 구제의 길이 막힌 과거사 사건 피해자들이 제1, 2심법원에 위헌법률심판제청신청을 하였다가 거부되자 2014년경부터 계속하여 위헌소원 청구로 헌법재판소의 문을 두드린 결과였다. 오랜 심리 끝에 헌법재판소는 2018년에 이르러 민법 제166조 제1항, 제766조 제2항 중 과거사정리법 제2조 제1항 제3호(민간인 집단 희생사건), 제4호(중대한 인권침해사건·조작의혹사건)의 사건에 적용되는 부분이 헌법에 위반된다고 판단하였다. "국가가 소속 공무원들의 조직적 관여를 통해 불법적으로 민간인을 집단 희생시키거나 장기간의 불법구금·고문 등에 의한 허위자백으로 유죄판결을 하고 사후에도 조작·은폐를 통해 진상규명을 저해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불법행위 시점을 소멸시효의 기산점으로 삼는 것은 피해자와 가해자 보호의 균형을 도모하는 것으로 보기 어렵고, 발생한 손해의 공평·타당한 분담이라는 손해배상제도의 지도 원리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과거사정리법 제2조 제1항 제3호, 제4호에 규정된 사건에 민법 제166조 제1항, 제766조 제2항의 ‘객관적 기산점’이 적용되도록 하는 것은 합리적 이유가 인정되지 않는다. 결국 민법 제166조 제1항, 제766조 제2항의 객관적 기산점을 과거사정리법 제2조 제1항 제3호, 제4호의 민간인 집단 희생사건, 중대한 인권침해·조작의혹사건에 적용하도록 규정하는 것은, 소멸시효 제도를 통한 법적 안정성과 가해자 보호만을 지나치게 중시한 나머지 합리적 이유 없이 위 사건 유형에 관한 국가배상청구권 보장 필요성을 외면한 것으로서 입법형성의 한계를 일탈하여 청구인들의 국가배상청구권을 침해한다." <br/> 이제 문제는 단기소멸시효가 되었다. 이에 관하여 헌법재판소 2014헌바148 결정에서 다음과 같이 판단하였다. "과거사정리법이 정한 위 사건에 대해서는 민법 제766조 제1항이 정한 주관적 기산점 및 이를 기초로 한 단기소멸시효만 적용된다. 이러한 경우 사건 유형별 구체적 기산점이 문제 될 수 있다. 과거사정리법 제2조 제1항 제3호의 ‘민간인 집단 희생사건’의 경우에 위원회로부터 진실규명결정을 받은 피해자 등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 진실규명결정이 있었던 때에 손해 및 가해자를 알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므로, 피해자 등은 진실규명결정을 안 날로부터 3년 이내에 국가배상을 청구하여야 민법 제766조 제1항의 단기소멸시효 완성을 저지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과거사정리법 제2조 제1항 제4호의 ‘중대한 인권침해사건과 조작의혹사건’ 중 유죄확정판결을 받았던 사건의 경우에는 유죄확정판결의 존재라는 특별한 사정이 있어 재심으로 기존의 유죄확정판결이 취소된 이후에야 비로소 손해의 발생, 위법한 가해행위의 존재, 가해행위와 손해발생 사이의 상당인과관계 등 불법행위의 요건사실에 대하여 현실적이고도 구체적으로 인식하였다고 봄이 상당하므로, 피해자 등은 재심판결 확정을 안 날로부터 3년 이내에 국가배상을 청구하여야 민법 제766조 제1항의 단기소멸시효 완성을 저지할 수 있을 것이다." <br/> 위 취지에 따라 상당수의 사건에서 구제의 길이 열렸다. 앞서 대법원 2013다201844 판결에서 다룬 ‘국가기관이 수사과정에서 한 위법행위 등으로 수집한 증거 등에 기초하여 공소가 제기되고 유죄확정판결까지 받았다가 재심절차에서 무죄판결을 받은 사안’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그 이전에는 장기소멸시효의 완성을 전제로 권리남용 재항변의 판단에서 위 재심무죄판결 이후 ‘상당한 기간’인 6개월 내에 소 제기를 하였는지 심리하였다면, 이제 민법 제766조 제1항의 단기소멸시효의 주관적 기산점을 위 재심무죄판결 확정일로 상정하여 그로부터 3년 내에 소 제기가 있었으면 시효가 완성되지 않았다고 보게 된 것이다. 그 외에도 헌법재판소 2018. 8. 30. 선고 2014헌바180 등 전원재판부 결정과 2021년의 이 사건 위헌결정 등을 통하여 구 민주화보상법 제18조 제2항이나 이 사건 화해간주조항에 따라 보상금 등 지급결정에 동의한 때 재판상 화해의 성립을 간주하는 부분이 정신적 손해에 대한 국가배상청구권을 침해하여 위헌이라는 판단이 내려지면서, 관련 쟁점 사건에서 각 위헌결정 시점을 민법 제166조 제1항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때’로서 단기소멸시효의 객관적 기산점으로 삼아 피해자의 권리를 구제할 수 있게 되었다. <br/> 대법원 2021. 7. 29. 선고 2016다259363 판결도 그러한 사례의 하나이다. 위 사건의 원심은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법 위반으로 유죄판결을 받은 관련자 본인과 그 가족들이 위자료를 청구한 사건에서, 관련자 본인의 위자료 청구는 이 사건 화해간주조항을 이유로 권리보호 이익이 없다며 각하하고, 가족들의 위자료 청구는 장기소멸시효 완성을 이유로 기각하였다. 위 대법원판결은 이 사건 위헌결정으로 5·18민주화운동 관련자 본인의 정신적 손해에 대하여 재판상 화해가 성립되었다고 볼 수 없고, 가족들의 위자료 청구 부분은 장기소멸시효 적용에 대한 헌법재판소 2014헌바148 결정이 있었으므로 단기소멸시효만이 적용된다고 보아 원심을 파기환송하였다. 이어진 환송 후 원심에서는 단기소멸시효 기산점을 관련자 본인에 대한 재심무죄판결 확정일로 보고 관련자 본인의 위자료와 가족 고유의 위자료 모두 소멸시효가 완성되지 않았다고 판단하였다. <br/> 5) 제5 시기: 단기소멸시효 기산점의 개별적 설정으로 해결되지 않은 ‘시효 기산점의 새로운 단초가 없는’ 사안의 구제를 위한 노력(2013년 전원합의체 판결의 재검토 필요성 대두) <br/> 헌법재판소 2014헌바148 결정의 요청에 따라 법원은 사건 유형별로 과거사위원회의 진실규명결정통지서 송달일과 재심무죄판결 확정일 또는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일 등을 단기소멸시효 기산점으로 삼아 왔다. 그런데 과거사 사건 중 과거사위원회의 진실규명결정도 없고 관련 유죄확정판결이 없어 재심판결을 받을 수 없는 사건,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과 쟁점이 같지 않은 사건에는 이 기준을 적용할 수 없다. <br/> 이와 같이 ‘시효 기산점의 새로운 단초가 없는’ 과거사 사건의 해결이 문제로 대두되었고, 긴급조치 관련 대법원 2018다212610 전원합의체 판결은 유죄확정판결이 없는 사안에서 그 해결을 위한 첫 번째 시도였다. 위 전원합의체 판결은 위헌·무효인 긴급조치 제9호의 발령 및 적용·집행 행위라는 일련의 국가작용으로 인한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하고, 이와 다른 취지로 국가배상책임을 부정한 대법원 2014. 10. 27. 선고 2013다217962 판결, 대법원 2015. 3. 26. 선고 2012다48824 판결 등을 변경하였다. 이로써 과거사 사건 피해자들 중 긴급조치 제9호 위반으로 구속, 수감되었다가 기소되지 않은 채 석방된 사람들, 기소 후 재판을 받다가 면소판결 등으로 석방된 사람들처럼 유죄확정판결이 없는 사건에서 구제의 길이 열렸다. 이어진 대법원 2023. 1. 12. 선고 2021다201184 판결, 대법원 2023. 1. 12. 선고 2020다210976 판결은 위와 같은 유형의 피해자들에 대하여 "제반 사정을 종합할 때 소 제기 당시까지도 원고가 피고를 상대로 긴급조치 제1호, 제4호 또는 제9호에 기한 일련의 국가작용으로 인한 불법행위로 발생한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있어 소멸시효가 완성되지 않았다."라고 판단하였다. <br/> 단기소멸시효 기산점의 전형적 단초가 없는 경우 대법원 2018다212610 전원합의체 판결로 긴급조치 사건 피해자는 구제받게 되었지만, 긴급조치 외 다른 과거사 사건의 피해자는 여전히 여러 가지 권리행사의 제약을 받고 있다. 과거사정리법의 제정으로 출범한 제1기 과거사위원회는 오래전인 2010. 6. 무렵 조사 활동을 종료하였고, 2020. 6. 9. 법률 개정으로 한시적으로 출범한 제2기 과거사위원회의 조사 활동을 통해 진실규명결정을 받은 피해자들은 그로부터 3년 내에 소를 제기함으로써 잠시 구제의 가능성이 생겼지만, 그 외 ‘시효 기산점의 새로운 단초가 없는’ 많은 피해자들에 대한 근본적 구제 방안은 여전히 마련되지 않고 있다. <br/> 결론적으로 헌법재판소 2014헌바148 결정과 대법원 2018다212610 전원합의체 판결을 바탕으로 과거사 사건의 단기소멸시효 기산점을 개별적으로 설정하는 것만으로는 공평한 구제가 어렵다는 점이 드러난 이 상황에서, 앞서 본 ‘제2 시기’에 과거사 사건의 권리구제를 위해 권리남용 법리를 적극 활용하였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권리남용 법리의 활용을 어렵게 만드는 근본적 이유 중 하나로 ‘상당한 기간’ 법리를 내세워 ‘제2 시기’의 권리구제 방식을 불가능하게 만든 2013년 전원합의체 판결이 있음을 직시하여야 한다. 때마침 5·18민주화운동 관련자뿐만 아니라 삼청교육 관련자, 형제복지원 관련자 등 새로운 유형의 과거사 사건 피해자들의 국가배상청구가 이어지면서, 단기소멸시효가 완성되었다는 판단을 받은 피해자들이 국가의 시효완성 주장이 권리남용에 해당한다는 주장을 펼치는 경우가 있다. 이제 2013년 전원합의체 판결의 ‘상당한 기간’ 법리의 변경 여부 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다. <br/> 라. 피고의 소멸시효 항변이 권리남용에 해당하는지에 관한 판단<br/> 이 사건 5·18민주화운동 관련자의 가족들은 보상금 등 지급결정일에 손해 및 가해자를 알게 되었고, 이 사건 화해간주조항의 적용을 받지 않으므로 그러한 법률의 존재는 가족 고유의 위자료 청구권 행사에 법률상 장애가 될 수 없다. 위 가족들의 사안에 적용할 단기소멸시효 기산점을 개별적으로 탐색할 때 해당 불법행위 시 이후로 보상금 등 지급결정일 이외에 그 단초로 삼을 만한 것이 없다. 따라서 위 지급결정일부터 가족 고유의 위자료 청구권의 단기소멸시효가 진행되어 소멸시효가 완성되었다고 볼 수밖에 없는바, 이를 전제로 하여 피고의 소멸시효 항변이 권리남용에 해당하는지에 관하여 본다. <br/> 1) 객관적으로 채권자가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장애사유의 존재<br/> 과거사 사건에서 객관적 권리행사 장애사유의 존재를 국가의 소멸시효 항변을 권리남용으로 인정하는 근거로 삼아 온 선례의 태도에 비추어 보면, 이 사건 화해간주조항 중 정신적 손해에 대한 국가배상청구권 행사를 금지하는 부분을 위헌으로 판단한 이 사건 위헌결정이 있기까지는 관련자 가족인 원고들에게 위자료 청구를 할 것을 기대할 수 없는 객관적 장애사유가 있었다고 볼 수 있다. <br/> 이 사건에서 피고는 구 광주민주화보상법을 제정하여 5·18민주화운동 관련자와 그 유족에게 보상금을 지급하였다. 그런데 구 광주민주화보상법은 보상의 범위가 관련자의 손해 외에 그 가족의 손해까지 보상하는 것인지, 적극적·소극적 손해 외에 정신적 손해까지 함께 보상하는 것인지 명시적으로 규정하지 않는 한편, 신청인이 보상금 등 지급결정에 동의할 경우 5·18민주화운동과 관련하여 입은 피해에 대하여 재판상 화해가 성립한 것으로 보는 이 사건 화해간주조항을 두었다. 이에 따라 관련자뿐만 아니라 그 가족들, 즉 보상금 동의수령 유족이나 보상금 미수령 가족으로서는 보상금 등이 지급된 후 그와 별개로 국가를 상대로 자신들의 정신적 손해에 대한 위자료 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음을 알지 못하였다. 그리고 이들이 5·18민주화운동 관련한 보상 내지 배상 절차가 보상금 등 지급으로 종국적·포괄적으로 마무리되었다고 신뢰한 것에 어떠한 과실이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실제 관련자의 가족들이 이 사건 화해간주조항의 적용 범위에 관한 의심을 가지고 보상금 등 지급결정 후에 별도로 소를 제기한 사례는 쉽사리 발견되지 않는다. 이와 같이 관련자 가족의 권리행사가 곤란하여 결과적으로 지연된 것은 미흡한 액수의 보상금 등만을 지급하면서도 그 지급결정에 동의하고 이를 수령함으로써 향후 일체의 청구를 할 수 없다는 내용의 이 사건 화해간주조항을 두어 사후의 책임이나 분쟁을 쉽게 모면하려고 한 피고의 책임이다. <br/> 2) 시효완성 후 채무자가 시효이익을 원용하지 아니할 것 같은 신뢰 부여<br/> 피고는 포괄적인 과거사 정리의 근거를 마련하기 위하여 2005. 5. 31. 과거사정리법을 제정하였다. 과거사정리법은 과거사위원회를 설치하여 1945. 8. 15.부터 권위주의 통치 시까지 헌정질서 파괴행위 등 위법 또는 현저히 부당한 공권력의 행사로 인하여 발생한 중대한 인권침해사건과 조작의혹사건 등의 진실을 규명하도록 하였다(제2조, 제3조). 또한 "국가의 의무"라는 표제 아래 국가에 진실규명사건 피해자의 피해 및 명예의 회복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하고, 가해자에 대하여 적절한 법적·정치적 화해조치를 취하여야 하며, 국민 화해와 통합을 위한 필요한 조치를 할 의무를 부과하였다(제34조). 또한 정부에는 규명된 진실에 따라 희생자, 피해자 및 유가족의 피해 및 명예를 회복시키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취하도록 하였다(제36조 제1항). 이와 같이 국가가 과거사정리법을 제정한 것은 피해자 등이 국가배상청구의 방법으로 손해배상을 구하는 사법적 구제방법을 취하는 것도 궁극적으로는 수용하겠다는 취지이고, 여기에는 구체적인 소송사건에서 새삼 소멸시효를 주장함으로써 배상을 거부하지는 않겠다는 의사를 표명한 취지가 내포되어 있음은 2013년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지적한 바와 같다. <br/> 5·18민주화운동에만 한정하여 보더라도 피고는 1990. 8. 6. 구 광주민주화보상법을 제정하여 5·18민주화운동 관련자와 그 유족에 대한 보상금 지급의 근거를 마련하고 보상금 등을 지급하였다. 다수의견이 지적하는 바와 같이 이때는 이미 1980. 5. 18.을 전후한 5·18민주화운동이 있은 때로부터 10년 이상이 경과하여 장기소멸시효 5년이 완성된 후이다. 이어 피고는 1995. 12. 21. 제정된 구 5·18민주화운동법에서 1979년 12월 12일과 1980년 5월 18일을 전후하여 발생한 "헌정질서 파괴 범죄행위"에 대한 공소시효 정지 등을 규정하고(제1조, 제2조) "광주민주화보상법의 규정에 의한 보상은 배상으로 본다."라는 배상의제 조항을 둠으로써(제6조), 5·18민주화운동 당시 국가기관에 의하여 행하여진 행위의 불법성을 일정 부분 인정하였다. 또한 피고는 5·18민주화운동 후 상당한 기간이 지났음에도 그 실체적 진상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는 문제의식에 따라 2018. 3. 13. 구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2021. 1. 5. 법률 제17886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을 제정하였다. 이 법은 "희생자"를 5·18민주화운동 당시 사망하거나 행방불명된 사람으로 정의하는 한편, "피해자"를 5·18민주화운동 당시 구속, 구금, 부상, 가혹행위와 그 후유증으로 고통받았던 사람 중 희생자 외의 사람과 이들의 배우자·직계존비속·형제자매, 희생자의 배우자·직계존비속·형제자매로 정의하여(제2조), 구 광주민주화보상법과 달리 재산상속인이 아닌 가족까지 ‘피해자’의 범위에 포함하였다. 또한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를 설치하고 1980. 5. 당시 군에 의해 반인권적으로 이루어진 민간인 학살, 헌정질서 파괴행위 등 위법하거나 현저히 부당한 공권력의 행사로 인하여 발생한 사망·상해·실종·암매장 사건 및 그 밖의 중대한 인권침해사건 및 조작의혹사건 등에 대한 진상을 규명하도록 하였다(제3조, 제4조). 이와 같이 피고는 5·18민주화운동이 있은 지 상당한 시간이 흐른 최근까지 여전히 진상규명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는 결국 5·18민주화운동 관련자와 그 가족이 입은 피해에 대한 실질적인 보상과 명예회복을 위한 것이다. 위와 같이 피고가 이미 장기소멸시효 기간이 도과된 이후에 취한 일련의 조치들은 관련자 본인뿐만 아니라 그 가족들에게도 구체적인 소송사건에서 새삼 소멸시효를 주장함으로써 배상을 거부하지 않겠다는 신뢰를 부여한 것이라고 평가할 만하다. 따라서 관련자의 가족들로서는 객관적 장애사유가 해소된 이 사건 위헌결정 이후 국가를 상대로 위자료 청구권을 행사할 경우 피고가 적어도 소멸시효의 완성을 들어 권리소멸을 주장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신뢰를 가질 만한 특별한 사정이 있다고 볼 수 있다. <br/> 3) 채권자 보호의 필요성이 크고, 같은 조건의 다른 채권자가 채무의 변제를 수령하는 등의 사정이 있어 채무이행의 거절을 인정함이 현저히 부당하거나 불공평함<br/> 가) 5·18민주화운동의 특수성에 따른 채권자 보호의 필요성<br/> 5·18민주화운동은 소외 8 등이 저지른 헌정질서 파괴범죄인 내란죄 범행, 즉 ‘1979. 12. 12. 군사반란 이후 1980. 5. 17. 비상계엄 확대 선포를 시작으로 1981. 1. 24. 비상계엄의 해제에 이르기까지 행한 일련의 폭동행위로서 내란행위’(대법원 1997. 4. 17. 선고 96도3376 전원합의체 판결 참조)에 대한 시민들의 저항운동의 성격을 지닌다. 당시 군사정권이 무고한 시민들에 대하여 행한 폭압적 학살행위는 제5공화국 세력의 반인권성·반민주성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상징이었고, 1980년대 사회운동에서 5·18민주화운동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은 주요 과제이자 뜨거운 쟁점이었다. 1988년 군사정권이 재집권한 후 같은 해 제13대 국회에서 "5·18광주민주화운동진상조사특별위원회"가 구성되어 이른바 광주청문회가 열렸다. 그 성과로서 "광주사태"가 "광주민주화운동"으로 재정의되었고, 1990. 8. 6. 구 광주민주화보상법이 제정되어 5·18민주화운동 관련자와 그 유족들에 대한 보상의 근거가 마련되었다. 그러나 5·18민주화운동의 탄압 과정에서 이루어진 학살의 책임자들에 대한 형사책임 추궁은 공소시효 정지 규정을 둔 구 5·18민주화운동법이 1995. 12. 21. 제정된 이후에야 이루어져, 내란죄와 내란목적살인죄 등의 범죄사실에 대한 유죄판결이 1997년에 이르러서야 확정되었다. <br/> 이와 같이 현대사에서 권위주의 정권에 대한 저항운동으로서 5·18민주화운동이 가지는 대표성·상징성에 따라 그에 대한 문제제기와 과거청산은 다른 과거사 사건보다 먼저 시작되었다. 5·18민주화운동과 그 책임자 처벌 요구 그 자체가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 질서를 회복시키는 에너지로 승화하여 제도적 진실규명과 구제의 시도가 이어졌다. 청문회 등을 통한 공론화 과정을 거친 다음, 구 광주민주화보상법에 따라 보상심의위원회가 관련자들의 피해를 인정하여 보상금 등을 지급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모순적이게도 5·18민주화운동의 이러한 특성은 이후 국가배상청구 소송에서 여러 가지 법률적 걸림돌로 작용하였다. <br/> 나) 단기소멸시효 기산점의 ‘새로운 단초가 없는 피해자’에 대한 차별<br/> 구 광주민주화보상법에 따라 1990년경 보상심의위원회가 먼저 활동하였기 때문에, 그 뒤에 제정된 과거사정리법에 근거한 과거사위원회는 5·18민주화운동을 진실규명 대상으로 삼지 않았다. 그 결과 과거사위원회의 진실규명결정을 받은 피해자들은 진실규명결정 송달일을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로서 단기소멸시효 기산점으로 삼아 뒤늦게나마 국가배상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는 길이 열렸으나, 5·18민주화운동 관련자 가족들은 이 사건 원심 등을 비롯하여 다수의 사건에서 1990. 12.경 등에 있은 ‘보상금 등 지급결정일’에 손해 및 가해자를 알았다며 그 시기를 앞당겨 단기소멸시효 기산점이 인정됨에 따라 이들의 국가배상청구권은 소멸시효가 완성되었다는 판단을 받게 되었다. 이로써 가장 먼저 보호하고자 했던 5·18민주화운동 관련자 가족들은 다른 과거사 사건의 피해자들이 국가배상청구를 통해 손해배상금을 수령하는 상황에서 오히려 기존의 보상금 외에는 아무런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결과를 낳게 된 것이다. <br/> 그 법률적 이유는 이들에게 단기소멸시효 기산점의 ‘새로운 단초’가 없었기 때문이다. 국가배상청구 소송에서 단기소멸시효 기산점의 단초로 활용되는 과거사위원회의 진실규명결정, 법원의 재심무죄판결, 형사보상결정, 전원합의체 판결,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 등은 모두 국가기관이 개별 법령에 따라 제도적 구제방법으로서 공식적으로 내놓는 구체적 권한행사의 일종이어서, 이 사건에서 관련자 가족들처럼 구조적으로 그와 무관한 사람들로서는 오래전의 ‘보상금 등 지급결정’ 외에 다른 단초를 찾기 어렵다. 이 사건 관련자들은 대부분 고문 후유증 등으로 5·18민주화운동 직후 사망하였고 유죄확정판결이 없어 단기소멸시효 기산점의 ‘새로운 단초’를 확보하기 어려운 구조 속에 놓여 있었다. 5·18민주화운동 관련자 본인의 경우에도 이 사건 위헌결정이 나오기 전까지는 이러한 ‘새로운 단초’를 제시할 수 없었다. 이 사건에서 관련자 본인의 위자료 부분이 제1심에서부터 구제될 수 있었던 것은 이 사건 위헌결정으로 관련자에 대한 ‘새로운 단초’가 생겼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단초의 유무’라는 차이가 발생하는 것은 대체로 피해자의 사정과 무관하게 국가가 시행하는 제도적 구제방법의 불완전한 운용에 원인이 있음에도, 이를 이유로 국가가 ‘새로운 단초가 있는 피해자’에 대하여는 배상을 하면서 ‘새로운 단초 없는 피해자’에 대하여는 소멸시효 완성을 이유로 배상을 거절하는 차별을 하는 것은 현저히 부당하고 불공평하다. <br/> 한편 최근 ‘제1 시기’에 대법원이 권리남용 법리의 적용을 배제함으로써 구제를 거절한 대표 사안인 삼청교육 사건에 관한 국가배상 사건에서 법원 판결을 통한 대규모의 배상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런데 이들 중 일부는 과거사위원회의 진실규명결정이 있었다는 자료가 없는 등 단기소멸시효 기산점으로 삼을 새로운 단초가 없음에도 불법행위일을 소멸시효 기산점으로 삼지 않은 채 소 제기 당시까지 소멸시효가 완성되지 않았다는 판단을 받음으로써 구제되고 있다. 이들은 이 사건의 관련자 가족들처럼 ‘새로운 단초 없는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의 관련자 가족들과 달리 국가배상을 받았다. 이러한 측면 또한 피고가 위 가족들에게 채무이행을 거절하는 것을 현저히 부당하고 불공평하다고 평가할 수 있는 요소이다. <br/> 마. 소멸시효 항변을 저지하기 위하여 채권자가 권리를 행사하여야 할 상당한 기간<br/> 1) 대법원의 태도<br/> 대법원은 2013년 전원합의체 판결 이래 국가의 소멸시효 완성 주장이 권리남용임을 이유로 이를 저지하기 위한 요건으로 채권자에게 상당한 기간 내에 권리를 행사할 것을 요구한다. 즉 채권자에게 권리의 행사를 기대할 수 없는 객관적인 사실상의 장애사유가 있었던 경우라면 그러한 장애가 해소된 때로부터 상당한 기간 내에, 채무자가 소멸시효의 이익을 원용하지 않을 것 같은 신뢰를 부여한 경우라면 그러한 사정이 있은 때로부터 상당한 기간 내에 권리를 행사하여야만 채권자는 채무자의 소멸시효 항변을 저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그 ‘상당한 기간’은 민법상 시효정지의 경우에 준하여 단기간으로 제한되어야 하고, 개별 사건에서 매우 특수한 사정이 있어 그 기간을 연장하여 인정하는 것이 부득이한 경우에도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의 경우 민법 제766조 제1항이 규정한 단기소멸시효 기간인 3년을 넘을 수는 없다고 보고 있다. 구체적으로 국가기관의 위법행위로 유죄확정판결을 받은 경우 재심무죄판결 확정일부터 6개월, 형사보상청구를 한 경우에는 형사보상결정 확정일부터 6개월 내에 채권자는 권리를 행사하여야 한다고 한다(2013년 전원합의체 판결, 대법원 2013. 12. 12. 선고 2013다201844 판결 등 참조. 위와 같은 법리를 이하 ‘상당한 기간 법리’라 한다). <br/> 2) ‘상당한 기간 법리’의 문제점<br/> 다음과 같이 ‘상당한 기간 법리’, 특히 ‘상당한 기간은 민법상 시효정지의 경우에 준하여 단기간으로 제한되어야 한다.’는 부분과 ‘유죄확정판결을 받은 경우 재심무죄판결 확정일로부터 6개월 내 권리행사가 필요하다.’는 부분은 심각한 법리적 모순을 가지고 있고, 그로 인하여 과거사 사건 피해자의 권리구제에서 근본적인 장애요인으로 작동하고 있으므로, 재검토되어야 한다.<br/> 가) 시효정지 기간 유추적용의 불합리성<br/> 유추적용 또는 유추해석은 법적 규율이 없는 사안에 대하여 그와 유사한 사안에 관한 법규범을 적용하는 것을 말한다. 유추는 법규범이 법의 공백을 메우기 위하여 그 문언의 가능한 의미를 벗어나 적용되는 것으로 법률의 흠결 보충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해석을 통하여 문언의 가능한 의미를 찾아내는 법발견이 아니라, 법관이 있어야 한다고 판단하는 법을 다른 법규범을 매개로 만들어내는 법형성이다. 이러한 유추를 위해서는 먼저 법적 규율이 없는 사안과 법적 규율이 있는 사안 사이에 공통점 또는 유사점이 있어야 하고, 법규범의 체계, 입법 의도와 목적 등에 비추어 유추적용이 정당하다고 평가되는 경우에 비로소 유추적용을 인정할 수 있다(대법원 2020. 4. 29. 선고 2019다226135 판결 참조).<br/> ‘상당한 기간 법리’는 권리행사의 상당한 기간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민법상 시효정지의 경우에 준하여’ 단기간으로 제한되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시효정지의 경우에 준하여’ 관련 조항을 유추적용하는 합당한 근거는 제시되지 않고 있다. 민법상 시효정지 제도는 이미 진행한 시효기간의 경과와 무관하게 객관적인 시효정지 사유가 있으면 그 사유 종료 시부터 일정 기간 내에는 시효가 완성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민법상 시효정지가 인정되는 경우는 다음과 같다. 제한능력자에게 법정대리인이 없는 경우 그가 능력자가 되거나 법정대리인 취임 시로부터 6개월 동안 제한능력자의 권리 일반에 대한 시효가 정지된다(제179조). 제한능력자의 재산관리자에 대한 권리는 제한능력자가 능력자가 되거나 후임 법정대리인 취임 시로부터, 부부 사이의 권리는 혼인관계 종료 시로부터 각 6개월 동안 시효가 정지된다(제180조). 상속재산에 속한 권리나 상속재산에 대한 권리는 상속인의 확정, 관리인의 선임 등의 시점으로부터 6개월 동안 시효가 정지된다(제181조). 나아가 천재 기타 사변으로 인하여 소멸시효를 중단할 수 없을 때에는 그 사유가 종료한 때로부터 1월 내에는 시효가 완성하지 않는다(제182조). 이러한 시효정지 제도는 제182조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권리능력 제한제도, 혼인제도, 상속제도 등 민법상 고유한 제도가 그 안에 본질적으로 내포하고 있거나 예정하고 있는 내재적 한계를 보완하고 그 안정적 운용을 도모하는 데 목적이 있다. 예를 들어 미성년자가 성년이 되거나 이혼으로 배우자 관계에서 벗어나는 등 권리주체가 가지고 있는 능력상·신분상의 근본적 변화가 발생하거나, 상속 개시에 따라 상속재산에 관한 권리의무 귀속주체의 확정 과정에서 불명확성이 초래될 수 있다. 이는 민법상의 각 제도가 가지는 전형적 특성으로 말미암아 그 운용 과정에서 일반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객관적 권리행사 장애요소이다. 민법은 그에 상응하는 시효정지 제도를 두어 고유한 장애요소의 해소 시점으로부터 일정 기간 시효의 완성을 정지시킴으로써 제도 운용에서 예정된 권리행사 장애의 부작용을 완화하고 있는 것이다. 민법 제182조의 천재 기타 사변을 포함하여 제한능력자의 법정대리인 부존재, 상속인의 미확정 등 사유의 발생은 객관적으로 명백할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 채권자의 권리행사를 직접 가로막는 것들로서, 채권자의 권리행사가 불가능하거나 곤란하게 된 데에 채권자나 채무자 양측 모두에게 책임을 묻기 어려운 경우에 해당한다. <br/> 시효정지 제도는 민법상 제도 일반에서 발생하는 전형적이고 객관적인 사유로 권리자의 권리행사 가능성을 일반적으로 확장시켜 주는 것이다. 이에 반해서 권리남용 법리는 권리의무 주체의 개별적이고 특수한 사정에 주목하여 정의와 공평의 원리를 실현하고자 권리행사를 예외적으로 제한하는 것이다. 둘 사이에는 공통점 또는 유사점이 없고, 법규범의 체계, 입법 의도와 목적 등에서도 유추적용이 정당화되기 어렵다. 소멸시효 항변이 권리남용으로 허용되지 않는 것은 채권자가 권리를 행사하지 못한 데에 채무자의 기여가 있다는 등의 개별적이고 특수한 사정이 있어 채무자로 하여금 채무로부터 해방되는 법적 이익을 누리게 하는 것이 정의관념에 비추어 부당하기 때문인데, 이는 시효정지를 인정하는 사유와는 분명히 구별된다. <br/> 특히 유죄확정판결을 받은 경우 재심무죄판결 확정일 등으로부터 6개월 내 권리행사가 필요하다는 부분을 보면, 위와 같은 비판점이 더 잘 드러난다. 유죄확정판결의 존재는 제2, 3 시기의 과거사 사건에서 선례가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를 할 수 없었던 객관적인 사실상의 장애사유로 인정한 대표적인 것인데, 이는 불법행위의 주체인 국가 스스로 피해자에 대하여 유죄판결을 선고함으로써 해당 장애사유를 만들어낸 경우라는 특이점이 있다. 이러한 사유는 채무자인 국가가 유발한 개별적이고 특수한 사정일 뿐 재판 제도 그 자체가 본질적으로 내포하고 있거나 예정하고 있는 객관적 권리행사 장애요소가 발현된 것이라고 볼 수 없고, 시효정지 사유 중 어느 것과도 유사하지 않다. 더욱이 헌법재판소 2014헌바148 결정 이후 제4, 5 시기에 선례가 재심무죄판결 확정일을 ‘불법행위 요건사실을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인식한 날’로서 민법 제766조 제1항의 단기소멸시효의 기산점으로 인정하고 있으므로, ‘상당한 기간 법리’ 중 이 부분은 사실상 규범력을 상실하였다. 2013년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권리남용의 사유로 인정한 사정도 시효정지 사유와 유사점이 없다. 이는 국가가 과거사정리법의 제정을 통하여 "시효완성 후에 채무자가 시효를 원용하지 아니할 것 같은 태도를 보여 권리자로 하여금 그와 같이 신뢰하게 하였다는 점"인데, 이 또한 과거사정리법의 제정이라는 특수하고 개별적인 사정을 내세워 시효완성 원용권의 행사를 제한한 사례일 뿐 국가의 입법작용이 갖는 일반적인 권리행사 장애요소와 관련이 없으므로, 시효정지 사유와는 구별된다. 결국 2013년 전원합의체 판결의 상당한 기간 법리는 법적 규율이 없는 사안과 법적 규율이 있는 사안 사이에 공통점 또는 유사점이 없음에도 시효정지 규정을 소멸시효 권리남용 법리에 무리하게 끌어와 법형성을 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br/> 나) 신의성실의 원칙 적용 국면과의 모순<br/> 신의성실의 원칙은 개별 사건에서 실정법이나 계약 등을 형식적이고 엄격하게 적용함으로써 야기될 수 있는 부당한 결과를 막고 구체적 타당성을 실현하여야 할 필요가 있는 경우 일반 원칙으로 작용한다. 그리하여 신의성실의 원칙은 실정법의 규정 취지, 법률행위를 한 당사자의 의도 등을 그 의미에 적합하게 구체화하고, 불성실하거나 부당한 권리행사를 제한하며, 실정법 또는 법률행위의 내용을 보정하는 기능 등을 수행한다(대법원 2013. 12. 18. 선고 2012다89399 전원합의체 판결의 다수의견에 대한 보충의견 참조). 채무자의 소멸시효 항변을 신의성실의 원칙을 근거로 권리남용이라 보아 배척하는 법리 역시 개별 사건에서 소멸시효 관련 조항을 형식적이고 엄격하게 적용함으로써 소멸시효 완성을 인정함에 따라 발생하는 부당한 결과를 막기 위해 도입된 것이다. 즉 신의성실의 원칙에서 파생한 ‘권리남용’ 개념을 통해 소멸시효 제도를 유연하고 합목적적으로 운용함으로써 개별 사건에서 구체적 타당성을 확보하고자 한 것인데, 여기에 다시 ‘상당한 기간 법리’를 통해 일률적으로 권리행사를 원칙적으로 6개월 내에 하도록 정하여 신의성실의 원칙 적용을 제한하는 것은 신의성실의 원칙의 본질이나 존재 이유와 맞지 않는다. 권리행사가 사실상 불가능하여 시효기간이 경과한 사안에서, ‘이에 대해 일정 부분 채무자의 기여가 있어서 채무자의 소멸시효 항변이 권리남용에 해당하는 것’과 ‘장애사유가 제거된 후에는 6개월이라는 짧은 기간 내에 신속히 권리행사를 하여야 한다는 것’ 사이에는 아무런 논리필연이 없다. ‘상당한 기간 법리’는 채권자의 권리행사 기간을 부당하게 문제 삼아 구체적 타당성 확보라는 신의성실 원칙의 본질을 침해하고 있다. <br/> 다) 장기소멸시효에 관한 헌법재판소 위헌결정의 취지<br/> 앞서 살핀 헌법재판소 2014헌바148 결정은 ‘상당한 기간 법리’의 폐해를 시정하기 위한 노력의 결과라는 점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위 사건의 청구인들은 과거사 사건 관련하여 유죄판결을 받은 후 재심무죄판결 및 형사보상결정 확정일부터 6개월 이후에 국가배상을 청구하거나, 과거사위원회의 진실규명결정을 받고 6개월 이후에 국가배상을 청구하였다. 이에 ‘상당한 기간 법리’에 의하면 국가의 장기소멸시효 완성 항변이 권리남용으로 배척되기 어렵게 되자 위헌소원을 청구한 것이다. 결국 헌법재판소 2014헌바148 결정은 과거사정리법의 민간인 집단 희생사건, 중대한 인권침해사건·조작의혹사건에 관한 국가배상청구권에 장기소멸시효를 적용하는 것은 위헌이라고 결정함으로써 이 부분에서 ‘상당한 기간 법리’를 무력화시켰다. 다만 ‘상당한 기간 법리’는 단기소멸시효의 영역에서는 여전히 그 위력을 발휘하여 권리구제를 막고 있다. 과거사 사건 해결을 둘러싼 시대적 흐름에 역행하고 있는 ‘상당한 기간 법리’는 이제 폐기되어야 한다.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의 경우 소멸시효 항변의 권리남용 여부 판단에서 채권자의 객관적 권리행사 장애사유가 소멸된 시점으로부터 원래의 권리행사 기간, 즉 단기소멸시효에 따른 원칙적 권리행사 기간인 3년 내에 소를 제기하였다면 국가의 소멸시효 항변을 권리남용으로 배척하는 것이 타당하다. <br/> 3) 이 사건에서 단기소멸시효가 완성된 원고들에 대한 소멸시효 항변의 배척<br/> 이 사건 5·18민주화운동 관련자 가족 고유의 위자료 청구권의 경우, 위 원고들은 이 사건 화해간주조항으로 인하여 위자료 청구권을 객관적으로 사실상 행사할 수 없었고, 이 사건 화해간주조항에 대한 이 사건 위헌결정으로 그러한 장애가 해소되었다. 위 원고들은 이 사건 위헌결정일인 2021. 5. 27.부터 3년 내에 이 사건 소를 제기하였으므로, 피고의 소멸시효 항변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 권리남용에 해당하여 허용될 수 없다. 그럼에도 원심은 원고들의 가족 고유의 위자료 청구권은 모두 소멸시효가 완성되었다는 피고의 항변을 받아들여 원고들의 이 부분 청구를 기각하였다. 이러한 원심판단에는 소멸시효 항변의 권리남용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으므로 이 부분 판단은 파기되어야 한다. <br/> 바. 입법적 해결 필요성<br/> 별개의견은 소멸시효 항변의 권리남용 법리에 근거하여 5·18민주화운동 관련자의 가족들 전부를 구제할 수 있는 해석론을 제시하였다. 그러나 과거사정리법의 제정 및 과거사 청산을 위한 계속된 노력에도 불구하고 5·18민주화운동을 비롯한 과거사 사건 전반에 있어 여전히 피해자의 구제 및 명예회복을 위한 조치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국회나 정부가 과거사정리법상의 의무규정이 요구하는 통일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음에 따라, 피해자들과 그 가족들은 많은 시간과 비용이 소요되는 민사소송절차를 통한 사적 구제방법에 의지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어렵게 제기한 국가배상청구의 소는 국가의 소멸시효 항변으로 번번이 좌절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일부 사건에서 소멸시효 문제를 간신히 넘어서더라도 증명의 정도, 사실심 법원의 위자료 산정에 관한 재량권 행사 등으로 피해 구제의 내용과 정도에 있어 피해자들 사이에서 적지 않은 차이가 발생하고 있다. <br/> 따라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과거사 사건과 관련하여 국가의 반인권적·반인도적 범죄행위로 인한 국가배상청구권에 대해서는 소멸시효의 적용을 배제하는 규정을 신설하고, 부칙 규정을 통해 이를 이미 소멸시효가 완성된 국가배상청구권에 대하여도 적용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이미 국가배상을 청구하여 판결이 확정된 경우라도 그 판결이 소멸시효 배제에 관한 신설 규정 적용 여부에 따라 결과가 바뀔 수 있다면 민사소송법 제451조에 대한 예외로서 재심의 소를 제기할 수 있도록 하는 전향적인 입법도 고려할 수 있다. <br/> 궁극적으로는 5·18민주화운동을 비롯한 과거사 사건에 관한 국가의 피해배상 등 후속 절차는 과거사정리법 제34조, 제36조 제1항이 요구하는 국가의 의무를 제대로 이행할 수 있는 실질적인 내용을 담은 공법적 구제방법을 마련하여 통일적이고 공평하게 진행되어야 한다. 2013년 전원합의체 판결 시 다수의견에 대한 보충의견을 통해 이러한 지적이 있었음에도 12년이 지난 지금껏 별반 달라지지 않은 상황이 지속되고 있음은 안타까운 일이다. 국회와 정부는 지금이라도 배상·보상 특별법의 제정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이로써 과거와의 화해를 통해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국민통합에 기여한다는 과거사정리법의 입법 목적이 달성될 수 있을 것이다.<br/> 사. 맺음말<br/> 구체적 분쟁사건의 재판에서 법률 또는 법률조항의 의미·내용과 적용 범위가 어떠한 것인지를 정하는 권한, 곧 법령의 해석·적용 권한은 사법권의 본질적 내용이고, 법률이 헌법규범과 조화되도록 해석하는 것은 법률의 해석·적용상 대원칙이다. 어떤 법률조항에 대하여 여러 갈래의 해석이 가능할 때 법원으로서는 가능하면 입법권을 존중하여 입법자가 제정한 규범이 존속하고 효력이 유지될 수 있도록 헌법에 합치되는 해석, 즉 합헌적 법률 해석을 선택하여야 한다(대법원 2020. 4. 29. 선고 2016두41071 판결 등 참조). <br/> 이 사건과 같은 과거사 사건에서 법관의 합헌적 법률 해석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합헌적 법률 해석은 본래 구체적 사건에서 국민의 기본권 보장, 소수자와 약자의 보호라는 헌법적 사명을 수행하여야 하는 법관의 재판작용에서 가장 핵심적 위치에 놓여 있다. 과거사 사건에서는 기존의 법률과 선례의 틀로써 집단적이고 제도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진 국가폭력의 실체와 피해 구제에 접근하는 데에는 구조적으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기에, 법관의 적극적인 합헌적 법률 해석에 기대어 권리구제로 나아갈 수 있다. 우리 현대사에서 과거사 사건을 구성하는 ‘반민주적 또는 반인권적 행위에 의한 인권유린과 폭력·학살·의문사 사건’(과거사정리법 제1조 참조)은 실상 그 이면을 들여다볼 때,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시민들의 끊임없는 사회경제적·사상적·문화적 노력과 저항에 대하여, 권위주의 정권이 이를 탄압하기 위하여 위헌·위법하게 동원한 수단인 국가폭력 그 자체이거나 그 결과이기 때문이다.<br/> 과거사 사건에서 합헌적 법률 해석을 위한 전제로서 법원은 자신의 가해자성을 자각할 필요가 있다.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시민들의 저항에 대하여 권위주의 정권이 국가폭력의 형태로 위헌·위법하게 동원한 불법행위의 과정 속에 법원의 위법한 유죄판결과 그 집행의 결과인 구금이라는 가해행위가 다수의 과거사 사건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대법원 2018다212610 전원합의체 판결에서도 유신시대에 대통령의 위법한 긴급조치 발령·집행행위로부터 법관의 위법한 유죄판결 등에 이르는 일련의 국가작용으로 인한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하면서, 법관의 유죄판결이 그 불법행위 내용의 일부를 구성함을 인정하였다. 법령의 합헌적 해석을 통해 국민의 기본권 보장의 책무를 맡은 법관의 실패가 사법의 실패, 헌법의 실패를 가져온 사례들이다. 그렇기에 과거사 사건을 마주하는 법관으로서는, 이 사건 5·18민주화운동 관련자들을 비롯하여 민주주의 헌법수호에 헌신한 수많은 시민들의 오랜 저항과 희생을 자양분 삼아, 우리 법원이 과거의 권위주의 시대에 벌어진 여러 실패를 딛고 국민의 기본권 보장의 최후의 보루라는 사명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된 역사를 잊지 말아야 한다. 시민들의 오랜 저항과 희생 덕분에 민주주의 헌법질서의 가치가 성장하여 우리 사회 전반에 내면화하게 되었고, 법원이 수행해야 하는 헌법수호 책무나 법관의 독립이 갖는 가치를 소중히 여기게 되었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 2025. 4. 4. 선고 2024헌나8 전원재판부 결정에서 대통령의 ‘2024. 12. 3. 자 비상계엄 선포’가 비상계엄 선포의 실체적 요건 및 절차적 요건을 규정한 헌법 및 계엄법 조항을 위반한 것이라고 판단하면서, "국회가 신속하게 비상계엄해제요구 결의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시민들의 저항과 군경의 소극적인 임무 수행 덕분"이라고 갈파한 것은 그날의 엄정한 진실을 드러낸 것이었듯이, 우리 법원의 이러한 사정 또한 마찬가지이다. 이 모든 역사적 진실을 직시하며 법원은 어떠한 태도로 과거 권위주의 시대에 벌어진 법관의 실패와 헌법의 실패를 극복하고 합헌적 법률 해석을 통한 국민의 기본권 보장, 소수자와 약자의 보호라는 고귀한 사명에 다가갈 것인가 궁구하여야 한다.<br/> 접근 방식은 다소 다르지만 다수의견이나 별개의견 모두 과거사 사건에 적용할 소멸시효 법리에 관하여 합헌적 법률 해석으로 피해자를 구제할 수 있는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려 노력한 결과물이다. 이것이 5·18민주화운동 관련자와 가족들이 이 사건에서 던진 문제의식에 올바른 응답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이러한 노력으로 과거와 현재를 건강하게 연결함으로써 헌법정신을 회복하고 법원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복원하는 하나의 기회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br/> 이상과 같이 이 사건에서 원고들의 가족 고유의 위자료 청구를 기각한 원심판결을 파기하여야 한다는 결론에 대해서는 다수의견과 뜻을 같이하나, 그 이유와 논거가 다르므로 별개의견으로 이를 밝힌다. <br/> 5. 대법관 노태악의 반대의견<br/> 가. 반대의견의 취지<br/> 우선 5·18민주화운동으로 관련자와 그 가족들이 겪은 고통에 대하여 깊은 위로를 전한다. 나아가 이들의 민주주의를 위한 희생과 헌신에 대하여 충분한 배상·보상과 명예회복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그 뜻을 같이함을 분명히 밝힌다. <br/> 그렇지만 그러한 결론을 이끌어내기 위하여 다수의견이 들고 있는 ‘권리행사의 객관적, 합리적 기대가능성’이라는 판단 기준은, 소멸시효 제도의 취지나 현재까지 확립된 법리에 정면으로 반하는 것으로, 모호하고 불명확한 기준으로 인하여 법률상 장애와 사실상 장애의 구별에 혼란을 가져온다. 또한 민법상 소멸시효에 관한 다른 규정들, 즉 미성년자의 성적 침해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 규정이나 시효정지 제도와의 관계에 비추어 보더라도 균형이 맞지 아니한다. 특정 사건에만 적용하고자 소멸시효 기산점의 예외를 무리하게 확장하는 것은 예외 이론의 남용이다. <br/> 아래에서 논증하는 바와 같이 원고들이 5·18민주화운동 관련자의 가족 지위에서 가지는 고유의 위자료 청구권은 소멸시효가 완성되었다고 본 원심판단은 현재의 소멸시효 법리에 충실하게 따른 것으로 그에 관하여 어떠한 법리오해의 잘못도 없다. 또한 신의성실의 원칙을 들어 시효완성의 효력을 부정하는 것은 신중하여야 한다는 점에서(대법원 2005. 5. 13. 선고 2004다71881 판결 등 참조), 국가의 소멸시효 항변이 권리남용에 해당하여 허용되지 않는다고 보기도 어렵다. 반대의견은 이들에 대한 구제는 기본 법리를 변경하지 않는다면 사법이 아닌 입법에 의하여 이루어져야 한다고 본다. <br/> 나. 소멸시효 제도와 법리<br/> 1) 소멸시효 제도의 의의<br/> 소멸시효 제도는 법률관계에 불명확한 부분이 필연적으로 내재할 수밖에 없는 점을 감안하여 그 법률관계의 주장에 일정한 시간적 한계를 설정함으로써 그에 관한 당사자 사이의 다툼을 종식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대법원 2010. 9. 9. 선고 2008다15865 판결 참조). 소멸시효 제도는 진정한 권리라 할지라도 시간의 경과만을 이유로 그 권리를 소멸시키지만(절대적 소멸설), 분쟁을 적절한 시기에 매듭지음으로써 법적 안정성과 법적 평화를 도모한다는 점에서 역사적으로 그리고 비교법적으로 합리성과 정당성이 인정되어 온 보편적인 제도이다. 따라서 소멸시효 완성으로 인한 권리소멸에 관한 법리는 또 다른 분쟁의 원인이 되지 않도록 단순하고 명확할 필요가 있다. <br/> 2) 법률상 장애와 사실상 장애의 구별<br/> 민법 제166조 제1항은 "소멸시효는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때로부터 진행한다."라고 규정한다. 소멸시효는 객관적으로 권리가 발생하여 그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때로부터 진행하고 그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기간 동안에는 진행하지 않는다. 여기서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기간’이라 함은 그 권리행사에 법률상의 장애사유, 예컨대 기한의 미도래나 조건의 불성취 등의 사유가 있는 기간이다. 권리자의 개인적 사정이나 법률지식의 부족, 권리 존재의 부지 또는 채무자의 부재 등 사실상의 장애로 권리의 존재나 그 행사가능성을 알지 못하였고 또 알지 못함에 과실이 없다는 사유는 법률상 장애사유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그러한 사유로 권리를 행사하지 못하였다 하더라도 시효진행에 방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은 지금까지 선례가 일관되게 취하고 있는 확고한 입장이다(대법원 1982. 1. 19. 선고 80다2626 판결, 대법원 1992. 3. 31. 선고 91다32053 전원합의체 판결, 대법원 2011. 12. 27. 선고 2011다86935 판결 등 참조). 이에 따라 판례는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때’를 대체로 불법행위 시와 같이 채권이 구체적으로 발생한 때 혹은 채권의 이행기가 도래한 때로 인정하면서, 채권자의 부지와 같은 주관적 사유는 사실상 장애로서 소멸시효의 진행을 막지 않는다고 본다. 이와 같이 민법 제166조 제1항은 소멸시효의 객관적 기산점을 규정하는 조항으로, 소멸시효의 주관적 기산점을 규정하는 민법 제766조 제1항("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의 청구권은 피해자나 그 법정대리인이 그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간 이를 행사하지 아니하면 시효로 인하여 소멸한다.")과 구별된다. <br/> 나아가 대법원은 소멸시효의 진행을 막는 법률상 장애사유를 제한적이고 엄격하게 인정해 왔다. 하나의 예를 들자면, 판례가 변경된 경우 변경 전에 그와 상반된 입장을 취한 대법원 판례가 있다는 사정은 법률상 장애로 인정되지 않는다. 대법원이 전원합의체 판결로 임용기간이 만료된 국공립대학 교원에 대한 재임용거부처분에 대하여 이를 다툴 수 없다는 종전의 견해를 변경하였다고 하더라도, 그와 같은 대법원의 종전 견해는 국공립대학 교원에 대한 재임용거부처분이 불법행위임을 원인으로 한 손해배상청구에 대한 법률상 장애사유에 해당하지 아니한다는 것이다(대법원 2010. 9. 9. 선고 2008다15865 판결). <br/> 다. 다수의견의 문제점<br/> 1) 판단 기준으로서 ‘권리행사의 객관적, 합리적 기대가능성’<br/> 가) 다수의견은 위와 같은 법률상 장애와 사실상 장애의 구별에 관한 법리를 그대로 인용하면서도 민법 제166조 제1항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때’의 궁극적 판단 기준을 ‘권리행사의 객관적, 합리적 기대가능성’이라고 하였다. 사실상 장애사유라 하더라도 권리행사의 객관적, 합리적 기대가능성이 없다면 소멸시효가 진행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수의견에 따르면 채권자가 권리의 존재나 그 행사가능성을 알지 못하였고 또 알지 못함에 과실이 없을 경우 권리행사를 객관적, 합리적으로 기대할 수 없다고 볼 여지가 있고, 그렇다면 소멸시효는 진행하지 않는다. 그러나 앞서 본 법리에 비추어 보면 위와 같은 사정은 어디까지나 채권자의 주관적 사정이자 사실상 장애사유에 불과하여 소멸시효의 진행을 막지 못한다. 다수의견은 이를 ‘법률상 장애와 사실상 장애 구별의 예외’라고만 설명할 뿐 기존 판례와의 저촉 문제에 대하여는 합리적으로 설명을 하지 못하고 있다. 결국 다수의견은 소멸시효 진행에 관하여 확립된 법리로 기능하고 있는 법률상 장애와 사실상 장애의 구분을 허물고 있다. <br/> 나) 또한 다수의견은, 권리행사의 객관적, 합리적 기대가능성을 "소멸시효 제도의 취지, 권리의 목적과 성격, 채권자와 채무자의 특성과 상호 관계, 사안의 유형과 맥락 등을 두루 규범적으로 고려하여 권리행사가 문제 되는 시점의 일반인을 기준으로 판단"한다고 한다. 그렇지만 ‘제반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소멸시효의 기산점과 진행 여부를 판단하는 방식은 그 판단 기준이 모호하고 불명확하다. 이는 소멸시효 완성 여부를 둘러싼 분쟁을 더 복잡하게 하고 예측가능성과 법적 안정성을 저해한다. 또한 채권자로 하여금 권리행사를 주저하게 하는 사정이 있다는 정도만으로도 권리행사에 장애가 있는 것으로 평가될 가능성이 커서 소멸시효의 진행을 저지하는 장애사유가 쉽게 확장되는 것을 막기 어렵다. 다수의견이 제시하는 법리를 과연 법적 안정성을 근본 취지로 하는 소멸시효 제도의 법리로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심각한 우려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br/> 다) 더 나아가 권리행사의 객관적, 합리적 기대가능성이 없다는 이유를 들어 소멸시효 기산점을 늦추는 방식은 소멸시효가 진행하지 않는 상태를 지속시켜 "소멸시효에 걸리지 않는 채권적 권리"를 발생시킴으로써 법적 안정성을 크게 해칠 수 있다. 민법 제766조는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에 대하여, 피해자나 그 법정대리인이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간 행사하지 아니하면 소멸하도록 하는 주관적 기산점을 둔(제1항) 외에 불법행위를 한 날로부터 10년이라는 객관적 기산점을 함께 두었다(제2항). 피해자의 주관적 인식만을 기준으로 할 경우 피해자가 손해 및 가해자를 알지 못하는 한 소멸시효가 진행하지 않게 되어 소멸시효 제도가 추구하는 법적 안정성에 상당한 위협이 된다. 이에 따라 권리자의 주관적 인식 여부와 무관한 객관적 기산점으로서 ‘불법행위를 한 날로부터 10년’이라는 시효기간의 제한을 둔 것이다. 민법 제766조는 국가배상법 제8조에 따라 국가배상청구권에 준용되고, 다만 장기소멸시효는 국가재정법 제96조 제2항, 제1항에 따라 5년이 적용된다. 그런데 이 사건은 헌법재판소 2014헌바148 결정에 따라 장기소멸시효 적용이 배제되는 과거사정리법 제2조 제1항 제4호의 중대한 인권침해사건에 해당한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에 따라 이 사건에는 단기소멸시효만이 적용되고 그 결과 소멸시효의 진행 여부나 시점이 당사자의 주관적 사정에만 맡겨지게 되었는데, 그럼에도 사실상 장애로 분류되는 사유를 들어 다시 소멸시효 기산점을 뒤로 미루는 것은 법적 안정성이라는 측면에서 적절하다고 할 수 없다. <br/> 라) 다수의견은 권리행사의 객관적, 합리적 기대가능성을 판단 기준으로 삼으면서 "권리자가 권리가 발생하였는지 또는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지를 객관적으로 알기 어려운 상황에 있고, 권리자가 과실 없이 이를 알지 못한 경우에도 그 청구권이 성립한 때부터 소멸시효가 진행한다고 보는 것은 정의와 형평에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소멸시효 제도의 존재이유에도 부합한다고 볼 수 없으므로 이러한 경우에는 객관적으로 권리자가 청구권이 발생하였음을 알 수 있게 된 때 또는 이를 행사할 수 있음을 알 수 있게 된 때로부터 소멸시효가 진행한다."라고 본 판례(대법원 2003. 2. 11. 선고 99다66427, 73371 판결, 대법원 2016. 10. 27. 선고 2014다211978 판결 등)를 근거로 든다. 그러나 위 판례들의 구체적 사실관계를 보면, 그렇게 쉽게 원용할 사안이 아니다. 즉 법인의 이사회결의가 부존재함에 따라 발생하는 제3자의 부당이득반환청구권처럼 법인의 내부적인 법률관계가 개입되어 있어 청구권자가 권리의 발생 여부를 객관적으로 알기 어려운 상황에 있었거나(대법원 2003. 2. 11. 선고 99다66427, 73371 판결), 건물신축공사에서 건물이 완성된 이후 소유권 귀속에 관한 법적 분쟁이 계속되는 등으로 하수급인이 수급인을 상대로 민법 제666조에 따른 저당권설정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는지를 객관적으로 알기 어려운 상황에 있었던 경우였다(대법원 2016. 10. 27. 선고 2014다211978 판결). 이와 같이 판례가 ‘청구권이 성립한 때’가 아닌, ‘권리의 발생 또는 권리행사 가능성을 안 때’부터 소멸시효가 진행된다고 본 사례는 객관적 기산점만을 둔 부당이득반환청구권, 저당권설정청구권 등의 소멸시효 완성 여부가 문제 된 사례들이다. 위 사례들은 객관적 기산점 체계로 발생한 불합리를 "정의와 형평의 원칙"에 근거하여 주관적 사정도 아울러 고려함으로써 이를 완화한 것이다. 민법 제766조 제1항("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으로 이미 주관적 기산점을 두고 있는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에까지 위와 같은 법리를 만연히 확장할 것이 아니다. 구체적 사안의 특수성을 고려한 예외적 사례를 근거로 민법 제166조 제1항에 따른 소멸시효의 진행 여부 판단 기준을 "권리행사의 객관적, 합리적 기대가능성"으로 일반화하는 데에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 <br/> 마) 구체적으로 이 사건을 보더라도 다수의견이 권리행사를 객관적, 합리적으로 기대할 수 없었다는 사유로 들고 있는 것은 모두 사실상 장애사유로서, 그 용어나 표현만을 달리하였을 뿐이다. 즉 "이 사건 화해간주조항의 불명확성, ‘동의 및 청구서’의 서식, 보상금 등 지급결정 당시는 장기소멸시효 완성을 배척할 법리나 입법이 존재하지 않아 소를 제기했더라도 소멸시효 완성을 이유로 소가 인용되기 어려웠던 사정, 당시 사회적 분위기 등에 따라, 관련자의 가족들이 보상금 등 수령으로 일체의 손해배상 문제가 포괄적·종국적으로 정리되었다고 이해한 것"은 모두 이들의 개인적·주관적 사정에 해당하여, 가족들이 그와 같이 이해하는 데에 과실이 없고 국가가 가족들의 그러한 잘못된 이해 형성에 기여하였다고 하더라도 소멸시효 진행을 저지하는 법률상 장애사유로 평가될 수 없다. 그뿐만 아니라 뒤에서 보는 것처럼 이 사건 위헌결정 이전에 이 사건과 같은 5·18민주화운동 관련자 가족이 고유의 위자료 청구권을 행사하여 대법원판결로 확정된 사례도 존재한다. 다수의견이 말하는 권리행사의 객관적, 합리적 기대가능성으로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이 점이 다수의견이 특정 사건의 권리구제만을 위해 소멸시효에 관한 기본 법리를 허물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이유이자, 이 사건에는 법률상 장애사유가 없으므로 보상금 등 지급결정일부터 소멸시효가 진행한다고 보는 것이 보편타당하고 상식적인 법 해석인 이유이다. 다수의견이 판례의 변경을 의도하는 것이 아니라면, 관련자 가족을 구제하기 위하여 소멸시효 항변의 권리남용 법리를 내세운 별개의견의 접근법이 차라리 솔직하다. <br/> 2) 민법의 소멸시효 관련 다른 규정들과의 관계 문제 <br/> 다수의견은 민법의 소멸시효 관련 다른 규정들과의 관계에서도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br/> 가) 미성년자의 성적 침해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민법 제766조 제3항)<br/> 2020. 10. 20. 법률 제17503호로 개정되어 같은 날 시행된 개정 민법은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를 규정하는 제766조에 제3항을 신설하여 "미성년자가 성폭력, 성추행, 성희롱, 그 밖의 성적 침해를 당한 경우에 이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는 그가 성년이 될 때까지는 진행되지 아니한다."라고 규정하였다. 개정이유는 "현행 민법에 따르면 미성년자가 성적 침해를 당한 경우에도 일반 손해배상청구권과 동일하게 부모 등 법정대리인이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부터 3년이 지나거나 성적 침해가 발생한 날부터 10년이 지나면 소멸시효가 완성되어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 그런데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하는 성폭력범죄 등은 주변인들이 가해자인 경우가 많아 대리인을 통한 권한 행사가 어려운 상황이다. 이를 고려하여, 해당 미성년자가 성년이 될 때까지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가 진행되지 아니하도록 하여 미성년자인 피해자가 성년이 된 후 스스로 가해자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도록 보장함으로써 성적 침해를 당한 미성년자에 대한 보호를 강화하려는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미성년자가 성적 침해를 당한 경우 대리인을 통한 권리행사가 어려운 상황이라면 다수의견에 따를 때 권리행사의 객관적, 합리적 기대가능성이 없어 소멸시효가 진행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미성년자의 성적 침해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는 미성년자가 성년이 된 때부터 진행한다는 내용의 조항을 별도로 신설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개정이유에서 밝히고 있듯이 "현행 민법에 따를 때" 위와 같은 사정은 사실상 장애에 불과하여 소멸시효의 진행을 막지 못하므로, 제766조 제3항을 두어 미성년자가 성년이 될 때까지 소멸시효가 진행하지 못하게 한 것이다. 이와 같이 다수의견은 민법 제766조 제3항의 신설 취지에도 부합하지 아니한다. <br/> 나) 시효정지 제도(민법 제179조부터 제182조) <br/> 민법은 제7장 소멸시효에서 소멸시효의 중단(제168조부터 제178조)을 규정한 데 이어 소멸시효의 정지(제179조부터 제182조)를 규정한다. 제한능력자에게 법정대리인이 없는 경우와 재산관리자에 대한 제한능력자의 권리는 그가 능력자가 되거나 법정대리인이 취임한 때부터 6개월 내에는 시효가 완성되지 아니하고(제179조, 제180조 제1항), 부부 사이의 권리는 혼인관계가 종료된 때부터 6개월 내에는 소멸시효가 완성되지 아니한다(제180조 제2항). 상속재산에 관한 권리는 상속인의 확정, 관리인의 선임 또는 파산선고가 있는 때로부터 6개월 내에는 소멸시효가 완성하지 아니하고(제181조), 천재 기타 사변으로 인하여 소멸시효를 중단할 수 없을 때에는 그 사유가 종료한 때로부터 1개월 내에는 시효가 완성하지 아니한다(제182조). 이와 같이 시효정지 제도는 시효정지 사유가 있을 경우 시효는 계속 진행시키되, 시효의 완성을 일정 기간 정지 또는 유예하는 제도이다. 여기서 민법이 들고 있는 시효정지 사유들은 모두 판례에 따를 때 법률상 장애로 분류되기는 어려운 것들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시효정지 제도는 채권자의 권리행사를 곤란하게 하거나 불가능하게 하는 사실이 존재하더라도 그것이 사실상 장애에 불과하다면 민법 제166조 제1항에 따른 소멸시효의 진행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함을 전제로 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br/> 특히 제한능력자에게 법정대리인이 없어 권리행사가 불가능하다면 다수의견에 따를 때 권리행사의 객관적, 합리적 기대가능성이 없으므로 애초에 시효기간은 진행하지 않아야 한다. 하지만 민법의 시효정지 제도는 제한능력자에게 법정대리인이 없더라도 일단 시효기간은 진행하는 것을 전제로 시효완성의 정지 또는 유예를 규정한다. 그렇다면 시효를 진행시키지 않는 전자의 해석이 제한능력자에게 보다 유리한 이상, 제한능력자 보호를 위하여 시효정지 제도를 따로 둘 이유가 없다. <br/> 더구나 다수의견이 이 사건에서 권리행사의 객관적, 합리적 기대가능성을 부정하는 사정으로 든 것이 "구 광주민주화보상법 보상 관련 조항이나 이 사건 화해간주조항의 불명확성, 장기소멸시효 완성 항변을 배척할 수 있는 관련 법리나 입법의 부재,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 등이라면, 그 내용이나 성질상 채권자의 권리행사를 막는 정도가 시효정지 사유로서 제한능력자, 천재 기타 사변 등에 미친다고 볼 수 있는가. 이와 같이 시효기간의 진행을 막지 못하는 시효정지 사유에도 미치지 못하는 정도의 사유를 들어 시효를 아예 진행시키지 않겠다는 것은 시효정지 제도와의 균형에 맞지 않는 해석이다. <br/> 라. 이 사건의 올바른 해결<br/> 1) 소멸시효의 기산과 진행을 규정하는 민법 제166조 제1항에 관한 법리에 따라 이 사건을 판단하면 다음과 같다. 5·18민주화운동 관련자에게는 이 사건 위헌결정이 있기 전까지 관련자 본인의 위자료 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었던 법률상 장애사유가 존재하였다고 할 것이나, 이와 달리 관련자의 가족들에게는 그 고유의 위자료 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었던 법률상 장애사유가 존재하였다고 할 수 없다.<br/> 가) 구 광주민주화보상법은 제2조에서 유족을 ‘관련자의 재산상속인’으로 정의하면서, 유족은 민법 규정에 의한 재산상속분에 따라 보상금과 생활지원금을 지급받을 권리를 공유한다고 규정한다. 또한 구 광주민주화보상법은 제5조에서 보상금의 산정기준을 규정하면서 사망하거나 행방불명된 당시 관련자의 월급액 등 관련자의 사정을 기준으로 삼고 있을 뿐 유족의 사정은 따로 고려하지 않고 있다. 위와 같은 구 광주민주화보상법의 유족 관련 규정의 내용을 종합하여 보면, 이 사건 화해간주조항에 의하여 재판상 화해와 동일한 효력이 미치는 범위는 5·18민주화운동 관련자 본인이 입은 피해에 한정되고, 관련자의 가족(유족 또는 유족 아닌 가족)의 피해에는 재판상 화해의 효력이 미치지는 않는다(구 민주화보상법의 재판상 화해간주조항에 관한 대법원 2014. 12. 24. 선고 2013다214598, 214604 판결 참조). <br/> 나) 따라서 이 사건 위헌결정 이전에는 이 사건 화해간주조항이 위자료를 포함하여 5·18민주화운동과 관련한 피해 일체에 대하여 재판상 화해의 효력을 부여하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이는 어디까지나 관련자 본인에 대한 것으로 한정될 뿐이고, 관련자의 가족에게는 이 사건 화해간주조항이 피고를 상대로 고유의 위자료를 청구하는 데 법률상 장애사유가 되고 있었다고 볼 수는 없다. 보상금 동의수령 유족이든 보상금 미수령 가족이든 보상심의위원회의 보상금 등 지급결정일 이후부터는 이 사건 화해간주조항과 관계없이 독자적으로 고유의 위자료 청구를 할 수 있었다. 실제로 이 사건 위헌결정 이전에도 5·18민주화운동 관련자가 구 광주민주화보상법에 따른 보상금 등을 지급받은 후 관련자의 가족들이 고유의 위자료를 청구하여 인용된 사안이 존재한다(대법원 2015. 5. 28. 선고 2013다208333 판결, ‘아람회 사건’ 피해자들에 관한 대법원 2011. 1. 13. 선고 2010다28833 판결 등). <br/> 다) 보상금 동의수령 유족이 "그 보상금 등을 받을 때에는 그 사건에 대하여 화해계약하는 것이며 그 사건에 관하여 어떠한 방법으로라도 다시 청구하지 아니하겠음을 서약함"이라고 기재된 ‘동의 및 청구서’를 제출한 사실은 인정된다. 그러나 위와 같은 서약은 구 광주민주화보상법이 보상하는, 관련자가 입은 손해에 대하여 유족의 상속분 범위 내에서 화해계약이 이루어졌음을 확인하는 의미이지, 구 광주민주화보상법이 예정한 보상의 대상이 아닌, 관련자의 가족 고유의 위자료 청구권에 대하여도 화해계약이 이루어졌다는 의미로 해석되지는 않는다. 설령 관련자의 가족들이 구 광주민주화보상법 관련 규정의 의미나 화해계약의 효력 범위를 잘못 이해하여 이 사건 위헌결정일까지도 피고를 상대로 가족 고유의 위자료 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음을 알지 못하였고, 알지 못함에 과실이 없다고 하더라도, 앞서 본 법리에 비추어 이러한 사유로 권리를 행사할 수 없었다고 볼 수는 없다. 관련자 가족들의 위와 같은 사유는 시효 진행에 방해가 되는 법률상 장애사유가 아니다.<br/> 2) 이와 같이 보는 것이 소멸시효 관련 제도와 소멸시효 기산점에 관한 법리를 상식적이고 논리적으로 해석·적용하는 것이다. 이는 이 사건 원심을 비롯하여 5·18민주화운동 관련자 가족 고유의 위자료 청구권의 소멸시효 완성 여부가 쟁점이 되었던 다수의 하급심이 그간의 대법원 판례에 근거하여 취한 입장이기도 하다. <br/> 마. 입법을 통한 구제 필요성<br/> 피해자 보호 필요성의 당위만을 앞세워 법원이 현행법상 소멸시효 제도의 틀을 넘어 법리적인 문제점을 초월한 판단을 할 수는 없다. 현 단계에서 5·18민주화운동 관련자 가족들이 겪은 고통에 대한 배상은 국민 전체의 여론과 국가 재정, 유사 사건의 처리 문제 등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입법정책적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구 광주민주화보상법이 보상하지 않은 관련자나 관련자 가족의 정신적 손해에 대하여 국가로 하여금 일정한 보상금 또는 배상금 등을 지급하도록 구 광주민주화보상법의 현행 법률인「5·18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 등에 관한 법률」을 개정하는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또는 별개의견이 제안한 바와 같이 5·18민주화운동과 관련하여 입은 피해 중 정신적 피해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은 시효로 인하여 소멸하지 않는다는 조항을 신설하고, 부칙에서 신설 조항을 개정법률 시행 당시 소멸시효가 완성된 손해배상청구권에도 적용하도록 하면서 이미 판결이 확정된 경우 재심을 허용하는 방안도 가능할 것이다. 입법을 통한 전체적이고 통일적인 해결은 이 사건 원고들과 동일하게 5·18민주화운동에서 희생된 관련자의 가족임에도 이 사건 판결 선고 전에 청구기각 판결이 먼저 확정됨으로써 사법적 구제를 받지 못하게 된 피해자들까지 형평의 문제없이 함께 구제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특정 사안에 대한 권리구제의 필요성이 크다고 하여 사법 해석이 입법의 영역을 넘나드는 것은 사법의 본질에 반하는 것이다. 삼권분립을 통한 법의 지배라는 원칙을 포기하지 않는 한 말이다. <br/> 바. 맺음말<br/> 5·18민주화운동 관련자의 가족인 원고들 고유의 위자료 청구권 행사에는 이 사건 화해간주조항의 존재가 법률상 장애사유였다고 볼 수 없다. 따라서 원고들 고유의 위자료 청구권은 소멸시효가 완성되었다고 본 원심의 판단에 소멸시효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없으므로 상고를 기각할 수밖에 없다.<br/> 이상과 같은 이유로 다수의견에 반대하는 취지를 밝힌다. <br/> 6. 다수의견에 대한 대법관 권영준의 보충의견<br/> 반대의견은 다수의견이 법률상 장애와 사실상 장애를 구별하는 판례의 입장에 저촉된다면서, 법률상 장애론에 따르면 원고들이 관련자의 가족 지위에서 가지는 고유의 위자료 청구권(이하 ‘쟁점 청구권’이라 한다)의 소멸시효가 완성되었다고 한다. 별개의견 역시 법률상 장애론에 따르면 쟁점 청구권의 소멸시효가 완성되었다고 하면서도 피고의 소멸시효 주장이 신의칙을 위반하여 권리남용에 해당한다고 보아 다수의견의 결론에는 동의한다. 아래에서는 반대의견과 별개의견의 우려와 비판을 염두에 두면서, 다수의견의 법리를 보충하여 그 정당성을 밝힌다. <br/> 가. 소멸시효 기산점에 관하여 - 반대의견에 대한 반론<br/> 1)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때’의 의미와 법률상 장애론의 관계<br/> 소멸시효는 권리자가 일정 기간 권리를 행사하지 않아 유동적이고 불안정한 상태가 계속되는 경우 일정한 요건 아래 권리를 소멸시킴으로써 법적 안정성을 도모하는 제도이다(대법원 2025. 7. 24. 선고 2023다240299 전원합의체 판결 참조). 이 제도의 1차적 수혜자는 자신의 의무에서 해방되는 의무자이고, 2차적 수혜자는 유동적이고 불안정한 상태로 인한 사회적 비용을 절감하게 되는 사회 공동체이다. 그러나 법적 안정성을 도모하는 소멸시효 제도의 목적을 감안하더라도, 이 제도의 운용 과정에서는 권리자와 의무자, 사회 공동체의 이익 간의 일정한 형량과 조정이 불가피하다. 소멸시효 제도는 권리자의 권리가 대가 없이 박탈되는 중대한 불이익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권리자의 희생은 법적 안정성이라는 명분만으로 무제한 강요될 수는 없고, 이를 정당화할 사유가 있어야 한다. <br/> 이와 같은 정당화 사유는 여러 가지로 설명되는데, 권리자가 권리를 행사할 수 있었음에도 소멸시효 기간 동안 이를 행사하지 않았다는 점도 제시되고 있다. ‘권리 위에 잠자는 자를 보호하지 않는다.’는 법언을 인용하거나(대법원 1992. 3. 31. 선고 91다32053 전원합의체 판결 등 참조), ‘권리행사의 태만에 대한 제재’를 소멸시효 존재 이유로 드는 판례(대법원 2013. 5. 16. 선고 2012다202819 전원합의체 판결 등 참조)가 그 예이다. 소멸시효의 이름 아래 권리자에게 대가 없는 권리 박탈이라는 중대한 불이익을 부과하는 정당화 근거의 하나로 ‘권리자의 행태에 대한 부정적 평가’를 들고 있는 것이다. <br/> 소멸시효 제도에서 권리자의 행태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자기책임 원칙과의 관계에서 얼마나 무게 있게 고려되어야 하는가에 관해서는 다양한 입장이 존재할 수 있다. 그러나 법적 안정성의 요청만을 앞세워 권리자 측 사정이 소멸시효 제도의 고려 대상에서 전면적으로 배제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에는 별 이견이 없을 것이다. 실제 우리 민법의 소멸시효 제도와 관련 법리는 기산점, 중단과 정지, 시효이익 포기, 신의칙 적용 등 다양한 국면에서 의무자와 권리자의 사정을 함께 고려하여 이익의 형량과 조정을 행하고 있다. 이는 외국의 입법례나 법리에서도 널리 확인되는 보편적인 특징이다. 따라서 권리자에게 애당초 권리를 행사할 기대가능성이 없어 그의 권리 불행사라는 행태에 어떠한 부정적 평가도 할 수 없는데 단지 권리 불행사라는 사실 상태가 일정 기간 지속되었음을 이유로 권리자의 권리를 박탈하는 데에는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br/> 민법 제166조 제1항이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때’로부터 비로소 소멸시효가 진행한다고 규정한 것도 이러한 배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이 조항은 ‘법은 불가능한 것을 강요하지 않는다(lex non cogit ad impossibilia).’거나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자에 대하여는 소멸시효가 진행하지 않는다(contra non valentem agere non currit praescriptio).’는 오랜 법 원리를 실정법에 반영한 조항이다. 따라서 민법 제166조 제1항에 따른 소멸시효 기산점은 하나의 기계적 공식에 따라 획일적으로 설정되어서는 안 되고,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때’라는 문언이 지니는 의미와 그 배후의 법 원리, 나아가 권리자, 의무자 및 사회 전체의 이익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규범적으로 설정되어야 한다. <br/> 주지하다시피 대법원은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때’의 의미에 관하여 법률상 장애론을 전개하여 왔다(대법원 2010. 9. 9. 선고 2008다15865 판결 등 참조). 이에 따르면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때’란 기한 미도래나 조건 불성취와 같은 법률상 장애가 없는 때를 의미하므로 사실상 장애가 있더라도 소멸시효는 진행한다. 이처럼 법률상 장애론은 소멸시효가 언제 진행하는가에 관하여 단순하고 명확한 기준을 제시한다. 이러한 단순성과 명확성은 시효제도가 요청하는 법적 안정성의 이념에 비추어 볼 때 법률상 장애론의 큰 장점이다. 법률상 장애론은 지금까지 그러했듯 앞으로도 대부분의 사안에서 유용한 판단 기준으로 활용될 것이다. <br/> 다수의견은 이처럼 이미 확립된 법률상 장애론을 부정하거나 허물어뜨리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다수의견은 법률상 장애론이 우리 재판 실무에서 민법 제166조 제1항에 관한 원칙적 판단 기준임을 강조하는 입장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법 문제가 그러하듯 모든 사안을 완벽하게 규율할 수 있는 판단 기준은 존재하지 않는다. 법률상 장애론 역시 모든 사안 유형에 늘 완벽하게 들어맞는 것이 아니다. 법률상 장애론을 기계적으로 적용해서는 결과의 구체적 타당성을 담보할 수 없는 회색지대의 경계적 사안도 존재한다. 이러한 범위에서는 법률상 장애론의 의미와 비중을 재음미할 필요가 생긴다. <br/> 법률상 장애론은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때’의 해석을 위해 법원이 활용하는 도구적 틀이지 한 치의 예외 없이 고수되어야 할 절대적 도그마가 아니다. ‘법률상 장애’는 권리행사를 기대할 수 없게 하는 사유의 원형(prototype)을 표현한 것이고, 반드시 여기에 해당하여야만 권리행사의 기대가능성이 부정될 수 있다는 의미의 폐쇄적 개념으로까지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 권리행사 불가능이 오로지 법률상 장애로 인한 경우만을 의미한다는 문언상 근거가 존재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법률상 장애와 사실상 장애의 구별이 언제나 명확하게 이루어질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마치 이행의 ‘불능’이 법률상 불능에만 국한되지 않는 것처럼 권리행사의 ‘불가능’ 역시 법률상 장애로 인한 불가능에만 국한되어야 할 필연적 이유가 없다. <br/> 대법원 역시 사실상 장애가 문제 된 여러 사례에서 사회정의와 형평의 이념 아래 소멸시효의 진행을 부정함으로써 소멸시효 기산점에 관해 유연한 접근을 취하였다(대법원 1993. 7. 13. 선고 92다39822 판결, 대법원 2003. 2. 11. 선고 99다66427, 73371 판결, 대법원 2016. 10. 27. 선고 2014다211978 판결 등 참조). 이러한 유연한 접근은 불법행위법의 영역에서 더욱 강하게 요구된다.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채권에 관해서는 기한 미도래나 조건 불성취 등의 법률상 장애를 상정하기가 쉽지 않다. 또한 가해자의 행위로 인해 비자발적으로 자신의 법익을 침해당한 피해자를 충실하게 구제하여 본래의 정의로운 상태로 회복시켜 주는 것은 불법행위법의 지도 이념이다. 이러한 불법행위법의 특징은, 기한 미도래나 조건 불성취 등의 법률상 장애를 쉽게 상정할 수 있고, 자기책임에 따른 위험 배분의 원칙상 스스로 계약을 체결하여 권리를 취득한 당사자가 권리행사에 관한 사실상 장애의 위험을 감수해야 할 당위성이 상대적으로 높은 계약법의 특징과 비교되는 부분이다. <br/> 불법행위법에서의 소멸시효 기산점에 관한 유연한 접근의 요청은 단기소멸시효에 관한 주관적 기산점의 특칙(민법 제766조 제1항)에 반영되어 있다. 또한 판례는 손해 및 가해자에 대한 ‘인식’을 엄격하게 인정하거나(대법원 1995. 2. 10. 선고 94다30263 판결, 대법원 2013. 7. 12. 선고 2006다17539 판결 등), 민법 제166조 제1항에 따라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때’가 도래할 것까지 요구하는 등(대법원 2012. 4. 13. 선고 2009다33754 판결 등) 피해자에게 유리하게 단기소멸시효의 기산점을 설정하려는 경향성을 보인다. 민법 제766조 제1항과 결부된 민법 제166조 제1항의 해석과 관련하여, 법률상 장애론이 아닌 권리행사의 객관적 기대가능성의 관점에서 비로소 이해할 수 있는 판결들(위 대법원 2009다33754 판결, 대법원 2023. 1. 12. 선고 2021다201184 판결 등)도 그 연장선에 있다. 예컨대 대법원은 공무원의 직무수행 중 불법행위에 의하여 납북된 것을 원인으로 하는 국가배상 사안에서, 납북상태에 있었다는 것은 사실상 장애에 해당하는데도 납북된 사람이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 객관적으로도 불가능하였다는 이유로 국가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 진행을 부정하였다(위 대법원 2009다33754 판결). <br/> 소멸시효 기산점에 관한 대법원 판례의 다각적인 전개는 대법원이 개별 사안의 특수성을 세밀하게 살피면서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때’라는 문언이 지니는 의미와 정신에 가장 부합하는 해석을 도출해 온 결과물이다. 법률상 장애론의 도식을 엄격하게 고수하려는 입장에서는 이러한 판례의 흐름을 일관성 없는 난맥상이라 평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수의견은 ‘권리행사 기대가능성’이라는 법 원리적 관점에 입각하여 모든 판례를 하나의 체계로 통합하여 이해하고자 한다. 다수의견은 이전에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법리나 기준을 창설하려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판례의 저변에 내재해 있던 권리행사 기대가능성이라는 법 원리를 수면 위로 끌어올려, 여러 갈래로 산재되어 있는 판례를 포용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확인적 기술(記述)을 행한 것이다. <br/> 반대의견은 다수의견의 권리행사 기대가능성 논의가 법률상 장애론과 양립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법률상 장애론과 권리행사 기대가능성 논의는 다른 층위에 속하는 문제로서 양립할 수 있다. 법률상 장애론은 민법 제166조 제1항이 개별 사건과 결합하는 지점에서 일반적이고 전형적인 판단의 틀을 제시하는 역할을 한다. 권리행사 기대가능성 논의는 법률상 장애론보다 상위의 법 원리 차원에서 존재하며, 법률상 장애론을 적용하기 곤란하거나 이를 적용했을 때 정의관념에 비추어 수긍하기 어려운 결론에 이르는 사안 유형이 있을 때 전면에 나서서 이를 보충적으로 규율한다. 이와 같이 법률상 장애론과 권리행사 기대가능성 논의는 근본적 지향점이 같고, 각자의 역할과 층위가 다를 뿐이다. 우리 민법 제166조 제1항과 동일한 규정을 두었던 일본에서도 법률상 장애론이 중추적 역할을 수행하면서도 권리행사 기대가능성에 입각한 최고재판소 판결 및 같은 취지의 후속 판결들과 큰 문제없이 공존해 왔다. <br/> 물론 법률상 장애론의 원칙적 위상을 고려하면, 법률상 장애가 없는데도 권리행사의 기대가능성을 부정하여 소멸시효 진행을 차단하려면 신중하고 엄격한 판단이 선행되어야 한다. 법률지식의 부족이나 권리의 존재에 대한 부지 등 권리자의 주관적 사정만으로는 기대가능성이 부정되지 않는다. 일반인의 관점에서 객관적, 합리적으로 고찰할 때, 해당 상황에 처한 사람이라면 거의 예외 없이 누구에게도 권리행사를 기대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점이 인정되어야만 소멸시효가 진행하지 않는다. 반대의견은 다수의견이 ‘당사자의 주관적 사정’에 따라 소멸시효 진행 여부를 결정한다고 비판하나, 다수의견의 기준은 권리행사를 기대할 수 없는 ‘객관적 상황’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권리의 존재를 알지 못하였고 거기에 과실이 없다는 정도보다 더욱 엄격하고 높은 기준이다. 아울러 개별 사안에서 기대가능성을 부정할 것인지는 법적 안정성을 지향하는 소멸시효 제도의 취지를 고려하여 권리의 목적과 성격, 채권자와 채무자의 특성과 상호 관계, 사안의 유형과 맥락 등 사안의 구체적 특수성을 종합적으로 살펴 신중하게 결정되어야 한다. 다수의견 역시 이 사건의 특수한 맥락에 비추어 이해될 필요가 있다. <br/> 다수의견을 이와 같이 이해한다면, 다수의견이 "소멸시효에 걸리지 않는 채권적 권리"를 발생시켜 법적 안정성을 크게 해칠 수 있다는 반대의견의 비판도 타당하지 않다. 권리가 소멸시효에 걸리는지는 법이 정한 시효 요건을 충족하는가에 좌우되는 문제이며, 요건을 충족하지 않으면 시효가 완성되지 않는 결과는 다수의견에 따르지 않더라도 똑같이 발생한다. 이 사건만 보더라도 쟁점 청구권은 소멸시효에 걸리지 않는 상태로 영원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이 사건 위헌결정일부터 3년이 경과하였는지에 따라 그 소멸 여부가 결정될 뿐이다. 반대의견이 지적하듯 이 사건에는 장기소멸시효가 적용되지 않고, 그 결과 법적 안정성의 가치가 일부 후퇴하게 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역설적으로 이 사건은 중대한 인권침해사건으로서 일반 사안과 달리 법적 안정성을 일부 희생하더라도 피해자를 두텁게 보호해야 할 현저한 특수성을 지니고 있음을 방증한다. 이러한 사정은 단기소멸시효 기산점 설정 국면에서도 피해자의 권리 보호라는 규범적 이익이 중대하게 고려될 당위성을 높인다. 이처럼 특수한 맥락을 지닌 이 사건을 예로 들어 다수의견의 일반적 파급 효과를 우려하는 것은 지나치다. <br/> 2) 다른 시효 관련 규정들과의 관계<br/> 가) 미성년자의 성적 침해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민법 제766조 제3항)<br/> 반대의견은 미성년자의 성적 침해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 규정인 민법 제766조 제3항의 신설이 다수의견의 부당성을 보여 주는 것이라 주장한다. 민법 제766조 제3항은 성적 침해를 입은 미성년자의 보호를 강화하기 위해 그가 성년이 될 때까지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를 진행시키지 않는 규정이다. 그런데 이 규정은 권리행사 기대가능성 유무를 개별적으로 따지지 않고 일률적으로 시효 진행을 막는다. 예컨대 미성년자 본인 또는 법정대리인이 권리를 행사하는 데 아무런 장애가 없는 경우에도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는 진행하지 않는다. 즉 이 규정은 미성년자 보호라는 특수한 정책적 고려를 바탕으로 민법 제166조 제1항과 구별되는 독자적인 의미와 효용을 지닌 규정이다.<br/> 따라서 이 규정이 신설되었다는 사실만으로는 다수의견의 권리행사 기대가능성 법리를 민법 제166조 제1항의 해석론으로는 채택할 수 없다는 논리는 성립할 수 없다. 또한 반대의견이 주장하듯 위 규정의 신설에 권리행사의 곤란성이라는 요소가 일부 고려되었더라도 이는 다수의견의 부당성을 증명하는 사정이 아니라 오히려 다수의견의 정당성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될 수 있다. 시효 진행 여부를 판단할 때 권리행사 기대가능성을 고려하여야 한다는 정신이 반영되었다는 점에서 이 규정은 다수의견과 근본적인 방향성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요컨대 이 규정은 다수의견의 타당성을 부정하는 충분한 근거가 될 수 없다. <br/> 나) 시효정지 제도(민법 제179조부터 제182조)<br/> 반대의견은 시효정지 제도는 특정한 유형의 사실상 장애에 대하여 시효완성만을 단기간 유예하는 효과를 부여하는 점에 착안하여, 다수의견처럼 시효정지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 사실상 장애에 대하여 애당초 시효가 진행하지 않도록 하는 것은 시효정지 제도와 균형이 맞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br/> 다수의견에 따를 때 반대의견이 지적하는 의미의 불균형이 발생할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우리 민법의 시효정지 제도가 가진 특성에서 기인하는 현상이다. 우리 민법은 시효정지 사유를 개별적, 한정적으로 열거하는 방식을 취한다(제179조부터 제182조). 이는 불가항력 일반을 시효정지 사유로 포괄하는 독일 민법(제206조)이나 프랑스 민법(제2234조)과 구별되는 점이다. 따라서 우리 민법 아래에서는 ‘권리행사의 기대가능성은 부정하지만 시효정지 사유로는 열거되지 않은 사유’가 시효정지 사유와 다르게 취급될 가능성을 필연적으로 내포하고 있다. 또한 우리 민법은 시효정지에 대하여 완성유예(시효는 진행하되 그 완성 시점만 일정 기간 유예됨)의 효과만 부여한다. 이는 우리나라와 동일한 시효정지 사유에 대해서 완성유예와 진행정지(해당 사유가 존속하는 동안 시효 자체가 진행하지 않음)의 효과를 구분하여 부여하는 독일 민법(제210조, 제211조는 완성유예 사유, 제206조, 제207조는 진행정지 사유)과 구별되는 점이다. 이와 같이 어떤 사유를 시효정지 사유로 삼을 것인지, 그 사유에 어떤 법적 효과를 부여할 것인지는 논리적, 선험적으로 정해진 정답이 있는 문제가 아니라 입법정책적으로 적절하게 선택할 수 있는 문제이다. 그렇다면 우리 민법이 어떤 사유를 시효정지 사유로 삼지 않는다고 해서 그 사유가 시효를 둘러싼 이익형량 대상에서 당연히 제외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 민법이 시효정지 사유에 완성유예의 효과만 부여한다고 해서 다른 사유에도 당연히 그러한 효과만 부여되어야 할 필연적 이유가 없다. <br/> 따라서 우리 법제가 시효정지 사유를 한정적으로 규정하고 있다고 해서, ‘권리행사의 기대가능성은 부정하지만 시효정지 사유로는 열거되지 않은 사유’에 대하여 민법 제166조 제1항과 같은 원칙 조항을 적용하는 것까지 당연히 금지된다고 해석할 수는 없다. 오히려 이러한 사유들을 외면하지 않고 권리행사 기대가능성 원칙으로 돌아가 민법 제166조 제1항에 따른 규율을 모색하는 것이 권리자의 관점까지 균형 있게 배려하는 법 해석의 모습이다. 나아가 민법 제166조 제1항에 따른 규율의 결과가 반드시 시효정지의 법적 효과와 동일해야 할 필연성도 없다. 오히려 권리 발생 시점부터 권리행사 기대가능성이 원천적으로 결여되었다면 완성유예보다 애당초 시효가 진행되지 않는 효과를 부여하는 것이 더 논리적이고 상식적이다. 이미 대법원은 여러 사례에서 시효정지 사유에 속하지 않는 사실상 장애에 대하여 이러한 판단을 내려왔으나, 이를 두고 시효정지 제도와 균형이 맞지 않는다는 비판은 제기된 바 없다. 결국 반대의견은 명문의 시효정지 사유나 엄격한 의미의 법률상 장애에 해당하지 않는 한, 권리행사 기대가능성이 아무리 결여되어도 권리자에게는 시효진행을 부정하는 이익이 부여될 수 없다는 주장을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 부당함은 앞서 상세히 논증한 바와 같다. <br/> 3) 이 사건에 관한 판단<br/> 이 사건의 경우 관련자의 가족인 원고들은 객관적, 합리적으로 볼 때 이 사건 위헌결정일까지는 권리를 행사하리라 기대할 수 없는 상태에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특히 ① 보상금 등 지급결정 당시 법률과 법리에 따르면 쟁점 청구권의 소멸시효는 이미 완성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아 이를 행사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었고, ② 구 광주민주화보상법의 입법 경위와 내용 등을 고려하면 일반인으로서는 해당 법에 따른 보상으로 5·18민주화운동에 관련된 모든 피해회복이 종결되었다고 신뢰할 개연성이 매우 높았으며, ③ 이러한 사태는 근본적으로 국가가 위헌성의 여지가 있는 불명확한 관련 법령을 제정·집행하는 과정에서 비롯된 점에도 주목해야 한다. 이러한 사정들을 종합하면, 보상금 등 지급결정 당시 일반인의 관점에서는 거의 예외 없이 누구에게도 쟁점 청구권을 행사할 것을 기대하기 어려웠던 것으로 평가된다. 그런데도 지금에 이르러 법관의 관점에서 사후적으로 이를 부정하며 보상금 등 지급결정일부터 시효가 진행되었다고 하는 것은 규범적으로 타당한 기산점 설정이라 할 수 없다. <br/> 반대의견은 이 사건 위헌결정 이전에 관련자 가족들이 고유의 위자료를 청구하여 인용된 예(대법원 2015. 5. 28. 선고 2013다208333 판결 등)를 반대 논거로 제시한다. 그런데 인용 사례의 5·18민주화운동 관련자들은 광주 외의 지역에서 5·18민주화운동을 대중에게 알리는 등의 행위를 하여 계엄법 위반 등으로 유죄판결을 받은 사람들인데, 이 사건 관련자들은 5·18민주화운동 당시 광주 지역에서 계엄군으로부터 폭행당하거나 불법 구금되는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다. 또한 위 인용 사례의 관련자 가족들은 모두 관련자가 과거사위원회의 진실규명결정을 받거나 유죄판결에 대한 재심무죄판결을 받은 뒤 가족 고유의 위자료를 청구하였던 것인 반면, 이 사건에는 그러한 사정이 존재하지 않는다. 별개의견이 상세하게 언급하였듯이 대법원은 이러한 진실규명결정이나 재심무죄판결을 권리행사 기대가능성 인정의 중요한 단초로 삼고 있다. 위 인용 사례의 관련자 가족들은 이 사건과는 달리 이러한 단초를 통해 권리행사 기대가능성이 부여된 상황에서 자신들의 권리를 행사하였다. 이러한 사안의 차이를 세밀하게 고려하지 않은 채 위 인용 사례에서 권리를 행사한 관련자 가족들이 있으니 이 사건에서도 권리행사 기대가능성이 인정되어야 한다는 반대의견의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나아가 특정인의 권리행사가 이루어진 사례가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나머지 모든 사람들의 권리행사 기대가능성도 당연히 인정되어 그들의 구제 가능성이 원천적으로 봉쇄되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긴급조치 국가배상 사건(대법원 2023. 1. 12. 선고 2021다201184 판결)에서도 이와 유사한 문제 상황이 있었으나 대법원은 그 사건 원고들의 권리행사 기대가능성을 부정하였다. 요컨대 반대의견이 든 판결의 존재만으로 다수의견의 결론을 뒤집기에는 부족하다.<br/> 나. 소멸시효 남용 법리와의 관계에 관하여 - 별개의견에 대한 반론<br/> 다수의견과 별개의견은 법률상 장애론의 경직된 적용을 탈피하여 피해자를 구제하고자 하는 문제의식과 최종적인 결론을 공유하면서도 그 방법론은 달리한다. 별개의견이 가진 문제의식이나 입법적 제안에는 다수의견 역시 깊이 공감하는 바이고, 그 법리적 분석에도 경청할 부분이 많다. 그러나 방법론적 관점에서 볼 때, 별개의견은 피해자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법률상 장애론을 엄격하게 해석하면서도, 이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시 피해자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소멸시효 남용 법리를 완화하여 적용하고, 이 과정에서 피해자 구제의 걸림돌이 될 수 있는 ‘상당한 기간 법리’의 폐기까지 주장하는 등 복잡한 경로를 택하고 있다. 반면 다수의견은 일반조항인 민법 제2조의 적용에 앞서 개별조항인 민법 제166조 제1항의 의미를 깊이 탐구하여 해결책을 모색하고, 이를 통해 별개의견보다 한층 간명한 논리 구조를 유지하면서 결과적으로는 더욱 두터운 피해자 보호를 구현하고자 한다. 결국 별개의견은 다수의견과 같은 결론에 도달하기 위해 너무 먼 길을 우회하는 셈이다. 이러한 여정은 불필요할 뿐만 아니라 타당성을 엄밀하게 따져 보아야 하는 지점들도 있다.<br/> 별개의견이 이처럼 복잡한 과정을 통해 실질적으로 달성하려는 목표는 ① 2013년 전원합의체 판결 및 그 후속 판결들에 따른 ‘상당한 기간 법리’의 폐기, ② 과거사 사건 피해자의 총체적 구제로 보인다. 이 두 가지 목표는 법리 일반론 또는 입법적 제안의 차원에서는 충분히 논의할 가치가 있다. 하지만 ①은 이 사건에서 정면으로 다룰 논제가 아닐뿐더러, 이에 관한 별개의견의 세부 논리에는 신중한 검토가 필요한 부분도 있다. ②에 관한 입법 필요성 역시 충분히 수긍할 수 있으나, 과연 개별 사건을 처리하는 법원이 구체적 사안마다 존재하는 세밀한 사정의 기초 위에서 신중하게 적용되어야 할 신의칙을 근거로 모든 과거사 사건 피해자들을 총체적으로 구제하는 결론을 선취하는 것이 사법의 본질에 부합하는지는 의문이 있다. 이하에서 상세하게 살펴본다. <br/> 1) 일반조항과 개별조항의 관계<br/> 신의성실의 원칙이나 권리남용금지에 관한 민법 제2조는 이른바 일반조항으로서, 소멸시효에 관한 개별조항만으로 사안을 온전히 해결할 수 없는 경우에 한하여 보충적으로 적용되어야 한다(대법원 2010. 9. 9. 선고 2008다15865 판결, 대법원 2013. 5. 16. 선고 2012다202819 전원합의체 판결 등 참조). 일반조항은 추상성과 개방성이 높은 일반적 개념으로 구성되어 다양한 사례에 유연하게 적용될 수 있다. 이러한 일반조항은 개별조항의 규율이 초래할 수 있는 가혹함을 완화하거나 입법이 구체적으로 또는 명확하게 정하지 않은 부분에 대한 규율을 보충하여 법이 정의로운 규범으로 유지되도록 하는 순기능을 수행한다. 그러나 일반조항은 그 불확정성과 불명확성으로 인해 적용 과정에서 법관의 주관적 선호나 도덕적 감정이 개입하여 자의적 판단의 근거로 활용될 위험도 내포하고 있다. 그러므로 특정 문제를 규율하는 개별조항이 존재한다면 일반조항의 적용에 앞서 해당 개별조항이 기초하고 있는 법 원리에도 충분히 주의를 기울여 그 조항의 적용 가능성을 끝까지 철저하게 탐구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br/> 이러한 원칙은 개별조항인 민법 제166조 제1항의 해석과 일반조항인 민법 제2조의 적용 중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지의 국면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대법원 역시 채무자의 소멸시효 주장이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여 권리남용으로서 허용될 수 없는 경우가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이러한 일반적 원칙의 적용에는 신중을 기하여야 한다고 강조하였다(대법원 2005. 5. 13. 선고 2004다71881 판결 등 참조). 또한 소멸시효에 관한 개별 제도나 법리 자체에 이미 신의칙적 고려가 상당한 정도로 녹아들어 있으므로, 해당 제도나 법리를 올바르게 운용하는 것으로도 신의칙의 요청에 부합하는 결론에 대부분 도달할 수 있다. 이 사건에서도 민법 제166조 제1항의 문언과 취지, 그 배후의 법 원리에다가 이 사건의 특수성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쟁점 청구권의 소멸시효가 완성되지 않았다는 결론에 충분히 이를 수 있다. 이 경우 소멸시효가 완성되었음을 전제로 한 소멸시효 남용 법리 적용 여부는 별도로 판단할 필요가 없다.<br/> 별개의견은 개별조항인 민법 제166조 제1항의 ‘권리행사 기대가능성’ 개념이 불확정적이라는 점을 들어, 일반조항인 민법 제2조를 적용하는 별개의견의 입장을 정당화하고자 한다. 그러나 개별조항의 개념 요소에 일정한 불확실성이 있다고 하여 일반조항을 쉽사리 끌어오는 것이 곧바로 정당화될 수는 없다. 예컨대 민법에는 ‘정당한 이유’, ‘불능’, ‘위법’, ‘불법’, ‘도의관념’ 등 불확정개념을 포함한 수많은 개별조항들이 있지만, 이에 근거하여 민법 제2조의 포괄적 또는 우선적 적용을 주장하는 견해는 발견되지 않는다. 민법 제166조 제1항과 제2조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민법 제166조 제1항은 소멸시효 기산점으로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때’, 즉 권리행사 기대가능성이 갖추어진 때라는 법률요건과 그 법률효과를 명확하게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법률요건은 입법자가 실체적 내용을 담아 법률 규정에 명시한 재판 기준으로서 법원의 해석 대상이다. 아울러 이는 변론주의 원칙에 따라 당사자가 주장·증명해야 할 대상이다. 반면 민법 제2조는 구획 가능한 법률요건과 그 법률효과를 제시하지 않은 채 추상적 법 이념만 밝히고 있다. 그 법 이념의 구현은 법원에 전적으로 위임되어 있고, 법원은 그 전권에 기초하여 해석자라기보다는 형성자의 지위에서 이 규정을 적용한다. 아울러 이는 당사자의 주장·증명과 관계없이 법원이 직권 판단할 수 있는 대상이다. 이와 같이 개별조항인 민법 제166조 제1항과 일반조항인 민법 제2조는 다른 차원에 놓여 있다. 그 역할 분담과 적용 체계는 특별법 우선 원칙과 마찬가지로 ‘개별조항 우선 원칙’에 지배된다. 단지 민법 제166조 제1항의 법률요건에 일정한 불명확성이 있다는 사정만으로 이러한 원칙이 쉽사리 무너져서는 안 된다. <br/> 2) 민법 제166조 제1항의 우선 적용에 따른 문제 해결의 타당성 <br/> 별개의견은 민법 제166조 제1항으로는 이 사건을 해결할 수 없다는 전제 아래 소멸시효 남용 법리를 적용하였다. 특히 별개의견은 소멸시효 남용 법리를 적용하는 근거 중 하나로, 이 사건 위헌결정이 있기까지는 관련자 가족인 원고들에게 위자료 청구를 할 것을 기대할 수 없는 객관적 장애사유가 있었다는 점(소멸시효 남용의 이른바 제2유형)을 제시한다. 그러나 권리행사의 기대가능성을 부정하는 객관적 장애가 존재했음에도 시효가 진행하여 완성되었다고 판단한 뒤, 다시 바로 그 장애를 이유로 권리남용 법리 아래 시효완성의 효과를 부정하는 것은 평가모순이다. 권리행사의 기대가능성이 없었다면 민법 제166조 제1항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때’가 도래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소멸시효가 애초에 진행하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 훨씬 간명하다. 또한 그렇게 보아야 권리행사의 기대가능성이 없었던 권리자에게 온전한 권리행사 기간을 부여할 수 있다.<br/> 별개의견은 ‘객관적으로 채권자가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장애사유의 존재’를 인정하여 권리남용을 인정한 과거사 사건 관련 선례(‘문경학살 사건’에 관한 대법원 2011. 9. 8. 선고 2009다66969 판결 및 그 무렵의 대법원판결들)에서 제시된 구체적 사유들은 다수의견이 말하는 ‘권리행사의 객관적, 합리적 기대가능성’ 기준에서 제시하는 사유와 다르지 않은데, 다수의견이 선례와 달리 소멸시효 기산점의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은 선례와의 정합성을 떨어뜨리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그러나 여기서 별개의견이 다수의견 비판의 토대로 삼는 ‘선례’들은 과거사 사건에 대한 장기소멸시효 적용을 부정한 헌법재판소 2014헌바148 결정 이전의 판결들이다.<br/> 헌법재판소 2014헌바148 결정은 과거사 사건에 관한 장기소멸시효의 적용을 배제하는 동시에, 단기소멸시효의 경우 진실규명결정이나 재심판결확정을 안 날 등을 기준으로 소멸시효의 기산점을 조정하는 방식을 제안함으로써 피해자 보호와 구제의 폭을 획기적으로 확대하였다. 대법원에서도 소멸시효 기산점 조정 방식을 통한 피해자 구제가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게 되었다(대법원 2019. 12. 24. 선고 2019다231625 판결, 대법원 2020. 5. 28. 선고 2018다265768 판결 등 참조). 또한 대법원은 긴급조치로 인한 국가배상청구권 사건에서 법률상 장애가 존재하지 않는 상황임에도 단기소멸시효 기산점을 늦추는 방식으로 피해자를 구제하였다(대법원 2023. 1. 12. 선고 2021다201184 판결). 해당 사건에서는 진실규명결정일로부터 3년이 경과하였고, 피해자에 대한 유죄판결이 없어 재심판결확정을 기초로 한 기산점 설정도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대법원은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관련 위헌결정 및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이전까지는 권리행사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임을 들어 소멸시효 완성을 부정하였다. 이러한 접근은 소멸시효 기산점 조정 방식이 특정한 사건 유형에 국한되지 않고 과거사 사건 전체에 범용성을 지닐 수 있음을 시사한다. 결국 다수의견은 선례와 정합성이 없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최근 선례의 흐름과 궤를 같이한다고 보아야 한다. <br/> 소멸시효 남용 법리는 주로 장기소멸시효 기간이 경과한 피해자를 구제하기 위해 적용되어 온 점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물론 단기소멸시효 사안에서도 소멸시효 남용 법리가 적용될 수 있다. 그러나 그 적용 과정에서 장기소멸시효 사안에는 없는 부자연스러운 장면이 종종 발견되기도 한다. 소멸시효 남용 법리가 적용되려면 일단 단기소멸시효가 완성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단기소멸시효가 완성되려면 권리에 대한 인식 요건(민법 제766조 제1항)과 권리의 행사가능성 요건(민법 제166조 제1항)이 모두 충족되어야 한다. 특히 판례는 권리에 대한 인식을 ‘손해의 발생, 위법한 가해행위의 존재, 가해행위와 손해 발생 사이의 상당인과관계 등 불법행위의 요건사실에 대한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인식’으로 보아 피해자의 이익을 두텁게 배려하고 있다(대법원 1995. 2. 10. 선고 94다30263 판결 등). 이처럼 피해자가 권리를 현실적이고 구체적으로 인식하고 있었고 그 권리를 행사하는 데 장애가 없는데도 권리를 장기간 행사하지 않아 그의 지배 영역에서 소멸시효가 완성되었다면, 이제 의무자가 법이 정하는 바에 따라 소멸시효를 주장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의무자에게 이와 별도로 정의관념에 비추어 용인하기 어려운 귀책성이 있지 않는 한 그의 주장을 쉽사리 권리남용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결국 단기소멸시효의 적용만 남게 된 과거사 사건의 피해자 구제는 이제 소멸시효 남용이라는 예외적 법리가 아니라 소멸시효 기산점의 합리적 획정이라는 원칙적 차원에서 모색하는 것이 옳다. <br/> 아울러 대법원이 이번 전원합의체 판결로 민법 제166조 제1항의 해석에 관한 기준을 제시하는 이상 ‘객관적으로 채권자가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장애사유의 존재’(제2유형)가 소멸시효 남용 법리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적용 범위도 발전적 방향으로 재검토되어야 한다. 일반조항인 민법 제2조에 앞서 개별조항인 민법 제166조 제1항에 따른 문제 해결이 우선되어야 하고, 민법 제2조에 따른 소멸시효 남용 법리의 적용 범위는 민법 제166조 제1항의 적용 범위와의 상관관계 속에서 종속적으로 획정되어야 한다. 그 결과 제2유형은 권리행사의 기대가능성 자체를 원천적으로 부정할 정도의 객관적 장애사유는 아니나 다른 특별한 사정과 결합하여 권리남용으로 평가될 수 있는 정도의 객관적 장애사유에 적용되는 한정적 의미를 가진다고 보아야 한다. <br/> 3) 별개의견에 대한 다른 의문점<br/> 가) 이 사건이 시효완성 후 채무자가 시효이익을 원용하지 아니할 것 같은 신뢰를 부여한 경우(제3유형)인지 여부<br/> 별개의견은 피고가 과거사정리법, 구 광주민주화보상법 등의 제정, 진상규명과 보상조치 등을 통해 관련자의 가족인 원고들에게도 시효이익을 원용하지 아니할 것 같은 신뢰를 부여했다고 주장한다(이른바 제3유형). 이러한 논리는 2013년 전원합의체 판결이 제시한 법리에 근거하고 있다. 당시 대법원은 과거사정리법의 제정 목적이 개별 피해자의 피해 경위를 밝히고 금전적 피해회복의 근거를 마련하는 데 있다는 점에 주목하였다. 한편 이처럼 국가가 법 제정을 통해 피해회복을 선언한 것은 향후 소송에서 새삼 시효를 주장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내포한 것이며, 상당한 기간 내 권리를 행사한 망인의 유족에게 국가가 시효 주장을 하는 것은 권리남용이라는 논리를 제시하였다. 이러한 논리는 ‘국가가 시효완성 후 손해배상을 약속하였는데 손해배상은 하지 않은 채 오히려 이와 모순되는 시효 주장을 하는 상황’을 전제로 한다. <br/> 그런데 이 사건에서도 2013년 전원합의체 판결 사건(이하 ‘대상 사건’이라 한다)이 놓인 위와 같은 상황이 존재하는지는 의문스럽다. 대상 사건에서는 과거사정리법에 따른 진실규명결정만 있었을 뿐 금전적 피해회복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였지만, 이 사건에서는 구 광주민주화보상법에 따라 피해회복 대상자에 대한 피해회복이 이루어진 상태였다. 대상 사건에서는 그 사건 원고들(망인의 유족)의 피해가 과거사정리법에 따른 진실규명결정과 금전적 피해회복 대상이었지만, 이 사건에서는 관련자 본인이나 유족(재산상속인)이 아닌 관련자 가족은 당초 구 광주민주화보상법의 적용 대상이 아니었고, 그들의 피해는 국가배상법에 따라 배상될 수 있었을 뿐 구 광주민주화보상법에 따른 금전적 피해회복 대상이 아니었다. 피고가 그 이후「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을 제정하면서 ‘피해자’에 관련자 가족까지 포함시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진상규명 범위에 주로 초점이 맞추어진 조치이고, 이로써 구 광주민주화보상법에 따른 금전적 피해회복 대상이 아니었던 관련자 가족의 피해가 그 법에 따른 금전적 피해회복 대상으로 새롭게 편입되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br/> 앞서 보았듯이 제3유형은 마치 채무승인 후 시효를 주장하는 것과 같은 모순적 행태에 초점을 맞춘 유형이다. 이는 채무승인 후 시효 주장을 일률적으로 신의칙 위반이라고 보아 온 일본에서 많이 활용되어 온 유형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러한 행태가 신의칙 위반 또는 권리남용에 해당하는지는 개별 사건의 구체적 사정을 세밀하게 따져 판단할 문제이다(대법원 2025. 7. 24. 선고 2023다240299 전원합의체 판결의 다수의견에 대한 보충의견 참조). 이 사건에서는 피고가 구 광주민주화보상법을 제정하고 후속 조치를 취하였다. 즉 피고는 이러한 법 제정 등을 통하여 그 법에 따른 채무를 승인하고 나아가 그 채무를 이행하였다. 한편 이 사건의 쟁점 청구권은 법의 적용 범위 바깥에 있었다. 따라서 피고가 위 법 제정 등을 통하여 쟁점 청구권에 관한 채무를 승인하였다거나, 쟁점 청구권에 대한 시효 원용을 하지 않을 것 같은 신뢰를 부여하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피고가 위헌적 요소가 담긴 불명확한 법령을 제정하여 결과적으로 쟁점 청구권에 관한 원고들의 권리행사를 저해한 것은 사실이나, 이를 두고 피고가 쟁점 청구권에 관해 시효를 원용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표명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이 사건이 제3유형에 속한다고 선뜻 말하기 어려운 이유이다. <br/> 나) 이 사건이 채권자 보호의 필요성이 크고, 같은 조건의 다른 채권자들이 채무의 변제를 수령하는 등의 사정이 있어 채무이행의 거절을 인정함이 현저히 부당하거나 불공평한 경우(제4유형)인지 여부<br/> 별개의견은 다른 과거사 사건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과 비교할 때 이 사건에서 관련자의 가족에 대하여만 피고가 채무이행을 거절하는 것은 현저히 부당하고 불공평하다고 주장한다(제4유형). 제4유형은 제1유형부터 제3유형 어디에도 속하지 않으나 정의관념에 비추어 채무자의 소멸시효 주장을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잔여 사건들을 포괄하기 위해 마련된 보충적 범주이다. 제4유형이 상정하는 구체적 사안 유형이 무엇인지 명확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를 독자적 근거로 삼아 소멸시효 남용을 인정한 판례도 찾아보기 어렵다. 다만 제4유형은 ‘채권자의 보호 필요성’과 ‘같은 조건의 다른 채권자들과의 차별적 취급’이라는 구체적 사정을 바탕으로, 궁극적으로는 ‘현저한 부당성과 불공평성’을 그 판단의 척도로 제시한다. <br/> 그런데 이 사건에서 ‘같은 조건의 다른 채권자들과의 차별적 취급’이 존재하는지는 불명확하다. 이 사건에서 비교 대상이 되는 ‘같은 조건의 다른 채권자들’은 ① 과거사 사건의 관련자 본인이나 그 유족(재산상속인)이 아니면서, ② 해당 사건으로 인해 발생한 정신적 고통에 대하여 독자적으로 고유한 위자료 청구권을 가지게 된 관련자의 가족으로서, ③ 그 위자료 청구권의 발생 시점으로부터 소멸시효 기간이 이미 경과한 채권자들이다. 이러한 채권자들이 그동안 배상을 받아왔는데도 이 사건 관련자의 가족에 대한 배상만 거절된다면 소멸시효 남용에 해당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사건에서 이러한 사정은 발견되지 않는다. <br/> 별개의견은 진실규명결정이나 재심무죄판결 등 ‘시효 기산점의 새로운 단초가 없는’ 많은 피해자들에 대한 근본적 구제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전제 아래, 이들이 다른 과거사 사건 피해자들과 달리 배상받지 못하는 것은 현저히 부당하고 불공평하다고 한다. 참고로 다수의견은 진실규명결정 등 특정한 유형의 단초가 있어야 권리행사 기대가능성 법리가 적용될 수 있다는 입장이 아니므로 ‘시효 기산점의 새로운 단초’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구제 가능성을 부정하지 않음을 우선 언급해 둔다. 한편 별개의견의 주장은 결국 소멸시효가 완성된 모든 과거사 사건 피해자들을 동일하게 구제하지 않는 것은 현저히 부당하고 불공평하다는 주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 과거사 사건 피해자는 넓은 스펙트럼에 걸쳐 존재하고, 그들의 지위와 상황, 과거사 사건과의 관련성, 권리행사 가능성을 둘러싼 사정도 다양하다. 그중에는 수많은 과거사 사건 관련 특별법에 따른 금전적 피해회복 대상자도 있고, 일반적인 손해배상 법리에 따라 피해를 회복할 수 있는 대상자도 있다. 그런데 이들을 모두 하나의 범주로 묶은 뒤 신의칙의 이름 아래 ‘모두가 마땅히 총체적으로 구제되어야 한다.’는 별개의견의 시도는 정책적 당위만을 앞세운 것이 아닌가 우려된다. 별개의견은 시효 기산점의 새로운 단초가 없는 삼청교육 사건에 관한 최근 국가배상 사례를 들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별개의견 스스로 밝히듯이 소멸시효 남용 법리가 적용된 것이 아니라 소 제기 당시까지 소멸시효가 완성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피해자를 구제한 사례이다. 이 사례의 존재는 별개의견이 아닌 다수의견의 입장을 보강할 뿐이다.<br/> 다) ‘상당한 기간 법리’ 폐기론의 당부<br/> 별개의견은 앞서 본 여러 근거를 바탕으로 소멸시효 남용 법리를 적용하되, 권리행사 기간을 원칙적으로 6개월의 단기간으로 제한하는 기존의 ‘상당한 기간 법리’는 타당하지 않으므로 폐기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별개의견은 채권자의 권리행사 기간은 객관적 권리행사 장애사유가 소멸하는 등의 시점으로부터 원래의 권리행사 기간인 3년이 온전히 보장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결과적으로 별개의견은 다수의견이 취하는 기산점 조정 방식과 동일한 결론에 이른다. 그런데 이미 살펴보았듯이, 이처럼 동일한 결론에 도달하기 위해 소멸시효 남용 법리를 무리하게 확장하고 ‘상당한 기간 법리’ 판례를 폐기하는 복잡한 우회로를 택할 이유가 없다. <br/> ‘상당한 기간 법리’의 폐기 여부에 관해서도 보다 신중한 논의가 필요하다. 그동안 이 법리에 대해 별개의견과 같은 취지의 비판이 제기되어 온 것은 사실이다. 특히 이 법리가 개별 사안별로 세밀하게 작동해야 마땅한 신의칙에 기초하면서도 6개월이라는 특정 기간을 원칙적 기준으로 제시하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을 수 있다. 다만 이 법리는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 그 기간을 이론적으로 수용 가능한 최상한선인 3년까지 연장할 수 있다고 밝힘으로써 법원에 ‘상당한 기간’에 대한 판단 재량을 부여하고 있다. 실제로 이 법리의 선언 후에도 2년 또는 3년 가까이 지난 뒤에 권리가 행사된 경우 ‘상당한 기간’ 내에 권리가 행사된 것으로 보아 피해자를 구제한 사례들이 다수 존재한다(대법원 2013. 7. 11. 선고 2012다204747 판결, 대법원 2015. 9. 10. 선고 2013다73957 판결 등). 그렇다면 이 법리의 폐기를 논하기 전에 그 전향적 적용을 통해 구체적 타당성을 확보하는 길을 모색하는 것이 순서이다. 또한 소멸시효가 완성되기 전 그 완성을 단기간 유예하는 시효정지 제도와 비교해 보면, 이를 넘어 소멸시효가 완성된 이후 예외적으로만 인정되는 소멸시효 남용에 완성유예에 준하는 권리행사 기간을 부여하는 것이 꼭 부당하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참고로 소멸시효 남용 법리가 존재하는 독일의 경우 권리행사의 ‘상당한 기간’은 일반적으로 1개월, 길어도 3개월을 넘지 않는 기간으로 이해되고 있다. <br/> 이상의 이유로 이 법리가 당장 폐기될 것이 아니라면, 3년의 권리행사 기간을 온전히 보장하는 다수의견이 별개의견보다 피해자 구제를 더욱 강화하는 방안이다.<br/> 라) 과거사 사건 피해자에 대한 총체적 구제<br/> 별개의견은 소멸시효 남용 법리를 통해 과거사 사건 피해자에 대한 총체적이고 차별 없는 구제가 가능해진다고 한다. 이는 별개의견의 가장 중요한 모티브이자 지향점인 것으로 보인다. 별개의견이 지향하는 정책적 당위에는 동감하는 바가 있으나 그 법적 방법론에는 동의할 수 없다. 이러한 총체적 구제의 요청은 그동안 이루어진 수많은 과거사 사건 관련 입법에 의해 실현되어 왔다. 만약 입법자의 결정에 따라 그 규율 범위 바깥에서 일반적인 손해배상 법리의 규율을 받게 된 피해자들도 이러한 총체적 구제의 틀로 추가 편입시키고자 한다면, 그 원칙적인 방법 역시 입법이어야 한다. 별개의견은 이러한 입법적 과제를 사법적 과제로 치환한 뒤 그 도구로 신의칙을 동원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은 개별 사건의 구체적 타당성을 미세한 조정의 방식으로 추구하는 신의칙의 속성과 부합하지 않고 ‘일반조항으로의 도피’로 평가될 위험성도 높다. 더욱이 대법원이 향후 개별 재판부에 의하여 처리될 과거사 사건의 결론을 사실상 미리 총체적으로 정해 두는 듯한 인상을 주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물론 이러한 접근으로 당장은 만족스러워 보이는 결론을 도출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사례들이 축적되면 장기적으로는 사법부가 일반조항의 힘을 빌려 입법의 영역에 시나브로 침투하는 환경이 조성될 수 있다.<br/> 이 사건에 관하여 개진된 관여 법관의 모든 의견은 현행법을 존중하는 가운데 이러한 목표에 최대한 도달하기 위한 치열한 고민의 산물이다. 이러한 견해들은 서로 완전히 배타적인 관계에 있지도 않다. 향후 해결할 과거사 사건 중에는 엄격한 의미의 법률상 장애론으로 해결될 사안도 있고, 소멸시효 기산점 조정으로 해결될 사안도 있으며, 소멸시효 남용 법리로 비로소 해결될 사안도 있다. 다수의견에 따른다고 향후 소멸시효 남용 법리에 따른 구제의 길이 봉쇄되는 것도 아니다. 거듭 강조하거니와 과거사 사건 피해자에 대한 충실한 구제는 반드시 필요하고, 그러한 구제는 개별 사건의 경계를 넘어 총체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하지만 이러한 정책적 목표를 궁극적으로 완수하는 것은 현행법에 구애받지 않고 보편적인 규범을 창설하는 입법부의 몫이지 현행법에 따라 개별 사건을 하나씩 재판해야 할 숙명을 짊어진 사법부의 몫이 아니다. <br/> 이상과 같은 이유로 다수의견을 보충한다. <br/> 7. 대법관 오경미의 별개의견에 대한 보충의견 <br/> 가. 소수자 보호라는 법관의 헌법적 책무와 합헌적 법률 해석 <br/> 1) 법원의 사명은 국민의 기본권 보장, 소수자와 약자의 보호에 있고, 이는 개별 법관의 구체적 재판작용으로 구현된다. 자유·평등·정의의 이념과 그 바탕에 놓인 인간 존엄이라는 헌법정신은 구체적 사건에서 법관이 제시하는 법 해석을 통해 현실 사회에 규범력을 발휘하게 된다. 따라서 법관이 부여받은 헌법적 책무는, 이해관계인들 사이에 일어나는 의견 대립 속에서 법률 해석 작업으로 보편타당한 해결책을 제시하여 헌법정신을 생명력을 가진 규범으로 살려내는 일이다. 합헌적 법률 해석은 법관의 이러한 헌법적 책무의 수행에 핵심적 기능을 한다.<br/> 2) 합헌적 법률 해석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구체적 사건에서 당사자들이 안고 오는 다양한 사연 속에 그 단초가 있다. 권리의 구제를 호소하는 그 사연은 때로 헌법적 의미를 갖는 역사적 과제와 연결되기도 한다. 이 과제를 풀어가는 데서 발휘되는 법관의 합헌적 법률 해석 작업은 그릇을 빚어내는 일에 비유될 수 있다. 구제하여야 하는 권리가 존재하는가. 무엇이 권리 실현의 장애를 야기하는가. 법관이 당사자가 펼치는 증거의 숲을 헤치고 들어가 실체적 진실을 탐구하고, 가지치기를 거쳐 법률이 정한 요건사실의 뼈대를 드러내는 것은 그 시작에 불과하다. 그 참된 역량은 사연이 던지는 질문의 헌법적 핵심을 세심하게 발굴하고 사회적·역사적 맥락이 요구하는 가치의 방향성을 감지해 내는 데에 있다. 가치의 방향 속에 담긴 헌법정신이 살아나도록 적절한 유연성을 가지고, 당사자가 던지는 문제의식의 본질을 제대로 담을 수 있는 크기와 모양을 갖춘 그릇을 빚어내듯 법리가 모색되어야 한다. 간혹 유연성의 한계로 말미암아 기존 그릇으로는 문제의식의 본질이 훼손되고 배제될 때에는 기존 그릇을 깨뜨리고 새로운 그릇을 내놓는 용기도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소송법적 방법론의 결과물인 요건사실의 단순함 속에 매몰되어 근본적 질문을 잊어서는 안 된다. 법률과 선례의 외형적 뼈대만으로 형식논리의 성을 쌓는 오류 또한 경계하여야 한다. 법리와 법리의 이어짐에 논리적 정합성이 있다고 하여 진실과 정의가 담보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를 담보하는 최종적인 열쇠는 법관이 당사자가 제기한 문제의식을 헌법적 관점에서 올바로 견지할 때 주어진다. 이때 비로소 제도적 질서에서 누락된 이야기들이 새롭게 재해석된 헌법적 가치로 살아나, 법관이 궁구한 법리의 그릇에 진실과 정의의 내용물로 담길 수 있게 된다.<br/> 나. 합헌적 법률 해석의 다양한 양상과 법관의 양심<br/> 1) 법관이 합헌적 법률 해석을 통하여 당사자의 사연과 문제의식에 헌법정신의 생명력을 불어넣는 과정은, 개별성과 구체성을 통해서만 보편성에 이르게 된다는 점에서 마치 작가가 주인공들의 이야기 속에 펼쳐지는 갈등과 모순을 붙잡고 문학적 탐구를 거쳐 숨겨진 인간성의 본질과 진실을 드러내어 소생시키는 일과 흡사하다. 이는 구체적 법정에서 권리 실현을 주장하는 당사자들 중 법원이 보호해야 하는 현대의 소수자는 누구이고 약자는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에서 시작된다. 다수자가 형성한 사회 제도에서 배제된 사람들인 소수자와 약자만이, 질서가 누락시키는 것 속에서 살아가는 삶을 통해 질서 이면의 그늘에 대하여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누락된 진실을 법정에서 자유롭게 말할 수 있도록 재판 제도가 존재한다. 이를 경청하고 그 실체를 드러내 그들의 침해된 기본권을 회복시키는 것을 헌법적 책무로 부여받은 사람이 법관이다. <br/> 2) 변화가 빠르고 복잡한 현대사회에서 소수자와 약자의 얼굴은 더 이상 전형적인 소외의 표지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 관계의 상대성으로 말미암아 기본권의 침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갑에 대해서는 소수자이지만 을에 대해서는 다수자인 경우도 존재한다. 따라서 법관으로서는 사회의 변화에 따른 권리 제한의 양상을 세밀하게 탐색하여 다양한 양태로 합헌적 법률 해석을 전개할 필요가 있다. 대법원 선례 몇을 예로 들어 본다. <br/> 의료법에 따른 의료인 집단은 일반적으로 소수자라고 할 수 없지만, 이를 구성하는 내부 집단인 의사·치과의사·한의사·조산사·간호사 사이에는 업무영역 설정에서 다양한 구별과 차별이 존재한다. 이들 전문가 집단 사이에 면허의 경계를 둘러싼 갈등이 발생하였을 때 상대적으로 소수자성이 형성되는 영역을 세심하게 포착하여 공익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이를 시정할 필요가 있다. 대법원이, 치과의사가 보톡스 시술법을 이용하여 환자의 눈가와 미간의 주름 치료를 한 행위, 한의사가 초음파 진단기기를 사용하여 환자의 신체 내부를 촬영한 것을 한의학적 진단의 보조수단으로 사용하는 행위에 대하여 각각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이나(대법원 2016. 7. 21. 선고 2013도850 전원합의체 판결, 대법원 2022. 12. 22. 선고 2016도21314 전원합의체 판결), 종합병원의 간호사가 의사의 일반적인 지도·감독 아래 진료의 보조행위로서 골수 검체 채취를 할 수 있다고 한 것(대법원 2024. 12. 12. 선고 2023도10286 판결)은, 의료인들 사이에 존재하는 불합리한 영역 제한에서 소수자성이 발생함에 주목하여 국민보건이라는 공익을 고려하면서도 상대적 소수자성을 지닌 집단의 권리를 확장한 사례이다. <br/> 노동법의 영역에서도 유사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일례로 사회의 다변화로 전통적인 근로자의 모습과 자영업자의 모습을 모두 가지고 있는 특수한 형태의 근로자들이 등장함에 따라, 이들에게 근로기준법,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이하 ‘산재보험법’이라 한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이 적용되는지 다투는 사안이 다수 발생하였다. 이는 이들에게 퇴직금, 부당해고로부터의 보호, 업무상 재해에 따른 요양급여나 유족급여 등에 관한 권리를 부여하여 보호할 것인가의 문제이기도 하다. ‘퀵서비스’ 업무에 종사하는 배달원(대법원 2004. 3. 26. 선고 2003두13939 판결), 대학교의 시간강사(대법원 2007. 3. 29. 선고 2005두13018, 13025 판결), 정수기 설치·AS 엔지니어(대법원 2021. 11. 11. 선고 2019다221352 판결), ‘타다 서비스’를 제공한 프리랜서 드라이버(대법원 2024. 7. 25. 선고 2024두32973 판결)에 대한 사건에서, 대법원은 이들의 구체적 근로 형태에서 나타나는 사용종속성의 실질을 살피는 한편 근로자 보호라는 헌법적 요청에 주목하여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성을 인정하였다. 나아가 전형적인 근로계약이 아닌 위탁사업계약을 체결하고 노무를 제공하여 온 학습지교사에 대하여「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상 근로자성을 인정하여 위탁사업계약 해지에 따른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을 할 수 있다고 하였고(대법원 2018. 6. 15. 선고 2014두12598, 12604 판결), 방송연기자(대법원 2018. 10. 12. 선고 2015두38092 판결), 대리운전 기사(대법원 2024. 9. 27. 선고 2020다267491 판결)의 경우에도 같은 판단을 하였다. 이는 노무제공관계의 실질에 비추어 헌법상 노동3권을 보장할 필요성이 있는지의 관점에서 쟁점에 접근한 합헌적 법률 해석의 한 모습이다. 그 외 계약법 영역의 사례로서, 사망을 보험사고로 하는 보험계약에서 자살면책약관을 해석·적용할 때, 주요우울장애로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러 자살하였다고 인정되는 예외 범위를 확장한 선례들(대법원 2021. 2. 4. 선고 2017다281367 판결, 대법원 2023. 5. 18. 선고 2022다238800 판결, 대법원 2024. 5. 9. 선고 2021다297529 판결)이 있다. 위 대법원 2021다297529 판결의 사안처럼, 어린 두 자녀를 둔 어느 여성 근로자가 폭증한 업무량을 연일 연장근무로 감당하면서 업무 스트레스로 우울감과 수면장애 등을 겪던 와중에 예정된 육아휴직이 연거푸 연기되자 자정 무렵 퇴근하여 막바로 자살에 이르렀다면, 이를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상태에서 벌어진 일이라고 볼 것인가. 주요우울장애에 관한 의학적 견해가 증거로 제출된 경우와 이 사안처럼 여성 근로자가 생전에 주요우울장애 진단을 받았거나 관련된 치료를 받은 사정이 없었던 경우에는 어떤 차이를 둘 것인가. 주요우울장애로 자살에 이른 사람이 늘어나는 사회 현상 속에서 이러한 질문에 대한 응답으로, 위 선례들은 사회 안전망 역할을 하는 보험의 약관 해석에 사회적 약자의 보호라는 헌법적 맥락을 보탠 것이다. <br/> 한편 대법원 2020. 4. 29. 선고 2016두41071 판결은 법령의 내용이 모호하거나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사안에서 합헌적 해석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다. 이 사안에서 임신한 여성 근로자인 원고들이 업무상 재해를 입어 태아의 건강에 이상이 발생하였는데, 이후 선천성 심장질환을 갖는 자녀를 출산하게 되자 근로복지공단에 자녀에 대한 요양급여를 신청하였다. 근로복지공단은 ‘업무상 재해’는 ‘근로자 본인’의 질병 등만을 의미하며 그 자녀는 근로자로 볼 수 없다는 이유로 위 신청을 거절하였다. 이는 민법 제3조에 따라 태아는 원칙적으로 권리능력이 없고, 산재보험법에서 태아에 관하여 별도의 규정을 두고 있지 않은 점에서 비롯된 산재보험법상 ‘업무상 재해’의 해석 문제이다. 원심법원은 자녀의 선천성 질병은 자녀의 질병일 뿐 그들을 출산한 여성 근로자 본인의 질병이 아니므로 이를 원고들의 업무상 재해로 볼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대법원은 법원의 재판에서 합헌적 법률 해석이 갖는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다음과 같이 판시하여 자녀의 선천성 질병에 대하여 여성근로자의 요양급여 수급권을 인정하였다. <br/> "여성 근로자의 임신 중에는 태아가 모체와 일체를 이루고 있다고 보아 태아의 건강손상에 관하여 여성 근로자에게 요양급여 수급권을 인정하다가 여성 근로자의 출산 이후에는 모체와 분리되었다는 이유로 갑자기 그 출산아의 선천성 건강손상에 관하여 수급권을 부정하는 것은, ‘근로자의 업무상 재해를 신속하고 공정하게 보상하여 근로자 보호에 이바지’한다는 우리 산재보험법의 입법 목적에도 위배된 것일 뿐만 아니라 헌법 제34조 제2항, 제6항에 의한 생존권적 기본권을 제대로 보장하지 못하고 헌법 제32조 제4항에 의한 여자의 근로에 대한 특별한 보호와 차별금지, 헌법 제36조 제2항에 의한 모성 보호의무를 제대로 구현하지 못하는 해석이다. 업무에 기인한 사정으로 임신한 여성 근로자와 한 몸인 태아의 건강이 손상되는 상황이 발생하였다면 그로써 이미 산재보험법상 업무상 재해가 있었다고 평가함이 정당하다. 그런데 재해를 입은 생명이 태어났다고 하여 ‘업무상 재해의 발생’이라는 종전의 정당한 평가를 거두어야 하는가? 요양급여 수급권자는 근로자이어야 한다는 산재보험법의 규정이 이미 정당하게 평가된 ‘근로자인 원고들에게 발생한 업무상 재해’라는 본질을 무력화할 정도의 의미와 가치를 지닌다고도 볼 수 있는가? 그렇게 볼 수 없다." <br/> 3) 앞서 합헌적 법률 해석의 단초는 당사자들이 법정으로 안고 오는 사연 속에 있다고 하였다.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의 다양하고 곡절 많은 사연들 속에 깃든 헌법적 가치의 핵심을 발견하고 권리구제의 길을 열기 위해서 법관 개인에게 요구되는 것은 무엇인가. 법관도 여느 사람과 마찬가지로 가치관과 경험치의 한계를 갖지만, 그러한 한계에 안주하여서는 안 된다. 법관은 한 개인으로서 전 인생을 통하여 체득한 경험과 지혜의 소산을 총동원해야 한다. 우리 사회의 소수자와 약자가 누구인지에 대한 관심과 고민 없이는 사회의 다변화로 재구성되는 관계의 역학 속에서 보편적 규범의 새로운 의미를 생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합헌적 법률 해석을 통해 법관이 규범과 질서의 재창조를 지향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법관 개인의 고유한 존엄과 경험에서 유래하는 인격과 개성에서 시작될 수밖에 없다. 그것은 동시에 모순을 극복하고 더 나은 단계로 나아가고자 하는 집단 지성으로서 인간 본성에 잇닿아 있는 신비를 이루고 있기도 하다. <br/> 이 지점에서 ‘법관의 양심’에 대하여 생각하게 된다. 헌법 제103조에서는 법관에게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할 것을 명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법관의 양심’은 법관 개인의 고유한 존엄과 경험에서 유래하는 인격과 개성을 바탕으로 법의 정신을 탐구하는 소명의식이라고 본다. ‘법관의 양심’을 통한 탐구의 결과로 사회현상 속에 작동하는 ‘규범의 균형추’가 옮겨지게 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합헌적 법률 해석의 과정은 재판작용에서 ‘법관의 양심’이 작동하는 본령이자 법관이 개인으로서 담지하는 인간 존엄성의 발현이기도 하다. 위 조항이 말하는 ‘법관의 독립’ 또한 헌법정신의 수호자이자 탐색자로서 법관의 양심이 발현될 수 있도록 하는 수단의 의미를 갖는 것이지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다. 합헌적 법률 해석을 바탕으로 한 헌법정신의 탐색과 수호를 위한 법관의 노력이 없다면, ‘법관의 독립’은 내용물 없는 공허한 껍질에 불과한 것이 될 수 있다. 그 결과 구체적 재판작용은 헌법정신의 역동적 재창조 과정에서 유리되고 말 것이다. 개개인의 법관이 ‘법관의 양심’을 통해 생산한 의미를 재료로 삼아, 선례의 축적과 연결을 넘어 선례의 창조적 변형과 파괴로까지 나아갈 수 있다면, 가장 인간적인 미래의 질서와 규범의 재창조에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역동적인 재창조 과정은 언제나 현실 안주를 허용하지 않고 모순의 감지 능력과 거듭된 갱신을 요구한다. ‘법관의 양심’을 통한 재판작용이라는 것이 ‘인공지능’의 답변과 같은 기계적 환원물로 대체될 수 없는 영역이라고 굳게 믿는 이유이다. <br/> 다. 합헌적 법률 해석의 연장으로서 위헌법률심판제청권의 행사 <br/> 1) 법령의 근본적 한계로 말미암아 법관의 합헌적 법률 해석을 통한 구체적 규범통제만으로는 본래적 위헌성을 소거할 수 없을 때가 있다. 이 경우 법관은 현행 성문법 체계에 안주하여서는 안 된다. 이를 위하여 헌법은 법원에 추상적 규범통제와 관련된 권한을 부여하였다. 헌법 제107조의 "법률이 헌법에 위반되는 여부가 재판의 전제가 된 경우에는 법원은 헌법재판소에 제청하여 그 심판에 의하여 재판한다(제1항). 명령·규칙 또는 처분이 헌법이나 법률에 위반되는 여부가 재판의 전제가 된 경우에는 대법원은 이를 최종적으로 심사할 권한을 가진다(제2항)."라는 규정이 그것이다. 이에 따라 법원은 합헌적 법률 해석의 한계를 넘어서는 위헌성의 영역에서는 또 다른 기본권 보장기관으로서 법률에 대한 규범통제 역할을 맡고 있는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심판제청을 하여야 한다. 법원으로 하여금 헌법재판소와의 협업을 통하여 기본권 보장기관으로서 헌법수호의 책무를 수행하도록 한 것은 헌법의 명령이기도 하다. <br/> 2) 위헌법률심판제청권의 행사를 통해 법관의 헌법수호 책무가 수행되는 양상을 사례로써 살펴본다. 형법상 절도, 절도미수, 상습절도죄를 가중처벌하는 조항에 관한 당사자의 위헌법률심판제청신청에 대하여 담당 법관이 취한 상반된 태도가 하나의 사례가 될 수 있다. 구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2016. 1. 6. 법률 제13717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중 형법상 절도, 절도미수죄의 가중처벌 조항인 제5조의4 제1항에 대하여, 헌법재판소 2015. 2. 26. 선고 2014헌가16 등 전원재판부 결정은, 형법상의 범죄와 똑같은 구성요건을 규정하면서 법정형만 상향 조정한 부분이 형벌체계상의 정당성과 균형을 잃어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를 보장하는 헌법의 기본원리에 위배된다는 등의 이유로 위헌선언을 하여 지나치게 가혹한 형벌의 대상이 된 사람들을 구제하였다. 여기에는 당사자의 신청을 받아들여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심판제청을 한 담당 법관의 헌법적 고민과 용기도 크게 기여하였다. 위헌법률심판에 관한 법원과 헌법재판소의 역할이 서로 잘 맞물려 기본권 보장기관의 기능이 조화롭게 수행된 사례이다. 이와 달리 구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2016. 1. 6. 법률 제13717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5조의4 제6항의 가중처벌조항에 대하여, 법원은 당사자의 위헌법률심판제청신청을 기각하였음에도, 헌법재판소는 당사자의 위헌소원심판청구를 받아들여 비록 당사자의 주장과 다른 이유이기는 하나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 원칙 위반을 이유로 위헌을 선언하기도 하였다(헌법재판소 2015. 11. 26. 선고 2013헌바343 전원재판부 결정). 두 사례를 보면서 유사한 사건에서 절도죄 등 가중처벌의 적정성과 합리성에 관한 담당 법관의 헌법적 고민이 가져오는 결과의 차이를 엿볼 수 있다. <br/> 3) 과거사 사건에서는 이러한 차이가 더 크게 두드러진다. 앞서 보았듯 2013년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 과거사 사건의 민사상 구제에서 법률상 어려움이 발생한 지점은 장기소멸시효 문제와 화해간주조항 문제였다. 이 두 개의 문제에서 법원은 권리구제의 길을 스스로 열지 못하였다. 장기소멸시효 문제는 별개의견에서 짚어 본 바와 같다. 화해간주조항 문제에서 대법원 2014. 3. 13. 선고 2012다45603 판결은 구 민주화보상법상 보상금을 받은 경우 재판상 화해의 의제 범위에 위자료도 포함된다고 하여 소를 각하하였다. 대법원 2015. 1. 22. 선고 2012다204365 전원합의체 판결에서는 민주화운동과 관련하여 수사기관에 불법체포·구금된 후 고문 등에 의한 자백으로 유죄판결을 받고 복역한 피해자가 구 민주화보상법상의 보상금 등 지급결정에 동의하면 재판상 화해와 동일한 효력이 발생하므로 나중에 재심절차에서 무죄판결이 확정되더라도 여전히 권리보호의 이익이 없다고 하였다. 이어진 아람회 사건(피해자들이 5·18민주화운동의 진실을 알리는 등의 활동을 전개하다가 1981. 7.경 수사관들에게 강제연행되어 국가보안법 위반죄 등으로 형을 선고받은 사건)에서도 대법원 2015. 2. 26. 선고 2012다203089 판결은 이 법리를 구 광주민주화보상법상 보상금 등을 받은 피해자들에게 동일하게 적용하였다. 사실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권리구제를 위한 법관들의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위 대법원 2012다204365 전원합의체 판결의 제2심법원(서울고등법원 2012. 11. 29. 선고 2012나39181 판결)이나 위 대법원 2012다203089 판결의 제2심법원(서울고등법원 2012. 10. 18. 선고 2012나30948 판결)에서는 화해의 효력이 위자료 청구나 1980년 5·18민주화운동과 시간적 간격이 있는 아람회 사건의 피해에는 미치지 않는다고 판단하는 등 권리구제를 위한 시도가 있었으나, 결국 그 상고심에 의해 무위로 돌아가게 되었다. <br/> 결국 이 문제의 상당 부분을 해결한 것은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이었다. 장기소멸시효 문제에 관한 2018년 헌법재판소 2014헌바148 결정과 함께 구 민주화보상법 제18조 제2항 중 위자료에 관한 부분을 위헌으로 판단한 헌법재판소 2018. 8. 30. 선고 2014헌바180 등 전원재판부 결정이 바로 그것이다. 이어 구 광주민주화보상법상 이 사건 화해간주조항에 관하여 2021년 이 사건 위헌결정이 나왔다. 과거사 사건 피해자들의 권리구제에 큰 전환점을 이룬 이들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이 나오게 된 데에는 과거사 사건 담당 법관의 적극적인 위헌법률심판제청권 행사도 큰 기여를 하였다. 이 사건 위헌결정은, 5·18민주화운동 관련자들이 제기한 국가배상청구 소송 제1심에서 당사자들이 이 사건 화해간주조항에 관하여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신청하자 법원이 2019년에 이를 받아들여 위헌법률심판제청을 함으로써 그 결실을 이룬 사안이다. 구 민주화보상법 제18조 제2항에 대한 위 헌법재판소 2014헌바180 등 결정의 배경에도 위헌법률심판제청을 한 국가배상청구 소송 담당 법관들이 다수 존재한다. 이와 반대로 장기소멸시효 문제에서 법원은 당사자들의 민법 제166조 제1항, 제766조 제2항 등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제청신청을 연거푸 기각하였다. 장기소멸시효의 문제에 관한 2018년 헌법재판소 2014헌바148 결정은 모두 국가배상청구 소송에서 위 각 조항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제청신청을 하였다가 법원으로부터 구제를 거절당한 당사자들이 위헌소원으로 헌법재판소의 문을 두드린 결과물이다. <br/> 4) 사실 장기든 단기든 소멸시효 문제나 화해간주조항 문제는, 보기에 따라서는 법원이 헌법재판소의 위 위헌결정들이 나오기 전에 합헌적 법률 해석을 통해 구제의 길을 모색할 수도 있는 영역이었다. 위 문제 영역이 법령의 근본적 한계로 말미암아 법관의 합헌적 법률 해석만으로는 본래적 위헌성을 소거할 수 없는 영역인지는 단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소멸시효의 문제는 권리남용 이론 등의 해결책이 있었고, 화해간주조항 문제도 각 법률상 보상금 수령에 따른 화해간주의 효력이 위자료 채권에는 미치지 않는다는 결론에 이르는 것이 충분히 가능한 법 해석의 영역에 있었다(위 대법원 2012다204365 전원합의체 판결의 제2심법원인 서울고등법원 2012. 11. 29. 선고 2012나39181 판결 참조). 반대의견에서 언급하고 있는 대법원 2014. 12. 24. 선고 2013다214598, 214604 판결의 제2심법원인 서울고등법원 2013. 9. 27. 선고 2012나57509 판결을 보더라도 그러하다. 이 사건은 유신시대 끝 무렵인 1979. 8. 11. 망 소외 9 등 ‘△△△노동조합 □□무역지부 노동조합’ 소속 노동자들의 농성에 경찰관들이 불법적으로 개입하여 폭력적으로 강제진압하는 과정에서 망 소외 9가 경찰관들의 폭행으로 건물에서 추락하여 사망하고, 그 후 농성 참여자들에 대한 블랙리스트를 작성하여 장기간 정상적 취업활동을 방해한 사안에 대한 것이다. 피해자들은 과거사위원회로부터 진실규명결정을 받은 후 국가배상청구의 소를 제기하였다. 위 사건에서도 국가의 본안전항변으로 망 소외 9의 상속인이 청구한 망인의 위자료(상속분)와 상속인 고유의 위자료 청구 부분에 대하여 화해간주조항 문제가 제기되었다. 위 서울고등법원 판결은 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위자료 청구 전부에 대하여 화해의 효력이 미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다. 위 판결의 논증은 구 민주화보상법 제18조 제2항 중 위자료에 관한 부분을 위헌으로 판단한 헌법재판소 2018. 8. 30. 선고 2014헌바180 등 전원재판부 결정의 핵심 부분과 맥을 같이하는 것으로서, 합헌적 법률 해석의 전형적 모습을 보여 준다. <br/> "민주화보상법상의 보상금 등은 민주화운동 관련자가 입은 손해 중 소극적 손해와 적극적 손해에 대응할 뿐 정신적 손해와는 무관한 것으로 보이고, 달리 민주화보상심의위원회가 민주화운동 관련자의 정신적 피해를 고려하여 보상금액을 결정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다. 아울러 민주화보상심의위원회가 원고 ○○○의 신청에 따라 위 각 보상금액을 결정하면서 망 소외 9와 원고 ○○○의 정신적 피해도 고려하였다고 볼 만한 사정도 없다. 또한 실제 보상을 함에 있어서도 당사자들이 고려하지 않았던 정신적 손해 부분까지도 민주화보상법 제18조 제2항에 정한 재판상 화해의 효력이 미친다고 해석한다면, 권리를 적극적으로 행사한 사람이 그러하지 아니한 사람보다 보호받지 못하게 되어 공평의 이념 및 정의관념에 부합하지 아니하고, 민주화운동 관련자들의 권리를 합리적 근거 없이 제한하는 것이어서 그들의 생활안정과 복지향상을 도모하려는 민주화보상법의 입법 취지에도 반할 뿐만 아니라 재산권 보장이라는 헌법의 정신에 반하는 해석이 될 여지가 있다(서울고등법원 2013. 9. 27. 선고 2012나57509 판결)." <br/> 5) 헌법은 제101조에서 대법원을 최고법원으로 하여 사법권을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부여하였는바, 헌법이 부여한 대법원의 최고법원성은 사법권을 행사하는 법관에게 합헌적 법률 해석의 책무를 부과하는 근거이기도 하다. 헌법은 각급 법원과 최고법원인 대법원을 통해 합헌적 규범통제가 충분하고 온전하게 이루어짐으로써 헌법수호라는 목적이 달성되는 것을 전제로 하여 대법원의 최고법원성을 규정한 것이다. 따라서 헌법은 법원으로 하여금 구체적 규범통제 과정에서의 최종적 헌법수호기관으로서 사회의 소수자와 약자를 위하여 실효성 있고 상식에 맞는 법리를 전개하여 권리구제에 적극 나설 것을 명령하고 있다. 또한 합헌적 법률 해석의 가능성을 최대치로 끌어올린 그 한계선에 이르렀을 때에는 위헌법률심판제청을 통해 추상적 규범통제기관인 헌법재판소와 협업할 것을 명하고 있다. 헌법이 구체적 규범통제기관인 법원 외에 추상적 규범통제기관으로서 헌법재판소를 별도로 두어, 헌법 제111조 제1항에서 그 관장사항을 ‘법원의 제청에 의한 법률의 위헌여부 심판’ 등 5개 사항에 한정하여 규정하는 한편, 제107조 제1항에서 법원으로 하여금 법률의 헌법 위반 여부에 관하여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심사제청권한을 행사하도록 한 것도, 대법원의 최고법원성에 대한 이러한 이해에서 받아들여야 한다. 헌법의 위임에 의하여 제정된 헌법재판소법이 제68조 제1항에서 법원의 재판을 헌법소원심판의 대상인 ‘공권력의 행사 또는 불행사’의 범위에서 제외하고 있는 것도, 구체적 규범통제 영역에서의 헌법수호 책무를 최고법원인 대법원을 정점으로 한 법원에 온전히 맡긴 헌법의 뜻을 반영한 것이다. 이러한 헌법의 규정이나 헌법재판소법에 깃든 헌법적 의미가 진실로 어디에 있는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헌법이 구체적 규범통제의 영역에서 대법원에 부여한 최고법원성은, 법원이 헌법으로부터 부여받은 헌법수호의 사명을 제대로 이행하여 국민의 요구에 부응하는 수준의 기본권 보장기관의 역할을 다 할 경우에만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여야 한다. <br/> 라. 과거사 사건에서 권리구제자이면서 가해자인 법원의 지위와 역할 <br/> 1) 합헌적 법률 해석을 통한 법관의 책무 수행은 과거사 사건을 다룰 때 특히 의미가 깊다. 유신시대 긴급조치 9호와 관련하여 대통령의 위법한 긴급조치 발령·집행행위로부터 법관의 위법한 유죄판결 등에 이르는 일련의 국가작용으로 피해를 입은 사람에 관한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한 대법원 2018다212610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그 맥락이 잘 드러난다. 당시 별개의견을 통하여 대통령 개인의 불법행위와 함께 유죄판결의 책임자인 법관 개인의 불법행위도 인정된다고 하였던 것은(대법원 2018다212610 전원합의체 판결 중 대법관 김선수, 대법관 오경미의 별개의견 참조), 피해자 구제를 위한 다수의견의 취지에 공감하면서도 한발 더 나아가 법관의 헌법적 책무와 사명에 대한 자각과 반성을 촉구하기 위한 것이었다. <br/> 2) 과거사 사건에서 합헌적 법률 해석으로 나아가기 위하여 무엇보다 법원은 자신의 가해자성을 자각하면서, 피해자들이 호소하는 사연을 정직하게 마주하여야 한다. 어두운 시대 상황 속에서 벌어졌던 ‘반민주적 또는 반인권적 행위에 의한 인권유린과 폭력·학살·의문사 사건’ 속에서 법관의 위법한 유죄판결과 그 집행인 구금으로 과거사 관련자의 피해를 가중시키는 역할을 하였기 때문이다. 국민의 기본권 보장, 소수자와 약자의 보호라는 헌법적 책무 수행이 어느 때보다 긴요한 시대에 법관은 그 역할에 실패하였다. 대법원 2018다212610 전원합의체 판결 중 위 별개의견에서 "국가권력이라는 거대한 톱니바퀴가 회전하고 있다고 가정할 때 법관은 바퀴에 달린 톱니 하나에 불과하여 외부적 요인으로 톱니바퀴의 회전이 멈추지 않는 한 톱니바퀴와 함께 회전할 수밖에 없는 존재인가? 아니면 톱니바퀴의 외부에 존재하는 제동장치로서 필요한 경우에는 톱니바퀴의 회전을 멈출 수 있는 존재인가?"라고 물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이다. 사람에 따라서는 과거사 사건에서 재심무죄판결 또는 국가배상판결 등을 통해 법원이 과거의 실패를 반성하는 것을 자기부정의 모순적 행위로서 권위의 손상이라고 여길 수도 있겠지만, 이는 단견에 불과하다. 오히려 이는 과거의 실패를 딛고 사법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 자유민주주의 헌법체제의 기본적 인권보장 기관으로서 다시 태어나기 위한 필수적 과정이다. 법관이 과거의 실패 사례에 대한 비판에 직면하여 방어적 태도를 취하거나 이를 외면한 채 현재의 법원과 무관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법원을 인권보장 기관으로서의 진정한 권위와 국민의 신뢰로부터 멀어지게 할 뿐이다. <br/> 3) 5·18민주화운동에서도 많은 수의 관련자들이 계엄군의 구타와 총격에 사망하였고, 살아남은 사람들도 위법하게 구금되어 고문을 당하고, 내란죄, 소요죄, 계엄법 위반죄 등 다양한 죄목으로 몰려 법원의 유죄판결을 선고받고 복역하는 등 크나큰 피해를 입었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의 구타와 총격에 사망한 사람도 많았지만, 살아남은 사람들도 풀려난 다음 1~3년 내에 구타·총상·고문의 후유증으로 사망하는 등 국가폭력에 의한 인권유린의 강도에서 유례가 없을 정도였다. 이러한 사유로 5·18민주화운동 관련자 중에는 유독 사망자가 많다. 그것이 결과적으로 구제의 길을 더 험난하게 만들었다는 것은 참담함을 더한다. <br/> 구 5·18민주화운동법이 제정되고서야 먼저 형사적 구제로서 재심이 열렸다. 위 특별법으로 소외 8, 소외 10 등이 12·12 군사반란행위와 5·18 내란행위에 대하여 반란수괴, 내란수괴, 내란목적살인 등의 범죄사실로 기소되어, 항소심에서 각각 무기징역, 징역 17년 등의 형을 선고받고, 대법원 1997. 4. 17. 선고 96도3376 전원합의체 판결로 상고가 기각되어 확정되고서야 가능했던 일이다. 5·18민주화운동 참여행위로 내란죄, 소요죄, 계엄법 위반죄의 유죄판결을 받았던 많은 사람들이 비로소 재심에서 무죄판결을 선고받았다. <br/> 그러나 이들에 대한 민사상 구제는 더 큰 난관에 봉착했다. 재심무죄판결을 선고받고도 소멸시효 문제와 이 사건 화해간주조항의 효력을 둘러싼 오랜 논란으로, 그들의 국가배상청구 소송은 권리보호의 이익이 없어 부적법하다는 판단을 받았다. 대부분은 소 제기조차 하지 못한 채 다시 긴 시간을 보내야 했다. 앞서 보았듯이 장기소멸시효 문제를 돌파하기 위한 과거사 사건 당사자들의 위헌법률심판제청신청은 거듭 기각 또는 각하되었다. 2018년 헌법재판소 2014헌바148 결정으로 장기소멸시효 문제가 먼저 해소되었지만, 관련 보상금 등을 받은 당사자들은 다시 화해간주조항 문제가 남아 있어 이 사건 화해간주조항에 대한 이 사건 위헌결정이 나온 2021. 5. 27.까지 기다려야 했다. 이후에 비로소 다수의 국가배상청구의 소가 제기되었다. 그중 하나가 이 사건 소송이다. 그런데 이들 앞에는 뜻밖에도 단기소멸시효의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 사건 원심을 비롯한 제1, 2심의 대다수 재판부는 관련자 본인의 위자료 청구만 인용하고, 재심무죄판결이 없는 경우에 관련자 가족 고유의 위자료 청구에 대하여는 1990년대 보상심의위원회의 보상금 등 지급결정일을 단기소멸시효 기산일로 보아 소멸시효가 완성되었다고 판단하였으며, 국가의 소멸시효 주장이 권리남용에 해당하는지에 관하여는 제대로 살펴보지 않은 채 이들의 청구를 기각하였다. 이러한 취지의 판결에 다투지 않아 그대로 확정됨으로써 권리구제의 길이 끊긴 사례도 많다. 이 사건 역시 원심에서 관련자 가족 고유의 위자료 청구 부분이 전부 기각되자 36명의 원고들이 2023년에 상고하였다가 2년 이상 시간이 지나는 동안 절반 이상이 상고를 취하함으로써 이들에 대한 권리구제가 불가능하게 되었다. <br/> 4) 이 사건의 당사자들은 장기간에 걸쳐 권리의 실현을 이토록 막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그것은 정당한지 묻고 있다. 이 사건 위헌결정으로 어렵게 국가배상청구 소송에 이르렀음에도, 사망한 관련자 본인의 위자료와 그 가족 고유의 위자료가 소멸시효 판단에서 다른 처우를 받는 것이 상식과 정의의 관점에서 합당한가. 관련자 및 그 가족들 상당수가 1990년대에 보상심의위원회에 신청하여 다 같이 보상금 등 지급결정을 받았음에도 왜 관련자가 사망하여 유죄판결이 없는 가족들은 유죄확정판결에 대한 재심무죄판결을 받은 관련자의 가족들과 달리 가족 고유의 위자료에 대한 소멸시효 판단에서 불리한 취급을 받아야 하는가(대법원 2021. 7. 29. 선고 2016다259363 판결의 파기환송 후 원심에서는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법 위반으로 유죄판결을 받은 관련자 본인과 그 가족들이 위자료를 청구한 사건에서 단기소멸시효 기산점을 관련자 본인에 대한 재심무죄판결 확정일로 보고 가족 고유의 위자료를 포함한 위자료 전부가 소멸시효가 완성되지 않았다고 판단하였다). 이들이 제기하는 문제의식 속에 답은 있다. 두 집단을 차별하는 결론은 상식에 부합하지 않고 공평과 정의의 관점에서도 용납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사망자가 많은 5·18민주화운동의 특성상 이들에게는 재심무죄판결이 있을 수가 없는 구조인데, 더 큰 피해를 권리구제에서 배제하는 것이 이치에 맞을 수 없다. 여기서 단기소멸시효 기산점이나 권리남용에 관한 기존 법리에 기대어 상식에 어긋나는 결론에 안주하거나, 미래의 입법 형성에 과제를 떠넘기는 것은 공평한 구제를 포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마땅히 법관은 소멸시효 제도의 근본 목적으로 돌아가 헌법에 부합하는 공평타당한 가치의 실현 방법을 찾아 나서야 한다. 그럼에도 이 사건 위헌결정 이후 비슷한 시기에 5·18민주화운동 관련자 및 가족들이 제기한 여러 건의 국가배상청구 소송에서 대다수의 재판부가 이를 외면한 이유는 무엇인가. 5·18민주화운동 당시뿐만 아니라 지금 이 시점에서도 법관의 합헌적 법률 해석에 관한 헌법적 책무가 제대로 수행되고 있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는 이유이다.<br/> 마. 맺음말: ‘빛과 실’로 과거와 미래를 잇는 어느 목소리에 관하여<br/> 이 사건을 마주하고 5·18민주화운동 관련자들을 비롯하여 다양한 과거사 사건의 선례와 판결을 찾아보았다. 과거사 사건에서 우리 법원이 취해 온 법리적 태도의 변천과 함께 이 사건이 위치한 헌법상의 맥락을 가늠하기 위함이었다. 그 속에는 5·18민주화운동 관련자들에 대한 형사 유죄판결, 이에 대한 1990년대 이후의 재심무죄판결과 그에 이은 형사보상결정이 있었고, 최근 가족 고유의 위자료 청구를 기각한 다수의 국가배상청구 제1, 2심 민사판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유형의 국가배상판결이 있었다. 먼저 여러 형사 유죄판결과 재심무죄판결에서는, 12·12 군사반란행위와 5·18 내란행위를 통하여 수립된 군사정권 초기의 폭압적인 시절 5·18민주화운동 관련자들에 대한 유죄판결의 선고로 행하여진 법원에 의한 가해행위의 실상을 목도할 수 있었다. 재심무죄판결이 나온 후에도 국가기관인 법원이 보인 태도는, 또 다른 국가기관인 국회가 입법한 이 사건 화해간주조항을 내세워 법원 자신의 불법구금에 대한 국가배상청구를 권리보호의 이익이 없다는 이유로 각하하고, 형사보상 신청사건에서 위법한 유죄판결로 구금된 날수를 세어가며 소액의 보상금을 지급하는 것에 그치고 마는 것이었다. 이는 과거사 사건의 재심무죄판결 이유와 정합성을 갖는다고 할 수 없는, 논리모순적이고 반성 없는 것이었다. 관련 국가배상사건 담당 법관의 이 사건 화해간주조항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제청과 헌법재판소 덕분에 이 사건 위헌결정으로 권리보호 이익의 문제가 해결되자, 이제는 단기소멸시효 기산점을 내세워 대다수의 제1, 2심 법관들이 피해자들의 권리구제를 외면하고 가족들의 위자료 청구를 거듭 기각하는 모습을 보며, 사법의 역사에서 드러나는 법관의 합헌적 법률 해석이라는 헌법적 책무 수행의 실패 양상과 그 이유를 가늠하는 일은 고통을 수반하는 작업이었다. <br/> 그 와중에 만난 것이 5·18민주화운동에 가두방송으로 참여하였다가 소요죄 등으로 처벌받았던 망 소외 11의 재심 사건(수원지방법원 안산지원 2018재고합12) 판결문이었다. 소외 11은 1980. 10. 24. 전교사계엄보통군법회의 80계엄보군형광 제81, 117호 사건에서 소요죄, 계엄법 위반죄, 공갈죄로 징역 10년을 선고받았고, 항소심인 1980. 12. 29. 육군계엄고등군법회의(80고군형항 제441호)에서 항소기각(징역 10년을 징역 5년으로 감형함) 판결이 선고되었으며, 다시 상고하였으나 1981. 3. 31. 대법원(81도442호)에서 상고기각 판결이 선고된 것으로 나온다. 검사의 신청으로 2019. 3. 19. 재심개시결정이 이루어졌고, 재심무죄판결이 나온 후 그가 사망하자 상속인들이 국가배상을 청구한 사건(광주지방법원 2021가합61999)의 판결도 볼 수 있었다(이 사건의 제1심에서는 소외 11의 상속인들 외에 다른 상속인들이 구한 고유의 위자료 청구 대부분이 인용되었는데, 항소심에서 소멸시효가 문제 되어 모두 기각되었고, 그대로 확정되었다). 이 판결문에는 소외 11에 대한 국가의 위법한 가해행위와 손해 및 인과관계의 판단이 다음과 같이 한 문장으로 적혀 있었다. <br/> "소외 11은 1980. 5. 19.부터 5. 26.까지 가두방송을 하였는데, 간첩혐의를 받고 중앙정보부로 끌려가 고문을 당하고, 1980. 5. 27. 상무대로 이송되어 고문을 당하여 100%의 노동능력을 상실하였다." <br/> 법률가의 눈에 평범하다면 평범하게 보일 수 있는 이 짧은 문장의 마지막 부분에 멈추어서 며칠을 보냈다. ‘가두방송을 하였는데, 고문을 당하고, 고문을 당하여, 100%의 노동능력을 상실하였다.’ 여기에는 이상한 시적 아이러니가 있었다. 여기에는 고문이 있고, 죽음이 있는데, 한편 여기에는 고문의 공포도 없고, 죽음의 공포도 없다. 다만 공포가 없는 고문, 공포가 없는 죽음이, 원인과 결과로서 긴장 없이 무심하게 연결되고 있을 뿐이다. 이 무심한 모순이야말로 과거사 사건을 다루며 사법의 역사에서 빚어진 헌법적 책무 실패의 압축적인 상징일 수도 있다. 직업적 법관의 이러한 일상적 무심함이야말로, 5·18민주화운동 관련자 가족들의 위자료 청구소송에서 이 사건 원심을 비롯한 대다수의 재판부가 단기소멸시효 완성을 이유로 이를 기각한 이유와 관련이 있는지도 모른다. 여기에서는 과거사 사건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노력이나 국가폭력으로 침해된 기본적 인권을 보듬기 위한 헌법적 모색을 감지하기 어렵다. 아이러니하게도 소외 11이 5·18민주화운동에서 가두방송으로 던진 질문이야말로 이러한 무심함을 깨우기 위한 것이었다. "지금 우리 형제자매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우리 형제자매들을 살려주십시오. 도대체 당신들은 어느 나라 군대입니까. 이 나라는 누구의 나라입니까." <br/> 이 질문들이 밝히기를 요구하는 그 무엇에 응답하는 것이야말로 한 사람의 법관으로서 이 사건에서 마주한 헌법적 책무였다. 이를 완수하고자 노력함에 있어 우리 헌법은 평균적 법관상으로서 ‘톱니바퀴의 외부에 존재하는 제동장치로서 필요한 경우에는 톱니바퀴의 회전을 멈출 수 있는 존재’이면서, 나아가 ‘회전하는 톱니바퀴가 불완전할 때 그 회전의 방식과 방향을 상식과 정의에 맞게 수정할 수 있는 존재’를 상정함을 기억하고자 하였다. 그 여정의 끝에서 별개의견을 내며, 위 가두방송의 질문들을 되새기고 이를 정직하게 마주하는 것만이 앞으로도 새롭게 제기될 과거사 문제들에서 실마리를 풀어가는 길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제는 전설이 된 가두방송의 목소리와 수많은 소외 11들이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 ‘빛과 실’이 되어, 우리 사회 소수자와 약자들이 ‘일곱 개의 뺨’을 넘어 질서 이면의 그늘에서 ‘꽃 핀 쪽으로’ 나아가게 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미진한 대답이나마 별개의견에 대한 보충의견으로 여기 남긴다.<br/> 8. 대법관 노태악의 반대의견에 대한 보충의견<br/> 다수의견에 대한 보충의견(이하 ‘다수보충의견’이라 한다)이 들고 있는 몇 가지 논거를 반박하며 반대의견의 논거를 보충한다. 덧붙여 사법부의 역할 및 사법 해석과 그 한계에 대한 생각을 밝힌다. <br/> 가. 다수보충의견에 대한 반론<br/> 1) 과연 다수의견이 현재의 법리와 정합성이 있는가<br/> 다수보충의견은, 다수의견이 법률상 장애론을 부정하거나 허물어뜨리려는 것이 아니라면서도, 정작 민법 제166조 제1항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때’는 법률상 장애가 없는 경우로 제한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러한 해석이 판례의 전체적인 흐름을 포용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한다. 다수의견의 종전 선례에 대한 진지한 통찰이 아쉬운 대목이다. <br/> 다수의견과 다수보충의견이 들고 있는 논거의 하나인 소멸시효의 진행을 막는 장애사유가 법률상 장애만을 의미한다는 명문의 법률 규정이 없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러한 명문의 규정이 없다고 하여 그 반대의 명제가 당연히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br/> 대법원은 1965. 6. 22. 선고 65다775 판결로 "권리자가 미성년자라던가 사실상의 고장 또는 법률지식의 부족으로 권리를 행사하지 못하였다 하여 소멸시효가 진행하지 않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한 이래,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때’라 함은 권리를 행사함에 있어서 기한 미도래, 조건 불성취와 같이 권리의 성질상 그 자체에 내재하는 장애 즉 법률상의 장애가 없는 경우를 의미한다고 하면서, 법률 지식의 부족, 권리 존재의 부지(권리의 존재를 알지 못한 것에 대한 과실 유무를 불문한다) 등 사실상의 장애로 권리를 행사하지 못하였어도 시효는 진행한다고 거듭 판시해 왔다(1980년대에 선고된 공간된 판결 몇 개만을 예로 들더라도 대법원 1981. 6. 9. 선고 80다316 판결, 대법원 1982. 1. 19. 선고 80다2626 판결, 대법원 1984. 12. 26. 선고 84누572 전원합의체 판결 등이 있다). 주지하듯이 판례란 해당 사건의 사안에 적용될 법령에 대한 정의적 해석을 한 대법원의 판단으로, 장래의 재판에 대한 하나의 기준이 되고, 법규범의 수범자인 국민들도 판례를 의사결정이나 행동의 지침으로 삼는다. 민법 제166조 제1항이 권리행사 장애사유를 법률상 장애로 명시적으로 한정하고 있지 않더라도 이에 대한 대법원의 정의적 해석에 따라 오랜 기간에 걸쳐 법률상 장애론을 따른 다수의 사례가 축적되었고, 이를 통해 법리 적용에 관한 예측가능성과 법적 안정성이 충분히 확보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다수의견은 법률상 장애론이 민법 제166조 제1항의 원칙적 판단 기준이라고 하면서도 기존 판례 법리에 의할 때 법률상 장애로 포섭되기 어려운 사정을 들어 소멸시효의 진행을 부정하는 한편, 이러한 해석이 기존 판례 법리에 저촉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부합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반대의견은 이러한 모순을 다시 한번 지적한다. 나아가 다수의견에 의할 경우, 앞으로 소멸시효의 기산점과 관련하여 민법 제166조 제1항이 문제 되는 사건에서 법원은 ‘권리행사의 객관적, 합리적 기대가능성’에 관하여도 심리를 해야 하는데, 이는 위와 같이 확립된 법리를 허물어뜨리는 것은 물론이고 법률상 장애론을 사실상 폐기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확립된 법리에 어긋나는 판단을 하려면 원칙적으로 판례 변경이 필요할 것임에도, 다수보충의견은 법률상 장애론은 ‘절대적 도그마’나 ‘폐쇄적 개념’이 될 수 없다는 설명으로 확립된 법리에 어긋나는 판단을 정당화하고 있다는 점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다수의견의 ‘논리적 모호함’을 ‘확신의 언어’로 덮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br/> 2) 시효의 진행을 막는 사유를 사실상 장애사유까지 확장하여야 할 것인가<br/> 다수보충의견은 시효완성을 이유로 권리자의 권리를 대가 없이 박탈하기 위해서는 권리행사의 기대가능성이 있어야 한다는 취지로 설명한다. 당연한 이야기이다. 그러나 위와 같은 설명이 법률상 장애론과 이에 기초한 현재의 소멸시효 법리 일반이 권리자의 사정에 대한 고려가 부족했다는 전제에서 나온 것이라면 이는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렵고, 나아가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때’의 개념을 확장하는 것에도 동의할 수 없다. 이 사건에서 문제 되는 민법 제766조 제1항을 해석함에 있어, 판례는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을 피해자나 그 법정대리인이 손해 및 가해자를 현실적이고도 구체적으로 인식한 날로서, 그 인식은 손해발생의 추정이나 의문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손해의 발생사실뿐만 아니라 가해행위가 불법행위를 구성한다는 사실, 즉 불법행위의 요건사실에 대한 인식으로서 위법한 가해행위의 존재, 손해의 발생 및 가해행위와 손해 사이의 인과관계 등이 있어 손해배상을 소구할 수 있다는 것까지 안 날을 뜻한다고 본다. 이때 피해자 등이 언제 불법행위의 요건사실을 현실적이고도 구체적으로 인식한 것으로 볼 것인지는 개별 사건의 여러 객관적 사정을 참작하고 손해배상청구가 사실상 가능하게 된 상황을 고려하여 합리적으로 인정하여야 하며, 손해를 안 시기에 대한 증명책임은 소멸시효 완성으로 인한 이익을 주장하는 측에서 부담한다(대법원 2010. 12. 9. 선고 2010다71592 판결, 대법원 2013. 7. 12. 선고 2006다17539 판결 및 대법원 2020. 4. 9. 선고 2019다246573 판결 등 참조). 이와 같이 판례는 권리자 측의 사정을 충분히 고려하여 불법행위 피해자를 구제하기 위한 법리를 정의와 형평의 이념에 입각하여 충실히 구축해 온 것이다. 나아가 앞서 여러 차례 인용된 바와 같이 판례는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에 관한 3년의 단기소멸시효 기산에는 민법 제766조 제1항 외에 소멸시효 기산점에 관한 일반규정인 민법 제166조 제1항이 적용되므로 3년의 단기소멸시효는 그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에 더하여 그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때’가 도래하여야 비로소 시효가 진행한다고 보고 있다. 이때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때는 권리행사에 법률상 장애사유가 없는 경우를 의미하는데(대법원 1998. 7. 10. 선고 98다7001 판결 등 참조), 여기에서 다수의견은 그 외연을 사실상 장애사유까지 확장하고 있는 것이다. 소멸시효 기산점과 관련하여 불법행위 피해자 보호를 위한 현재의 법리에 따라 재판 실무가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상황에서, 다수의견의 법리가 기존 법리에 대한 문제의식의 발로에서 권리자 측의 사정에 대한 고려가 추가로 필요하다는 이유에서 나온 것이라면 반대의견은 이에 동의할 수 없음을 분명히 밝힌다. <br/> 또한 다수보충의견이 지적하는 바와 같이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에 관하여 법률상 장애로서 ‘기한 미도래’나 ‘조건 불성취’는 쉽게 상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5·18민주화운동 관련자 본인의 위자료 청구권에 대한 이 사건 화해간주조항과 같이 위헌인 법률 규정의 존재(면직처분이라는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에 대하여 면직처분의 근거가 된 법률 규정에 대한 위헌결정이 있기 전까지 법률 규정의 존재는 법률상 장애라고 본 대법원 1996. 7. 12. 선고 94다52195 판결 참조), 다른 법령에 보상규정이 있는 경우 그 법령에 따른 보상을 받을 수 없음이 판명되지 않고 있다는 사정(군인 등이 공상을 입은 경우 다른 법령에 따른 보상을 받을 수 없음이 판명되어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 단서 규정 적용이 배제되는 것이 확정될 때까지 법률상 장애가 존재한다고 본 대법원 1998. 7. 10. 선고 98다7001 판결 참조)과 같이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에도 법률상 장애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따라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에 대하여 법률상 장애를 상정하기 쉽지 않기에 유연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논증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고,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다. <br/> 계약상 채권과 법정 채권의 구별 관련하여서도, 계약상 채권의 경우 스스로 상대방을 선택하여 계약을 체결한 자가 사실상 장애의 위험을 감수해야 할 당위가 상대적으로 더 높다고 볼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이나 부당이득반환청구권 등의 법정 채권은 어떠한 계약 관계도 없이 알지 못하는 당사자 사이에 예기치 못한 사건으로 발생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가해자는 피해자로부터, 수익자는 손실자로부터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나 부당이득반환청구를 언제 어느 정도로 받게 될 것인지를 예측하기 어렵다. 따라서 이러한 법정 채권이야말로 증거 산일의 위험 등을 아울러 고려할 때 분쟁을 장기간 불안정한 상태로 두지 않고 신속히 해결해야 할 법적 안정성의 요청이 상대적으로 더 높다고도 볼 수 있는바,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 기산점 해석에는 이러한 사정 또한 염두에 두어야 함을 지적해 둔다. <br/> 3) 권리행사의 객관적, 합리적 기대가능성 법리의 확대가능성<br/> 다수의견은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에 관한 민법 제766조 제1항의 3년의 단기소멸시효 관련하여 민법 제166조 제1항에 따른 권리행사의 객관적, 합리적 기대가능성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그러나 민법 제166조 제1항은 소멸시효 기산점에 관한 일반조항이므로, 권리행사의 객관적, 합리적 기대가능성 법리는 향후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의 단기소멸시효 문제에 국한되지 않고 채권 일반의 소멸시효 문제로 그 적용 범위가 쉽게 확장될 수 있다. 그동안은 민법 제166조 제1항에 따라 당사자의 주관적 인식이나 인식가능성과는 상관없이 이행기 도래 시 등 객관적 시점을 기준으로 소멸시효 기산점을 인정하되, 다만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법률상 장애사유가 존재하였을 경우 그 기산점을 늦추는 해석을 하여 왔다. 그러나 이 판결로써 앞으로는 권리자가 권리를 행사할 수 없던 사유가 법률상 장애사유에 해당하는지에 더하여 권리행사의 객관적, 합리적 기대가능성이 있는지까지 일일이 심리하여야 하는 부담이 발생하였다. 물론 어떠한 사건의 어떠한 쟁점에 대하여든 타당한 결론을 위하여 세밀한 사실인정과 충실한 심리가 필요한 것은 당연하고, 이는 법관의 책무이기도 하다. 그러나 다수의견이 제시하는 판단 기준, 즉 ‘소멸시효 제도의 취지와 더불어 권리의 목적과 성격, 채권자와 채무자의 특성과 상호 관계, 사안의 유형과 맥락 등을 두루 규범적으로 고려’하되,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당사자의 주관적 사정이 아닌 권리행사를 기대할 수 없는 ‘객관적 상황’ 여부를 판단하여야 하고, 그 기준은 권리행사를 ‘거의 예외 없이 누구에게도 기대할 수 없다는 엄격한’ 것이어야 한다는 지침은 그 자체가 추상적이고 복잡한 것이어서 재판 실무에 필연적으로 혼란과 지장을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br/> 비록 반대의견에 대한 보충의견에서나마 향후 하급심은 다수의견의 객관적, 합리적 기대가능성 법리를 따르더라도 이를 근거로 채권 일반에 대하여 소멸시효 기산점을 쉽게 늦추는 해석을 하는 것은 이 판결의 사정 범위를 벗어나는 것이므로 이를 경계하여야 함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br/> 4) "소멸시효에 걸리지 않는 채권적 권리"를 인정하는 결과에 대한 우려 <br/> 이 사건 소는 5·18민주화운동이 발생한 때로부터 약 41년, 관련자 및 유족에 대한 보상금 등 지급결정일로부터도 약 27년 또는 31년이라는 상당한 시간이 경과한 후에 제기되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의 과거사정리법상 중대한 인권침해사건 등에 대한 장기소멸시효 위헌결정에 따라 이 사건에는 장기소멸시효가 적용되지 않으므로, 다수의견에 따를 경우 이 사건 5·18민주화운동 관련자나 그 가족의 손해배상청구권은 소멸시효에 걸리지 않는 상태로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소 제기 당시 이 사건 위헌결정일로부터 3년이 경과하였는지에 따라 소멸시효 완성 여부가 결정되는 것은 맞다. 그러나 반대의견은 다수의견이 제시하는 ‘권리행사의 객관적, 합리적 기대가능성’ 법리가 이 사건 외의 다른 사건에서 소멸시효에 걸리지 않는 채권적 권리를 발생시킬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즉, 별개의견이 언급한 바와 같이 5·18민주화운동 관련자나 그 가족으로서 보상금 등 지급결정을 받지 않아 이 사건 위헌결정의 영향을 받지 않는 피해자는 어떠한가. 삼청교육 사건 피해자이지만 과거사위원회의 진실규명결정을 받지 않은 피해자는 또한 어떤가. 국가의 불법행위일 이후 보상금 등 지급결정을 받지 않았고, 이와 관련한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도 없으며, 진실규명결정도 받지 않아 불법행위일 외에는 단기소멸시효 기산점으로 삼을 만한 계기가 없는 피해자들의 경우 이들에게 불법행위일 이후 소 제기 시점까지 상당한 시간이 흐르는 동안 손해배상청구권을 행사할 것을 기대할 수 있었는지, 이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는 진행하는지 진행하지 않는 것인지 다수의견은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 <br/> 5) 미성년자의 성적 침해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과 관련하여<br/> 민법 제766조 제3항으로 미성년자의 성적 침해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에 대한 소멸시효는 그가 성년이 될 때까지 진행하지 않는다는 예외 규정을 둔 것이 다수의견의 논리에 부합한다는 논거가 된다는 점 또한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위와 같은 규정을 신설하는 이유는 사법 해석으로는 피해자 보호 문제를 해결할 수 없어 법률로 예외 규정을 두는 것 아닌가. ‘권리행사의 객관적, 합리적 기대가능성’ 법리가 현행법의 해석으로 가능하고, 이를 통해 해결할 수 있는 것이었다면 굳이 법률에 명문 규정을 신설하여 미성년 피해자를 보호할 이유는 없었을 것이고, 반대의견은 이를 지적한 것이다. <br/> 6) 이 사건 위헌결정 전에 5·18민주화운동 관련자 가족들이 고유의 위자료를 청구하여 인용된 사례에 대하여<br/> 다수보충의견은 5·18민주화운동 관련자 가족이 고유의 위자료를 청구하여 인용된 사례는 이 사건과 사안이 다르고, 그와 같은 사례가 존재한다는 사정이 다수의견의 결론을 뒤집기에는 부족하다고 한다. 그러나 그와 같은 인용 사례에서도 5·18민주화운동 관련자는 구 광주민주화보상법에 따라 보상금 등을 수령하였고, 이 사건 화해간주조항에 대한 위헌결정이 있기 전임에도 그 가족들이 고유의 위자료 청구권을 행사하였다. 즉, 다수의견이 이 사건 위헌결정 전까지 5·18민주화운동 관련자 가족들에게 고유의 위자료 청구를 할 것을 기대할 수 없었다고 하지만, 반대의견은 이와 같이 고유의 위자료 청구권을 행사한 가족들이 있는 이상, 그 권리행사가 불가능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이다. <br/> 나. 사법부의 역할 및 사법 해석과 그 한계에 관하여<br/> 법원은 법의 표준적 의미를 밝혀 객관적 타당성이 있도록 해석하여야 하고, 가급적 모든 사람이 받아들일 수 있는 일관성을 유지함으로써 법적 안정성이 손상되지 않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오랜 기간 재판 실무나 다수 학설이 별다른 의문 없이 받아들여 온 판례 법리를 압도적으로 우월한 논거와 가치의 뒷받침 없이 쉽게 변경하여서도 안 되지만, 정식의 판례 변경 절차를 거치지 않고 우회적인 방식으로 종전 판례 법리에 사실상 배치되는 법리를 내놓는 것 또한 자제하여야 한다. 법적 안정성 그리고 그와 관련된 신뢰 보호는 법을 해석함에 있어 반드시 유념하여야 할 중요한 가치이다. <br/> 한편 법률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권한은 사법권의 본질적 내용이다. 만일 법원이 그 본질적인 역할을 넘어 입법의 영역까지 이르게 된다면 법원 스스로 우리 헌법에 규정된 국가권력 분립구조의 기본원리를 지키지 아니하는 것이고, 이를 통해 권력분립에 따른 상호 견제와 균형의 기초 위에 선 사법권의 독립이 오히려 위협받을 수 있다. <br/> 현재 제22대 국회에는 5·18민주화운동 관련하여 입은 피해 중 정신적 피해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은 시효로 인하여 소멸하지 아니하고, 부칙에서 개정 규정은 법 시행 당시 소멸시효가 완성된 정신적 피해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에도 적용된다는 소멸시효에 관한 특례조항을 신설하는 「5·18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 등에 관한 법률」일부 개정안(양부남 의원 발의, 의안번호 2205984)이 발의되어 있다. 과거사위원회의 진실규명결정을 받은 사건으로 인하여 발생한 피해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에 대하여는 민법 제166조 제1항 및 제766조 제2항과 국가재정법 제96조 제2항을 적용하지 아니한다는 과거사정리법 전부 개정안(행정안전위원장 발의, 의안번호 2214875)도 있다. 이와 같이 과거사 사건에 대한 소멸시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입법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는 현시점에서 대법원이 소멸시효 기산점의 근간을 이루는 민법 제166조 제1항에 관한 기본 법리의 예외를 확장하여 소멸시효 완성 문제를 피해가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올바른 제도의 도입을 위해서는 충분한 논의를 통한 사회적 합의와 그에 따른 입법적 결단을 기다리는 것이 필요하다. 사법만능의 유혹과 화려한 수사에도 불구하고 사법 해석이 가지는 한계는 분명히 있으며, 이를 지키는 것은 법원의 기본적인 책무이다. 아주 특별한 사정이 존재하지 아니함에도, 입법 없이 모두 사법 해석으로 문제의 해결이 가능하다고 본다면, 삼권분립과 법치주의는 공허한 외침에 불과하다. <br/> 다수의견과 별개의견이 드는 논리로 새로운 입법론을 전개하는 것은 별론, 대법원이 법리 적용에 관한 예측가능성과 법적 안정성이 충분히 확보될 수 있도록 법을 해석·적용하면서 굳건히 사법부 본연의 역할을 다할 때 국민 모두에게 정의롭고 신뢰받는 사법부로 거듭날 수 있다. <br/> 이상과 같이 반대의견에 대한 보충의견을 밝힌다. <br/><br/>대법원장 조희대(재판장) 노태악(주심) 이흥구 오경미 오석준 서경환 권영준 엄상필 신숙희 노경필 박영재 이숙연 마용주
출처: 국가법령정보센터. 법적 효력은 원문이 우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