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이 아니라 예산이 답해야 한다 — 장애인권리보장법 이후, 현장이 묻는 진짜 질문
2026년 06월 08일 | 복지포커스 편집팀
찬성 177표, 반대 0표. 숫자만 보면 완벽한 승리다. 「장애인권리보장법」이 지난달 23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던 날, 장애계는 눈물로 환영했다. 20대 국회에서 처음 발의된 뒤 10년, 1989년 제정된 장애인복지법 체계를 37년 만에 대체하는 기본법이 마침내 만들어진 것이다. 그 감격은 진짜다. 하지만 편집팀은 이 법안의 통과를 보도하면서 내내 한 가지 질문을 붙들고 있었다. 법은 통과됐다. 그런데 예산은?
패러다임 전환의 의미
이 법이 갖는 상징성은 단순한 입법 성과를 넘는다. 핵심은 장애인을 '복지 수혜자'에서 '권리 주체'로 재정의했다는 데 있다. 장애의 개념 자체를 개인의 손상이 아닌 환경과의 상호작용으로 새롭게 규정하고, 탈시설 권리를 법 조문에 처음으로 명시했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무도 선언적 수준이 아니라 구체적 조항으로 못 박았다.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의 정신을 국내법으로 구현하는 데 10년이 걸렸지만, 그 결과물은 제법 단단하다.
동시에 65세 이상 장애인의 활동지원 선택권을 보장하는 개정안도 함께 통과됐다. 그동안 만 65세가 되면 활동지원서비스에서 장기요양서비스로 자동 전환되던 구조, 즉 당사자의 의사와 무관하게 서비스 체계가 바뀌던 문제를 손댄 것이다. 이 역시 자기결정권이라는 가치를 제도 안에 새긴 변화다.
그러나 현장에서 법은 '시행일'부터 시작된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장애인권리보장법은 제정 후 약 2년 뒤 시행 예정이다. 2년의 준비 기간이 주어진 셈인데, 이 시간이 실질적 준비로 채워지지 않으면 법은 선언으로 끝난다.
현장 실무자들이 가장 먼저 꺼내는 말이 있다. "탈시설 지원 인프라가 없는데, 탈시설 권리를 어떻게 보장하느냐"는 것이다. 탈시설은 단순히 시설 밖으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지역사회 내 주거 지원, 활동지원인 확보, 의료·복지 연계, 긴급 위기 대응 체계까지 촘촘하게 짜여야 비로소 가능한 삶의 구조다. 지금 이 기반이 얼마나 갖춰져 있는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현장 실무자들이 더 잘 안다.
'색동원' 사건은 이 현실의 단면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대규모 거주시설에서 반복적으로 학대가 발생하는 구조적 문제, 그리고 피해 장애인이 시설 밖에서 살아갈 대안이 충분하지 않다는 현실. 정부가 뒤늦게 범정부 TF를 꾸리고 종합대책을 발표했지만, 이것이 법 시행 2년 안에 실질적 전환으로 이어지려면 예산과 인력이 따라와야 한다.
준비 없는 2년은 또 다른 공백이 된다
법이 통과된 지금, 현장에서 실무자들이 해야 할 일과 해야 할 준비는 구체적이다.
우선 자립생활 지원 체계의 현황을 점검해야 한다. 관할 지역 내 자립생활센터의 역량, 주거지원 자원, 활동지원 인력 공급 상황을 지금 파악하지 않으면 시행 시점에 혼란만 가중된다. 탈시설 전환 계획도 막연히 '언젠가'로 미룰 수 없다. 지금 시설에 있는 장애인 한 분 한 분의 상황을 파악하고, 개별 지원 계획을 논의하는 작업을 시작해야 한다.
65세 이상 활동지원 선택권 보장 개정안도 현장에 바로 영향을 미친다. 만 65세 전환을 앞둔 이용자에 대한 상담과 안내 절차를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 기관 차원의 내부 지침이 필요하다.
편집팀의 제언: 2년을 낭비하지 마라
장애인권리보장법의 시행까지 약 2년이 남아 있다. 이 기간을 어떻게 쓰느냐가 법의 실질적 가치를 결정한다.
정부는 시행령·시행규칙 제정 과정에서 당사자와 현장 실무자의 목소리를 제도화된 방식으로 반영해야 한다. 법 조문이 아무리 좋아도, 하위 법령에서 권리가 희석되는 사례는 우리가 반복적으로 목격해왔다. 지방자치단체는 중앙정부의 지침을 기다리는 것에 그치지 말고 지역 실정에 맞는 자립지원 인프라 구축 계획을 선제적으로 수립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 예산이다. 찬성 177표의 무게만큼, 내년 예산안에 장애인 자립생활 지원과 탈시설 전환을 위한 구체적 재원이 담겨야 한다. 법이 선언이 되느냐, 현실이 되느냐는 결국 예산 심의 테이블에서 결정된다.
법은 통과됐다. 이제 숫자는 표결장이 아니라 예산서에서 나와야 한다.
복지포커스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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