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이 선언한 '탈시설 권리', 현장이 감당할 준비는 됐는가
장애인권리보장법 통과 이후, 실천의 무게를 말한다
지난 23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찬성 177표, 반대 0표라는 이례적인 만장일치에 가까운 결과가 나왔다. 20대 국회에서 처음 발의된 이후 꼭 10년 만에 「장애인권리보장법」이 통과된 것이다. 1989년 제정된 장애인복지법을 37년 만에 대체하는 최초의 장애인 기본법이자, 탈시설 권리를 법에 처음으로 명시한 역사적 입법이었다. 장애계는 환영했고, 언론은 '10년 만의 결실'이라고 보도했다. 그 날 밤, 현장 실무자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환영할 일이다. 그런데 그 다음이 문제다
이번 법 통과의 의미는 분명하다. 장애인을 복지의 '수혜자'가 아닌 권리의 '주체'로 전환하는 패러다임 변화를 법적으로 선언한 것이다. 유엔장애인권리협약(CRPD)이 요구해 온 국제적 기준을 국내법에 반영했고, 탈시설 권리를 명시함으로써 지역사회 자립 생활의 방향성을 법이 공식화했다.
그러나 법이 선언한 것과 현장이 실현할 수 있는 것 사이의 간극, 그것이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가 직시해야 할 진짜 질문이다.
탈시설 권리가 법에 명시됐다는 것은 장애인이 시설 밖의 삶을 선택할 권리가 법적으로 보장된다는 뜻이다. 그런데 지금 당장 지역사회에 그 삶을 받쳐줄 구조가 갖춰져 있는가. 주거가 있는가. 활동지원 인력이 충분한가. 지역 기반의 자립생활 지원 인프라가 작동하고 있는가. 솔직히 말하자. 아직 그렇지 않다.
배경: 두 사건이 같은 주에 겹쳤다
이번 주는 우연히도 두 가지 상반된 장면이 한꺼번에 펼쳐진 주였다. 장애인권리보장법이 통과된 바로 그 시점에, 정부는 '색동원' 성폭력 사건에 대응한 장애인거주시설 학대 예방·인권강화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범정부 합동대응TF가 구성되고, 대규모 거주시설 107개소 인권실태 전수조사가 이달부터 본격 추진된다.
두 장면은 따로 보면 각각 의미 있는 정책 움직임이지만, 함께 놓고 보면 불편한 진실을 드러낸다. 법은 탈시설을 권리로 선언하고 있는데, 현실의 시설에서는 여전히 학대 사건이 터지고 있다. 탈시설의 기반 없이 시설 안의 문제가 반복되는 구조, 그것이 지금 우리 복지 현장이 처한 이중적 상황이다.
시설이 나쁘기 때문에 탈시설을 해야 하는 게 아니다. 지역사회에서 살 권리가 있기 때문에, 원하는 사람이 그 선택을 실제로 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전제가 충족되지 않는 한, 법의 선언은 공허한 활자에 머문다.
현장 시사점: 실무자가 마주할 현실
법 시행 이후 현장 실무자들이 맞닥뜨릴 변화는 구체적이다.
우선 거주시설에서 일하는 사회복지사들은 당장 달라진 법적 환경을 체감하게 된다. 탈시설 권리가 법에 명시된 이상, 입소 당사자의 자기결정권과 퇴소 의사 표현에 대한 대응 방식이 달라져야 한다. "시설에서 계속 사는 게 더 안전하다"는 종사자의 판단이 당사자의 권리를 덮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이 법의 핵심 메시지다.
지역사회에서 장애인 지원을 담당하는 실무자들에게도 숙제가 생겼다. 탈시설을 선택한 당사자가 지역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주거, 활동지원, 일상생활 지원을 연결하는 역할이 더 중요해진다. 그런데 그 연결 고리는 아직 곳곳에 끊겨 있다. 자립생활 지원 주택은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활동지원사 인력난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같은 주에 통과된 65세 이상 장애인의 활동지원 선택권 보장 법률 개정안도 현장과 맞닿아 있다. 65세가 되면 활동지원 서비스 대신 노인장기요양보험으로 전환이 강제되던 기존 구조에서 벗어나, 당사자가 선택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됐다. 창구에서 이 질문을 받게 될 실무자들은 미리 내용을 숙지해야 한다.
제언: 법의 무게를 예산과 인프라로 증명하라
법이 통과된 것은 시작이다. 장애계가 환영하면서도 즉각 "후속 정책과 예산 마련"을 촉구한 것은 그 시작이 얼마나 아슬아슬한 출발선인지를 알기 때문이다.
몇 가지는 명확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
첫째, 탈시설 지원 로드맵과 예산 확보가 선결 과제다. 법이 권리를 선언했다면 국가는 그 권리를 실현할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 지역사회 자립생활 주택 확대, 활동지원 인력 수급 안정화, 자립생활센터 기능 강화가 함께 움직여야 법이 현실이 된다.
둘째, 현장 종사자 교육이 필요하다. 패러다임 전환은 법 조문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복지 수혜자에서 권리 주체로"라는 관점의 전환이 현장 실무자의 일상 언어와 태도에 녹아드는 것이 진짜 변화다. 시설 내 인권교육, 자기결정권 지원 방법론 등이 체계적으로 보급돼야 한다.
셋째, 색동원 사건 이후 발표된 거주시설 인권강화 대책이 일회성 대응에 그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전수조사 결과가 후속 제도 개선으로 이어지는지, 소규모화와 1-2인실 전환이 실질적으로 진행되는지를 현장과 시민사회가 함께 점검해야 한다.
법이 선언한 탈시설 권리는, 지금 시설 복도 어딘가에서 여전히 타인의 결정에 삶을 맡기고 있는 누군가를 향한 약속이다. 그 약속이 이행되는지는 국회의 찬성표가 아니라, 내년도 예산서와 현장의 서비스 체계가 증명할 것이다.
복지포커스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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