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건강 5년 계획 발표, 현장이 묻는 것은 "병상 확대 다음은?"
"급성기 집중치료실 병상을 늘린다니 좋긴 한데, 퇴원 후 어디로 가라는 건지 모르겠어요."
지난주 보건복지부가 제3차 정신건강복지기본계획(2026~2030)을 발표하자, 정신질환자를 지원하는 현장에서 나온 첫 반응이다. 계획서에 담긴 53개 세부과제를 훑어보면 치료 인프라 확충에는 힘을 주되, 회복-사회복귀 단계에서의 실질적 변화를 어떻게 만들지에 대해서는 아직 불명확한 부분이 많다. 이번 계획이 현장에서 실제로 작동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병상 늘리기는 쉽지만, 회복을 만들기는 어렵다
이번 기본계획의 핵심은 명확하다. '몸과 마음이 함께 건강한 사회'를 향해 예방·치료·회복·중독·자살·기반 6대 분야를 추진한다는 구조다. 특히 급성기 집중치료실 병상 확대는 위기 상황에 처한 정신질환자를 신속하게 받아낼 수 있는 인프라를 갖추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자살 시도자, 급성 정신증상을 보이는 환자들을 더 빨리 치료하겠다는 메시지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병상에 누웠던 환자가 회복 단계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현장은 여전히 자원 부족에 시달린다. 보건복지부의 계획안을 자세히 보면 '동료지원인 양성'과 '정신질환자 주거지원 확대'를 중요 과제로 제시하고 있다. 이 두 개는 단순히 정책 문서에 쓰인 문구가 아니다. 외국의 사례를 보면, 회복 단계에서 같은 경험을 한 사람의 지원이 얼마나 효과적인지, 안정적인 주거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그런데 실제 예산과 인력 배치로 이것이 어떻게 구현될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동료지원인, 과연 누가 어떻게 양성하나
"동료지원인"이라는 개념은 한국 정신보건 현장에서도 낯설지 않지만, 아직 명확한 자격기준과 수련 체계가 정립되지 않았다. 국제적으로는 정신질환 경험자가 회복 과정에서 또 다른 정신질환자를 지지하고 실질적 조언을 해주는 역할로 정의된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이들을 어떤 수준으로 양성하고, 어느 기관에 배치하고, 누가 감독하며, 어떤 처우를 줄지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현장 실무자들의 우려는 현실적이다. "양성 프로그램만 만들면 되나, 아니면 고용까지 책임지는 건가?" "기존 정신건강복지센터와 정신병원의 역할은?" "자격증 제도가 있을 건가?"
이런 질문들에 답이 없으면 5년 계획은 그저 종이 위의 목표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 현장은 이미 동료지원의 효과를 알고 있다. 문제는 이를 체계화하고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 구조다.
주거지원 확대, 지역사회로 나간다는 것의 의미
정신질환자 주거지원 확대는 단순히 집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정신보건 서비스의 근본적 변화를 의미한다. 지금까지 입원 중심이었던 치료 체계에서 지역사회 기반으로 전환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몇몇 지자체가 파일럿으로 진행해온 정신질환자 주거지원 사업을 보면, 단순한 주택 제공보다는 사례관리·심리 지지·일자리 연결까지 패키지로 제공할 때 효과가 극대화된다. 그런데 이를 전국적으로 확대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첫째, 자치단체별로 충분한 예산 배정이다. 둘째, 이를 운영할 인력 확보다. 셋째, 지역 내 정신보건기관-복지관-주거서비스 제공자 간의 유기적 연계다. 지금까지 정신보건은 병원 중심으로 작동해왔다. 이를 지역사회 기반으로 재편하는 것은 행정적·재정적으로 결코 간단한 과제가 아니다.
5년 계획이 현장에서 살아나려면
이번 정신건강복지기본계획을 실행하는 핵심은 '추진체계'에 있다.
첫째, 중앙 차원에서 정부 부처 간 협력이 강화되어야 한다. 정신보건은 보건복지부만의 영역이 아니다. 주거지원은 국토교통부, 고용은 고용노동부, 교육은 교육부가 함께 움직여야 한다. 부처 간 칸막이가 없어야 한다.
둘째, 지자체 차원의 실행 역량 강화가 절실하다. 중앙에서 만든 계획이 지역에서 제대로 실행되려면, 광역과 기초자치단체의 정신보건 담당자 역량, 예산, 인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지금 많은 기초자치단체의 정신보건 담당자는 인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셋째, 민간 복지기관과의 협력 체계 확립이 필요하다. 정신건강복지센터, 정신병원, 사회복귀시설, 주간보호시설 등 현장 기관들이 이 계획을 어떻게 수용하고 실행할지에 대한 구체적 가이드가 필요하다.
넷째, 무엇보다 당사자(정신질환 경험자)의 목소리가 정책 실행 과정에 반영되어야 한다. 동료지원인 양성, 주거지원 모델 개발, 회복 지표 설정 등에서 당사자 참여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어야 한다.
현장의 준비 상황은
지난주 이 계획이 발표된 후, 여러 정신보건기관 실무자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반응은 긍정적이면서도 조심스러웠다. "좋은 방향인 것 같은데, 구체적으로 우리는 뭘 해야 하는지 아직 안 보인다"는 평가가 많았다.
일부 광역 정신보건사업 담당자는 "지역사회 기반 정신건강 서비스로의 전환이 맞다고 봤을 때, 지금 우리 시의 인프라로는 한계가 있다"고 우려했다. 특히 기초자치단체 정신건강복지센터의 경우 인력 문제가 심각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남은 과제들
보건복지부가 이번 기본계획을 발표할 때 함께 공개해야 할 것들이 있다.
첫째, 세부 사업별 추진 로드맵과 담당 부처·기관이다. 53개 과제 하나하나에 대해 언제, 누가, 어떻게 시작하고, 중간 점검은 언제 하고, 최종 평가는 어떻게 할지가 명확해야 한다.
둘째, 재정 계획이다. 각 과제별로 필요한 예산 규모와 재원 조성 방안이 제시되어야 한다. 없으면 "좋은 정책"으로만 남는다.
셋째, 지자체별 추진 계획 수립을 위한 가이드라인이다. 중앙 계획을 지역 맞춤형으로 어떻게 풀어내느냐가 성공의 열쇠다. 이를 위한 구체적 가이드가 필요하다.
넷째, 현장 종사자 교육·훈련 계획이다. 특히 동료지원인 양성, 지역사회 정신건강서비스 모델 확산 등은 현장 인력의 역량 강화 없이 불가능하다.
지금 시점은 계획 발표 직후이다. 현장이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준비하느냐는 이제부터의 과제다. 보건복지부와 지자체, 현장 기관이 함께 이 5년 계획을 살아있는 정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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