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이 먼저냐, 예산이 먼저냐 — 장애인권리보장법 통과 이후 현장이 던지는 진짜 질문
2026년 05월 21일
찬성 177명, 반대 0명. 숫자만 보면 이견 없는 역사적 합의다. 지난 23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장애인권리보장법」 표결 결과다. 20대 국회에서 처음 발의된 이후 꼬박 10년, 1989년 장애인복지법이 제정된 이후 37년 만에 장애인을 '복지 수혜자'가 아닌 '권리 주체'로 명시하는 기본법이 드디어 탄생했다. 장애계가 환영 성명을 쏟아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현장의 반응은 조금 다르다. 기쁨과 우려가 동시에 존재한다.
무엇이 달라졌나 — 법의 의미를 정확히 읽어야 한다
이 법이 갖는 의미는 단순히 '새로운 권리 목록'을 추가한 데 있지 않다. 핵심은 패러다임 전환이다. 기존 장애인복지법 체계는 국가가 장애인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구조였다. 시혜적 접근이다. 반면 장애인권리보장법은 장애인이 스스로 자신의 삶을 결정할 권리가 있음을 법적으로 선언하고,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그 권리 실현을 위한 책무를 지도록 설계됐다.
특히 이번 법에서 눈여겨볼 대목은 두 가지다. 첫째, 탈시설 권리의 최초 명시다. 장애인이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살 권리, 즉 탈시설권리가 법 조문에 들어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둘째, 같은 날 함께 통과된 65세 이상 장애인의 활동지원 선택권 보장이다. 그동안 만 65세가 되면 장애인 활동지원 서비스에서 노인장기요양보험 체계로 강제 전환되면서 서비스 시간이 대폭 줄어드는 이른바 '65세 절벽' 문제가 반복됐다. 이번 개정으로 그 절벽에 작은 계단이 생겼다.
유엔장애인권리협약(CRPD) 비준국으로서 국제기준을 국내 법체계에 반영했다는 점도 의미 있다. 협약 이행 상황을 심의하는 유엔 위원회가 한국에 꾸준히 권고해온 사항들이 이번 법에 일부 녹아들었다.
현장이 마주한 현실 — 법과 예산 사이의 간극
그러나 현장 실무자들 사이에선 이미 다음 질문이 나오고 있다. "법은 통과됐는데, 예산은요?"
탈시설 권리가 명시됐다고 해서 내일 당장 거주시설 이용자들이 지역사회로 나올 수 있는 건 아니다. 지역사회에서 장애인이 실질적으로 자립 생활을 유지하려면 주거 지원, 활동지원 서비스, 의료 접근성, 고용 기회 등 촘촘한 인프라가 필요하다. 법이 방향을 선언했다고 인프라가 저절로 구축되지는 않는다.
색동원 사건 이후 정부가 장애인거주시설 107개소 인권실태 전수조사와 소규모화·1-2인실 전환 방안을 발표했지만, 탈시설 이후 지역사회 정착을 지원하는 자원은 여전히 턱없이 부족하다는 게 현장의 공통된 목소리다. 시설을 나온 뒤 어디서, 어떻게, 누구와 살 것인지를 지원하는 구체적 로드맵 없이는 '탈시설 권리'는 선언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활동지원 선택권 문제도 마찬가지다. 65세 이상 장애인이 활동지원을 선택할 수 있게 됐지만, 현장 활동지원사의 절대적 부족, 지역별 서비스 편차라는 구조적 문제는 법 개정만으로 해소되지 않는다.
실무자에게 지금 필요한 것
입법 성과를 폄훼하자는 게 아니다. 오히려 이 법이 실질적 변화로 이어지려면 현장에서 지금부터 움직여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다.
우선, 법의 내용을 정확히 숙지하고 이용자와 가족에게 설명할 준비를 해야 한다. "권리"를 이야기할 때 막연한 기대를 갖게 하거나 반대로 "아직 달라진 게 없다"고 체념하게 두는 것 모두 실무자가 피해야 할 태도다. 지금 이 법이 무엇을 보장하고, 무엇은 아직 후속 입법·예산을 기다려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안내하는 역할이 필요하다.
또한, 후속 시행령과 시행규칙 제정 과정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기본법이 통과된다고 해도 세부 내용은 시행령에서 결정된다. 이 과정에서 현장의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으면 법의 취지가 희석될 수 있다. 장애인 당사자와 함께 시행령 입법예고 시 의견 제출에 적극 참여하는 것이 실질적 변화를 만드는 방법이다.
제언 — '법 제정'이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장애인권리보장법 통과는 분명 의미 있는 이정표다. 하지만 법의 언어가 삶의 언어로 번역되는 데는 시간이 걸리고, 그 번역을 실제로 수행하는 것은 현장 실무자와 지역사회다. 정부는 후속 예산 편성과 인프라 구축에 대한 구체적 일정을 빠르게 제시해야 한다. '권리'를 선언했으면 그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것이 국가의 다음 책임이다.
장애인계가 10년을 싸워 얻은 법이 또 다시 10년을 기다리는 선언으로 남아선 안 된다.
복지포커스 편집팀
자주 묻는 질문
돌봄통합지원법이 뭔가요?
통합돌봄으로 장애인거주시설은 어떻게 되나요?
통합돌봄의 성공 기준은 무엇인가요?
AI 활용 안내: 이 칼럼은 AI 기술을 활용하여 작성되었으며, 편집팀이 내용을 검토하고 최종 편집했습니다.